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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의 “다시 이계경 전 여성신문 사장의 '선택'을 말한다”는 기사는 이계경씨가 최보은씨와 무슨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최보은씨는 이 계경씨와 같은 곳(페미니즘)에 한 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벌써 내년 총선을 걱정한다. 여성 노동자에게는 이건희 회장 밑에서 일하는 것과 이회창 사모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전혀 다르지 않는데도 말이다.

시작

1857년 1만 5천여 명의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작업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거리로 뛰어나갔다. 밀라드 필모어(Millard Filmore)에서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로 이어지는 미 정부는 섬유 의류 노동자들의 이러한 투쟁에 강경 대응했다.

1848년 뉴욕에서의 여권대회가 개최되고 이후 여성의 참정권 요구는 흑백인종차별주의와 함께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주요관심사였다. 자본주의의 억압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주고 있었다.

대립은 점점 격화되었다. 1908년 거리로 나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작업조건 개선뿐만 아니라 미성년 노동의 금지와 참정권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나서 1910년 3월 세계 여성의 날이 독일의 여성노동운동 지도자인 클라라 체트킨의 제창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날은 그 이후로 전세계 모든 여성 노동자들의 기억에서 “억압에서 해방으로”의 날로 아로새겨졌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 여성의 날이 일부 여성 지도자의 날이 되었는가? 어떻게 세계 여성의 날이 여성 장관이나 여성 정치인의 날이 될 수 있는가? 여성의 날을 기념한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처지가 다른 남성 노동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확인시켜 준 것인데 그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은 남성과 다르다는 출발점에서 여성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급기야 지금 세계 여성의 날은 아예 이렇게 의미가 바뀌어서 대학과 거리에서 전달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앞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여성 노동자가 남성과의 차별에 항거하여 시위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제정된 것이다”클라라 체트킨이 지하에서 울겠다. 어떻게 된 것인가? 과연 남성을 적으로 두는 페미니즘에 미래는 무엇일까?

페미니즘

한 쪽에서는 중산층 백인 여성들의 페미니즘은 자신들의 페미니즘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한 것에서부터 남녀의 모든 것이 평등해야 한다는 급진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페미니즘 그 자체보다 페미니즘의 정치적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온건, 개량 여성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굉장히 넓어져 있다.

페미니즘의 상대어는 흥미롭게도 남성주의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반대는 계급의식이다. 갤러허와 크래머의 케이크 파티는 페미니즘의 거울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차이점은 그들이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가부장제와 남성 이론’에 반대하는 공통된 페미니즘 이론에 있다.

남한에서의 페미니즘을 보려면 우선 여성 참정권자들과 여성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시대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90년 초반의 운동의 물결은 이념적 혼란기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스탈린주의였다는 것이 인정하기 싫었지만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동유럽 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질 때 단 한 번만이라도 헝가리나 폴란드 그리고 체코와 유고에서 노동자들의 혁명투쟁은 없었고 모스크바의 탱크가 권력을 대신해주었다는 것을 돌아보기만 했더라도 혼란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스탈린주의 정부들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직·간접적으로 거래하면서 전세계 좌익에게는 스스로 혁명정부인 양 본모습을 숨겨왔기 때문에 남한의 좌익들도 다른 전세계 좌익들과 마찬가지로‘교조주의와 수정주의’의 싸움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혼란과 무기력 그리고 자신감 부재 속에서 대안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9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알뛰세르와 그람시 그리고 담론과 다원성의 세계였다. 이런 조건은 스탈린주의의 폐허 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갈 수 있는 좋은 토양이었다.

당시 김 문수 씨의 지적처럼 운동은 점점 더 ‘구체화’되어갔다. 그리하여 모든 부문에서 운동들이 갈갈이 나뉘어졌다. 좌익은 더 이상 정부를 상대로 효과적으로 투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공동체운동이라도 벌여야 직성이 풀릴 것처럼 각 부문에서의 대안을 내세웠다.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갈수록‘대중적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사상적 이론적 혼란은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었다. 가장 커다란 대안은 곧 ‘대중’ 선거가 되었다. 더 이상 투쟁으로 정부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지자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정부를 바꾸어보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좌익들 중 일부에게는 여성이야말로 선거권을 갖고 있는 투쟁의 장으로 끌어들이기에는 어렵지만 즐거운 선거의 장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1표였다. 그래서 많은 좌익은 개량주의라는 비판을 무릎 쓰고 ‘개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성계

여기에 이론적 사상적 금칠을 해준 사람들은 바로 여성계로 통하는 지식인들이다. 이들 여성계 인물들은 급진 여성주의의 일부와 항상 한 손을 맞잡고 여성 전체를 이끌려했다. 페미니즘 이론과 내용은 대학강단에서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한바탕 용트림을 했다. TV에서도 페미니즘을 소개하면서 하나의 대안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금 전국 어디에서도 여성을 상대로 한 독자적인 단체나 내용이 없는 곳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여성은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모든 방면에 걸쳐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여성주의의 이론적 한계는 자본주의의 극복이 아니라 남성 극복이 궁극적 대안이기 때문에 팽크 허스트처럼 전시 체제에 대해 협력할 수 있는 것이고 아무리 보수적이라도 남성을 극복하면 되는 것이기에 이계경씨처럼 한나라당을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최보은씨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그리고 후진 페미니스트들에게 충고하기 싫겠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영국의 반나찌 동맹에 협력하기도 하고 그 반대편에 서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60위가 넘는다는 내용이나 고위공직자들의 비율이 5%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계와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애타게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여성비례가 30%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앞으로 여성 총리와 여성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까지 여성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든 정계에서의 자신들의 비율을 높이려 하는 몸부림일 뿐이다.

하지만 여성주의자들이 통계표를 내밀고 숫자를 들이밀어 윽박지르려고 하는 대상이 비단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국회 의원들 뿐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점이 있다. 그들은 여성 일부의 정치적 진출을 위해 여성 노동자 전체를 몰아붙인다. 여성노동자들의 무식함을 한탄한다. 그리고 나아가 남성 전체를 상대로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이 결국 남녀 노동자들의 단결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자신들의 주장에는 계급의식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지만 노동자로서의 여성에게 장 상 씨가 자신과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겠는가? 강금실과 가리봉 오거리 지금은 IT벨리로 되어있는 그 거리의 공장 여성 노동자가 무슨 공통점이 있겠는가?

아이들 학습지 하나 더 시키거나 학원비를 충당하고 약간의 생활비를 벌고 있는 그들에게 장 상과 강 금실은 대안일까 아니면 대상일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대성산업 김 성주 CEO와 대성산업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

그건 옛날 얘기고, 여성의 처지가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의 평균 생활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반면 여성 지도자들의 위치나 힘 그리고 권위는 엄청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페미니즘의 원조격인 유럽과 미국의 페미니즘 성장과도 비슷하게 일치한다. 최 기자가 인정하기 싫겠지만 페미니즘 안에서의 빈익빈 부익부는 그래서 더욱 강화될 것이다.

페미니즘의 미래

가부장제에 기초한 법적·정치적 구조와 사회·문화적 제도가 여성억압을 가능하게 하는 것 외에 생물학적인 성(性) 즉 남성을 여성의 정체감과 억압의 주된 원인으로 보는 것은 급진적 페미니즘이건 온건 페미니즘이건 간에 공통분모이다.

이 공통분모 때문에 페미니즘은 개혁적인 또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방해하는 그리하여 극복되어져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투쟁적으로 보이거나 개혁적으로 보이는 것은 권위주의가 판을 치고 자유주의가 빈약한 남한에서의 일시적 현상이다. 억압적 요소들이 아직도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미니스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않고 그들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그들은 메리크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무식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자신들을 남성 정부가 인정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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