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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던 순간 전 긴 안도의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비록 작다고 할지라도 DJ의 공을 무조건 악으로 둘러엎지는 않을 사람이 노무현이라고 믿었기에, 최소한 이 땅에 통일과 평화의 횃불을 계속 밝혀줄 대북한 포용정책을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지역감정의 마녀사냥이 중단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당선자에 대한 축하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습니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그러나 제가 DJ 당신을 알게 된 것은 87년 고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 15년이 훌쩍 넘어 버렸군요. 항상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어느 누구한테도 당신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면서도 매번 선거에서 당신을 찍었고 저의 가족은 항상 당신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왜 제가 그렇게 바보같이 표현의 자유를 포기했었는지 꼭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 좋을거라 판단했습니다. 이글을 읽을 내친구도 내 아내도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 놀랄겁니다.

제 고향은 전라북도 익산입니다. 제가 DJ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된 87년은 제가 고3때였는데 그당시 투표권하고는 상관없는 나이였으나 당시 학교 국어선생님이 틈만 나면 당신에 대한 칭찬을 했었죠. 그 분 성함이 "김대종"였기에 그 인연으로 그랬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전라도에서도 이번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열변도 기억이 날 듯 하구요.

암튼 그 당시엔 학교에 가도 김대중이고 집에 가도 김대중, 심지어 87년 당시 해태와 빙그레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에서 빙그레 선발투수가 "김대중"이었는데 엄청 점수를 주자 광주 만원관중이 김대중을 연호하는 소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보단일화의 실패와 YS, DJ의 호남과 영남에서의 유세중에 발생하는 폭력사태로 영.호남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이 되었습니다. 전 87년 대학입시에 낙방하며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익산을 떠나 경남 울산시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 정말 말투도 조심했었습니다. 다행히 사투리가 심하지 않아 많은 친구들이 절 서울출신으로 알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친해진 친구들에게 몰래 전라북도 익산 출신이라 밝히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회분위기로선 전라도와 경상도가 무슨 대단한 철천지 원수의 분위기였었기에. 암튼 전 울산에서의 1년을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놀러도 다니며 그곳에서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였습니다. 사귀게 된 여자친구의 집에서 제가 전라도 출신이라 사귀지 말라고 말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 정말 친구관계도 전라도 출신이라 안된다니. 그때부터 인지 전 대학생활하면서도 '전라도 출신'이란 피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 후 집안 형편이 좋지않아 어렵게 구한 입주과외 자리에서도 출신이 전라도라 안된다 하였고, 군 제대후 새로 사귄 여자친구 집에서도 전라도 출신이라 안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놈의 전라도에서 태어난 게 뭐가 어쨌다는 이야긴지. 너무나 허탈하고 화가 났었죠.

그런 부당한 기억들이 모여 당신에게 법적으로 나의 투표권을 던질수 있었던 92년 대선에서부터 꼭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고향이 어디냐구 물으면 서울이라고 말했으며, 92년 대선에서 누굴 지지할 거냐구 물을 땐 백기완씨를, 97년에는 권영길씨를 찍을거라고 거짓말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의도를 숨긴 채 김영삼이 안되는 이유, 이회창이 안되는 이유를 말하곤 하면서 적어도 당신의 반대편에겐 표를 찍지 못하도록 공작(?)을 하곤 했었죠. 물론 그때마다 제 고향이 서울이란 걸 거짓으로 강조하면서 말이죠.

암튼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정말 당신이 정말 제대로 해서 욕 안먹길 바랬습니다. 최소한 전임 YS처럼 친인척 잘관리해서 전라도란 걸 숨기지 않아도 될 사회가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신문지상에서 말하는 소위 전라도 역차별로 그럴 수 있을거라며 받아들여한다고 생각했고 암튼 욕만 안먹고 제대로 했다고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말고도 이런 생각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이 했을 겁니다. DJ가 대통령 돼서 청구, 우방, 대동은행, 동남은행이 무너지는 건 전라도가 경상도 피말린다는 이야길 들으면 난 서울사람이지만 전라도도 해태,거평, 나산 등이 무너졌고, 망하는 건 경영자들이 사업을 못해서 그런 거지 정부가 어떻게 망하게 하냐고 당신을 두둔했고.

부산에서 삼성자동차가, 대구에서 삼성상용차가 문을 닫을땐 당신을 욕하면 안되고 삼성을 욕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당신에 대한 지원은 조중동의 딴지걸기와 소위말하는 3홍비리란 사건으로 정말로 창피하고 암담하고 허탈하게 돼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노무현이 나타났습니다. 2000년 8월 당시 노하우에 노사모로 회원가입하며 이런 용기있는 사람이 꼭 대통령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기억과 함께. 더군다나 노무현이란 사람은 당신의 재벌개혁 정책, 대북 포용정책 등에 대하여 계속 승계할 거란 걸 약속하였고 더군다나 90년 3당 합당때부터 지역통합을 일관되게 주장한 사람이 이었습니다.

전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지하철역에 나가 노사모와 함께 율동했고, 마누라 몰래 후원금을 보내고 국참본부에 무려 300여개의 지인 이멜을 등록하고. 그러면서 제가 생각했었던 것은 남북을 분열시키려는 냉전세력,틈만 나면 대구 부산에서 지역감정을 돋구었던 분열세력, 조중동과 개혁을 저지하려는 수구세력이 되면 계속 전라도가 고향임을 숨겨야 한다고. 그래서 노무현이 되어야 한다고.

정몽준이 마지막날 헛질할 때는 잠 한숨 못자고 문자 보내고 채팅방에서 투표 독려하고. 심지어 투표 안한다는 누나와 형에게 전화해서는 동생이 선거법 위반이니까 노무현이 안되면 감방갈 줄 모른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그때의 심정은 내 자식한테는 전라도란 걸 숨길 필요없는 사회, 북한에 대한 증오가 필요없는 사회가 되어야한다는 것 뿐이었죠.

오늘이 2월 24일,
내일이면 노무현 당선자가 취임하니 DJ 당신은 오늘 퇴임하는 것이 맞다면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이겠죠. 60년인가 인제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무려 40여년간 한국정치의 중심에 서있었으면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당신.

목숨을 걸며 이나라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고, 망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선 국고를 채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냉전이 끝난 세계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렸던 남북관계를 평화와 대화가 지속되게 만들었던 당신의 노력도 조중동의 딴지와 두 아들의 비리와 당신이 전라도 출신였기에 묻힐 순 없을 것입니다.

아니 몇 달전에는 그런 걱정을 저도 그렇지만 DJ 당신도 했겠지요. 하지만 이젠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고, 어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도 당선되기 전에 말씀하신 대북 포용정책,지역감정 해소,경제 및 언론개혁에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퇴임하면 앞으론 푹 쉬도록 하십시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그런 열정을 기억할 것이며 저또한 오늘 커밍아웃 할 계획을 갖도록 하겠습니다.이젠 당당히 제가 전라도 출신이며, 그거하곤 별개로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했다고..

덧붙이는 글 | 5년 동안 불편한 몸으로 고생하신 김대중대통령 부부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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