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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선생의 편지글 형식의 논쟁제기글 '이문옥 외면은 또 다른 국민 사기극?'이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이후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만 이틀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500여 건의 독자의견이 올라왔고 윤석훈 기자와 최항기 기자의 반론이 게재되었습니다.

진중권 선생은 이문옥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가 1. 부정부패 문제 2. 지역차별 문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삶을 살아왔고, 또 모든 사람들이 부정부패와 지역감정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소수정당'의 후보라는 이유로 그를 시장 후보로 진지하게 생각해 주지 않는 것이 강준만 선생이 말씀하셨던 '국민사기극'의 일종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어느 네티즌이 말했듯 '경기도민 진중권이 전북도민 강준만에게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 질문'하는 현실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지방자치단체 선거마저도 정당의 판세싸움에 맞춰 해석하는 한국 사회의 상식인들의 사고구조입니다.

한국사회의 상식인들은 정치를 전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략과 전술을 분석해 정치를 이해하려 합니다. 총선시민연대가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낸 사건은 '음모론'으로 폄하되고, '노풍(盧風)'은 '김심(金心)'으로 규정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조직도 없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가 어떻게 사람을 모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준만 선생은 이인제와 이회창이 뻔히 눈에 보이는 병력으로 '전쟁'을 개시하리라고 누구나 예상하고 있을 즈음에 사람을 모으는 '정치'를 말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데도 반영되지 않는 것은 '국민사기극'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호감을 주는 정치인으로 언제나 물망에 오르고 있었는데도 병력(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원하지 않는 언론의 상징조작 때문에 국민들에게 "대통령 감이 아니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전쟁이라면 여당 경선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노사모 1만은 이인제 지지세력 5만과 동교동계에 전멸당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하자 노풍은 폭풍이 되어 전국을 덮쳤습니다. '국민사기극'이 깨졌습니다. '정치'가 실현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노풍으로부터 배태된 좌파 정체성의 위기를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는 윤석훈 기자의 상황 인식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노풍의 성공으로 사람들이 대세나 주류가 아닌 자신들의 가치 판단 기준을 선명하게 드러낼 가능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윤석훈 기자의 말대로 "정말로 세상 많이 좋아"져서 진중권 선생이나 홍세화 선생이 신문 지면에다 대고 '사회주의자'임을 커밍 아웃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드러내라!"고 요구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드러냄의 내용이 좌파와 동떨어져 있다 해도 사람들이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진 소비자가 되는 담론의 시장이 형성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득입니다. 그곳에서 좌파는 커밍 아웃을 "함께 꾸는 꿈"으로 진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좌파는 노풍에서 정체성의 위기가 아닌 환희를 느껴야 합니다.

저는 윤석훈 기자와는 달리, 이문옥 후보가 "이념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내민 '분바른 손'이 아니라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진검'이라고 봅니다. 태연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한국 사회를 통제하는 부패라는 거대한 고리에 정면으로 맞설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부패 문제는 국민들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므로 진보정당이 이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념에 기초한 정당 지향"과 "실용주의적 온건 보수 노선"의 모순은 한국의 좌파 정당이 고민하기에는 너무나 먼 미래입니다. 그 '먼 미래'가 현실로 닥쳐왔을 때, 모순을 안고 갈 것인지 각자의 길을 따로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면 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부대표로 재직했던 이문옥 후보의 선명성은 문제삼을 구석이 없습니다.

최항기 기자는 국민사기극을 깨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이문옥 후보의 사례를 국민사기극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첫째 이문옥이 서울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이지 국민사기극이 아니며, 둘째 노무현의 부산에서의 도전은 민주당과 관련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이문옥의 광주에서의 도전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제시합니다. 첫째 이유는 민주노동당의 인지도와 언론 보도의 문제이며, 둘째 이유는 순전히 언론 보도의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최항기 기자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을 언급함으로써 "민노당 지지자가 민노당 후보 찍는 것 당연하고, 민주당 지지자가 민주당 후보 찍는 것 당연하다"는 말을 하려는 듯 합니다. 그러나 진중권 선생이 주로 설득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으로 보여지는 노무현 지지자들 중의 절반 정도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민주노동당의 인지도는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닙니다.

이문옥 후보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이 철저하게 양당구도로 가고 있다. 이런 불공정성을 어떻게 극복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내 경우는 며칠 안 있으면 지지율이 10% 이상 오를 것이기 때문에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고 대답한 바 있습니다.

이문옥 후보는 당과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만큼 지지율이 높아지는 사람입니다. 그의 자신감은 광주에서 시민단체 후보로, 노원에서 꼬마 민주당의 후보로 아무런 조직적 기반도 없이 출마해서 각각 27%, 13%의 표를 얻었던 전력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를 알릴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언론에서 배제되었던 것은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노사모는 활자매체가 아닌 인터넷에서 형성한 여론도 현실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문옥 후보를 알리려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여론을 만들면서 동시에 언론이 이문옥 후보를 다뤄주도록 압박해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거대한 벽에 부딪힙니다. 그것은 언론의 벽이 아닌 노무현을 지지하는 네티즌의 벽입니다.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는 이문옥·김민석·이명박 세 후보를 비교검증하기도 전에 "노무현을 위해 김민석을 당선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당 지지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노무현 지지자들을 김민석 지지로 끌어들이는 주문입니다. 이문옥 후보의 등장은 그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줬지만 게시판의 주류는 이문옥을 말하는 사람들을 "민노당의 선전선동"으로 치부했습니다.

사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투표할 서울시민들은 당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서울시민들은 서울시를 위해 유능한 인물을 시장으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을 위한 김민석 서울시장"은 일반 시민들이 듣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는 연결입니다. 그것은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선전을 마땅히 바랄 민주당 당직자가 아닌, 올바른 정치를 위해 "어느 탁월한 정치가"를 선택했던 유권자가 깊게 신뢰하고 행동준칙으로 삼을 만한 판단기준은 안 된다고 봅니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가설은 우리의 정치사에서 한번도 입증된 바 없는 미신일 뿐"이라는 진중권 선생의 지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김대중 정권의 말기 부패사건들이 지방선거를 통해 심판된다면 대선에서 민주당에 더 유리할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지역화합의 아이콘이었듯이 이문옥 후보는 부패추방을 위한 아이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인터넷 여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의 견해는 큰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최항기 기자의 말대로 "양쪽"이 아닌 한쪽만을 지적하는 '편협한 시각'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자기모순의 문제를 간과한 것입니다. 이회창을 위해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겠으나 그 사람들은 평생 그런 시각으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지지자들 중의 일부는 국민사기극을 깨뜨린 '정치'의 논리가 아닌 '전쟁'의 논리로 다가올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대혈전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될 사람을 찍자"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대개 진보적인 유권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이러한 패배주의는 이문옥 후보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으로 귀결됩니다.

저는 '한나라당 서울 시장'을 볼 수 없어서 될 사람을 지지하겠다는 '전략적 투표'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마음을 열고 공정한 경쟁을 용인한 이후에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준다면 '될 사람'이 누가 될지는 선거 직전에 가봐야 압니다. 김민석에게 위험하다고 이문옥을 무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노무현 바람'이 '국민사기극'을 깨뜨린 귀중한 사례로서 기억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은 '음모론'의 유탄을 맞았지만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노풍은 당리당략에 좌우되지 않는 국민적 합의가 한 정치가를 통해서도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노풍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고, 앞으로 다른 절반의 성공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당파성을 넘어 크고 작은 다른 '국민사기극'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주는 선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중권 선생이 강준만 선생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차이의 연대'를 말하며, 우리 시대의 시민적 상식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강준만 선생에게 시민적 상식의 수준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홍윤기 선생이 강준만 선생의 논지에 공감하는 측면에서 '일상적 파시즘'이란 용어를 사용하길 요청했다가 임지현 선생에게 거절당한 일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만약 강준만 선생이 어떤 타당한 이유로 인해 이문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국민사기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거부하신다면 그것 자체는 온당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강준만 선생이 창조한 '국민사기극'이라는 담론의 함의와 활용은 선생의 답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강준만 선생의 답변의 내용과 상관없이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진중권 선생의 질문의 의도에 크게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선생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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