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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고 서 있는 폐가
비를 맞고 서 있는 폐가 ⓒ 김광재
장맛비 내리는 날, 그 집은 제 몸을 빗물에 녹여 조금씩 땅에 내려놓고 있다.

회칠이 떨어져 얼기설기 엮은 대나무가 드러난 벽은 뿌리는 비에 아랫도리를 적시며 서 있다. 비를 막아주던 처마는 기와, 나무 조각 섞인 흙무덤이 되어 옆 마당에 넋 놓고 앉아 있다.

한옥 지붕은 하늘에 떠 있는 작은 땅이다

한 귀퉁이가 뚝 잘린 지붕은 오랜 시간 숨겨왔던 속을 드러내 놓고 있다. 서까래와 기와 사이에 저렇게 많은 흙이 들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지붕은 하늘에 떠 있는 작은 땅이었다. 무너져 내린 지붕은 하늘 소풍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 온 셈이었다.

그러나 아직 완강히 고집을 부리고 있는 기둥과 들보. 그로 인해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한 지붕은 온갖 풀을 키우는 공중정원이 되었다. 풀뿌리는 지붕의 속살을 구석구석 헤집고 있다. 지붕은 비록 하늘에 떠 있지만, 땅 구실을 다하고 있다.

지붕 위에서 자란 풀들은 올 가을 남보다 멀리 씨앗들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어머니 '하늘 위의 땅'에 감사하며 마른 몸을 뉠 것이다.

기와 틈으로 풀들이 자란다
기와 틈으로 풀들이 자란다 ⓒ 김광재
사람이 떠난 뒤 기둥은 더 많은 생명의 보금자리가 됐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기둥은 꼿꼿이 서 있다. 싸늘한 주춧돌에 모둠발로 올라서기 전, 살아 있는 나무를 상상해 본다. 무성한 잎으로는 하늘의 기운을, 뒤엉킨 뿌리로는 땅의 기운을 빨아들여 열매를 살찌우고 눈을 맺었을 것이다. 그 직립의 기억 때문에 기둥은 한사코 눕기를 거부하며, 땅과 하늘을 이으려 하는 것일까?

기둥 속으로 개미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 더 이상 피가 돌지 않는 목질 속에서는 여왕개미가 쌀밥같은 알을 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둥은 이미 저 혼자 완전한 집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아닌 개미를 위한. 기둥이 바로 서 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옛 기억이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 주어진 임무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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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풀·나무·벌레·새들이 어울려 산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이지만 정성들여 잘 지은 집으로 보였다. 두칸짜리 대청의 대들보는 가운데가 위로 굽은 나무를 썼고,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청 양쪽의 조그마한 방에는 벽장도 마련해 놓았다.

대청 천장은 아직 깨끗하다
대청 천장은 아직 깨끗하다 ⓒ 김광재
오른쪽 방은 지붕이 무너져 벽은 시커멓게 썩고 있고 바닥엔 흙더미가 쌓였다. 이에 비해 왼쪽 방은 아직 생생하다. 천장에는 70년대 풍의 격자 모양 사방연속무늬 벽지가 붙어 있다. 대청에 앉아서 보면 처마끝이 물결처럼 울렁울렁 하다. 군데군데 기와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젊음의 날렵한 선은 잃었다. 마루 천장에 까만 전선 감고 있는 애자의 하얀색이 선명하다.

마주보이는 산에 구름이 걷히면서 푸른 산이 말갛게 다가왔다. 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 사이사이로 새소리도 들린다. 마당은 온통 풀로 뒤덮여 있고 감나무 잎은 윤기가 난다. 감나무 아래 나리꽃 몇송이가 사람 구경 첨 하는지 고개를 빼고 본다.

이 집에서는 풀이며 나무며 새들이며 벌레들이 잘 어울려 산다. 사람이 살다 떠난 곳이 이렇게 고스란히 자연으로 되돌려지고 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인간의 집은 쓰러지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삶조차 그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당에 핀 나리꽃
마당에 핀 나리꽃 ⓒ 김광재
우연히 만난 폐가... 몇 년새 많이 허물어져

여행을 하다보면 뜻밖의 것에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이 폐가와의 첫 만남도 그랬다.

몇 해 전 경북 청도군 화양읍 남산자락의 대응사에 왔었다. 운동화, 티셔츠 차림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그린 심우도(尋牛圖)가 있다고 해서 보러 온 길이었다. 그날 여행에서 나는 심우도보다 이 쓰러져가는 집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너지 지붕 으로 드러난 풀뿌리들
무너지 지붕 으로 드러난 풀뿌리들 ⓒ 김광재
절 건너편에 큰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기와지붕이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몇 걸음 들어가니 사람이 살지 않는 아담한 한옥이 나왔다. 집은 전부 세 채의 건물로 돼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본채는 별 손상은 없었다.

본채와 ㄱ자를 이루고 서 있는, 부엌과 광으로 사용했을 별채는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육탈된 짐승 갈비뼈처럼 서까래가 다 드러났다. 건물은 이제 완전히 무너져 그 자리를 잡초가 뒤덮고 있다. 문간채는 시멘트와 슬레이트로 지은 오래 되지 않은 건물인데 지금도 건재하다.

본채 처마 마구리를 함석으로 씌운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나 그 직후에 지어진 건물인 듯싶었다. 집의 내력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버려진 집에게 살던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이랴.

인근에서 양봉하는 사람 말로는 "군수 마누라 집"이란다. '군수집'도 아니고 '군수 마누라 집'이라고 한다.

추억여행 후 낙대폭포 물맞이는 덤

이 집에 온 사람은 생명의 힘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더러는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여기 살았던 옛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할 것이다. 가을 오후에 찾아 온다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에 가슴이 아리고, 산이며 집 주변 나무들의 단풍에 취해 혹 눈물 한방울 흘릴지도 모르겠다.

눈 내리는 날엔 따뜻한 아랫목이나 차가운 자리끼 한 모금에 잠이 확 달아나던 외풍 센 방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집은 사람들에 아랑곳 않고 조금씩 조금씩 지상으로 내려오느라 바쁘리라. 해머가 후려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오래 걸릴 것이다.

그 집은 청도군청을 오른쪽으로 끼고 낙대폭포(약수폭포) 가는 길로 올라가다, 큰 자연석에 새긴 '대응사' 표지 옆으로 들어가면 찾을 절 맞은편 길과 비슷한 높이에 지붕이 보인다.

이 집에서 떠올린 상념들은 낙대폭포까지 울창한 숲과 정겨운 산길을 걸으며 가라앉히면 좋다. 여름에는 폭포 물맞이로 마무리하고.

낙대폭포
낙대폭포 ⓒ 김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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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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