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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정부의 입장이 공식 발표되었다. 사실 어느정도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찬성, 반대 의견을 떠나서 결국 우리나라가 파병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부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오래 전부터.

아마도 문제는 직접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시점에서의 자괴감과 노무현 정부에게 기대했던 자존심 회복 차원의 액션을 별로 보지 못한데 대한 실망감일 것이다. 전반적인 흐름을 한번 훑어 보자.

1. 추가 파병을 바라보는 심정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점령한 것은 누가 보아도 명분없는 침략이고 석유와 군사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의 장기적 전략에 근거한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부시 및 신보수주의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성격상 반이슬람적 종교전의 성격도 띄고 있다.

그런 미국이 이라크의 점령에는 성공하였으나 통치를 하지 못하고 계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미국내 여론도 좋지 않고, 재정은 파탄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소위 제2의 베트남化를 우려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유엔과 동맹국들의 팔을 다시 비틀고 있고,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군 전투병 파병 요청이다. 요청이라기 보다는 거의 협박에 가깝다. 안그래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해 거부감이 큰 이 시점에서 이러한 미국의 파병요청은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한다.

더욱이 모든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고 이와는 별도로 이라크 재건 분담금(?) 명목으로 2억 달러 이상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당혹스럽다. 북핵 문제가 미국의 불성실하고 오만한 자세로 인해 해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고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위해 100조 가까운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한 경제가 만신창이가 된 상태라서 이러한 뉴스는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명분도 없는 전쟁에 참가하면서 돈은 돈대로 쏟아 부어야 하는 무력감과 자괴감이 앞선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국민들이나 진보 혹은 개혁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우리 정부의 무력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2.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자!

다행히 이번 추가파병은 전투병이 아닌 공병, 의료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국내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겠지만, 점령과 게릴라 소탕식의 이라크 작전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고, 이라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다국적군이 미국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점도 설득력이 강하다.

즉, 반전성향의 국내여론과 효율적인 이라크 통치를 위해서는 강한 전투병력 보다는 이라크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며 치안을 안정시키는 방법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년간의 독재통치와 이란·이라크전, 2차례의 미국과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 국민들의 삶을 복원시킴으로써 보다 치안을 안정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본다. 어차피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파병할 수 밖에 없다면, 우리 군과 이라크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아랍권에 평화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이라크의 재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는 긍정적인 위상을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략이 성공한다면 미국으로서도 절대 손해 볼 것은 없다. 흉흉한 이라크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오히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강화되고 있는 국제적 현실에서는 더더욱 우리의 입지는 작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국과 약소국의 외교라 하더라도 공짜는 없다. 누가 좀더 큰 것을 받고 누가 작은 것을 받냐의 차이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다소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돌려 보자. '이라크 파병을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파병하되 파병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하자'는 것이다.

심정적, 이론적, 논리적, 이념적으로는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지만 정녕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파병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는 있다. 오히려 파병반대자들이 해야 할 일은 지금부터가 많다. 열렬한 반대 의견이 있어야 정부는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엎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과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병찬성자 보다는 반대자가 더 국익에 기여한다.

3. 이라크 파병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가장 먼저 우려되는 것은 경제적인 손실이다. 파병비용과 재건분담금은 안 그래도 어려운 우리의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다. 하지만, 눈에 확 들어나거나 당장 느껴지는 것은 아니니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경제적인 이익은 뭐가 있을까? 아마도 단기적으로는 거의 없을 것이고, 장기적으로도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일단 경제적인 면에서는 손해다.

다음으로 정치적인 면을 보면 노무현 지지세력의 이탈이 더 늘어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노무현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의 재신임 논란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재신임에 기우는 것은 반한나라당 의식이 강하기도 하지만, 안정희구 세력이 그만큼 많다는 것도 뜻한다.

특히, 전쟁을 겪은 세대는 노무현을 좌파적이고, 급진적이고, 반미적인 성향으로 봐 왔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해 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전체적으로는 좀더 많은 지지를 끌어들일 것이다.

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라크 파병을 명분으로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게 북핵문제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의 뉴욕타임즈 기사가 오보라고 하더라도 파월 국무장관이 제시한 '문서화된 불가침 약속' 등과 같은 새로운 정책이 미국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승주 대사나 외교부 장관이 친미도 아닌 숭미주의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국가간의 중대사에 대한 주고받기식 외교협상 결과가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알려지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두고 볼 일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이번 이라크 파병을 통해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를 연계하여 미국으로부터 일정한 양보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파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선제공격 독트린'을 재천명하였을 뿐 아니라 내년 11월의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보다 자극적인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X주고 뺨 맞는 꼴'이 되기 때문에 매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제 호들갑은 좀 그만 떨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국민들이 텔레파시를 주고 받자는 것이다.

'파병 결정했으니 지지를 철회한다느니 말거니'하는 식의 감정만 토해 낼 것이 아니란 말이다.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어도 작금의 현실에서는 파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왕 할 수 밖에 없다면 잘 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지 소모적인 논쟁만 해 봐야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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