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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는, 정말 몇년만에 밖에서 어머니와 점심 약속을 했습니다. 고등 학생 시절 부터 학교다 독서실이다 친구다 해서 밖으로만 나돌던 탓에, 차려주시는 저녁도 가끔 먹게 될 정도로 한 상에서 식사할 틈이 없었던 차 였습니다. 마치 애인과의 점심약속이라도 기다리시는 듯 설레는 모습의 어머니를 보며 그간의 무관심을 반성했던 건 물론이구요.

모처럼 신경쓰신 티가 나는 차림새로 제 직장에 오신 어머니는 다소간 안도하시는 모습이셨습니다. 일찌감치 스스로의 선택 만으로 살아가는 큰 아들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시면서도 겉으로 내색 않으시던 어머니는 아들이 멀쩡히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선택한 '전문인들의 직장'이라는 곳의 모습을 보시며 내심 안심하시는 눈치이셨습니다.

호기롭게 웃으시며, '내가 쏜다!' 시던 어머니와 함께 돈가스를 시켜 먹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것 보단 맛없지? 그치?' 라면서도 두리번 두리번, 말끔한 직장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연신 흐뭇해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닥 맛있을 리 없는 구내식당 돈가스의 맛을 서너배쯤은 키워주었고,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지껏 무심했던 큰아들로서의 죄스런 마음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순간 만큼은 상기된 얼굴이 제 여자친구보다 예쁘던 어머니의 얼굴 때문이었는지, 그만 크게 체하고 말았습니다. 점심식사후에 집으로 먼저 보내 드린 뒤 얼마 되지 않아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조퇴한 아들을 보고 어머니께선 많이 놀라셨지요.

별다른 말도 없이 체했다고 하며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서 앓다가 몇번이고 구토하는 저를 붙잡고, 밤새 약을 먹이시고 손가락을 따 주시던 어머니께서 들릴듯 말듯 푸념하셨습니다. "내가 괜히 갔던 게야. 뭘 한다고 거기까지 가서 밥 잘 먹고 이렇게 앓게 만드나. 내 잘못이지." 당시엔 고열에 구토에 까지 시달리며 아파서 정신 없던 때라 몰랐지만, 무려 열 다섯시간을 자며 앓고 난 후, 지금 그 한숨 섞인 푸념을 되새기며 눈물이 납니다.

가끔씩 체 할때마다 크게 고생하는 변변치 못한 소화 기관이 하필이면 오랜만에 가진 모자지간의 귀중한 시간에 맞춰 고장을 일으킨 것을,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랑 앞에 도저히 섣불리 할 말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이미 십대 후반때부터 수년간을 심정적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있던 제가, 이제 얼마 안있어 직업군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며 새로운 앞날을 위한 공부를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군에 관한 생각과 결정한 행동에 차이가 좀 있습니다만, 현실적 길 앞에서 스스로 선택한 고행입니다. 물리적으로도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써 스스로의 앞날을 개척해야 할 그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이제야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알아가기 시작한 부모님의 큰 사랑에, 한번 이라도 더 얼굴을 맞대고 함께 해 드리는 작은 보답이라도 실천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효자'는 커녕 '착한 아들'이라는 말  부끄러워야 할 제가 어머니에 관한 글을 두번이나 쓴다는것이 많이 망설여 졌습니다. 어릴적 부터 유난히 독립심을 강조하시던 부모님의 교육탓에 이십대가 되고 난후 몇 년간은 의견 충돌도 많았고, 부모님에 대한 무관심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평소엔 엄하기만한 모습이었던 어머니의 푸념이 이리도 가슴 아픈 건, 철없는 아들의 자성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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