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훈님, 2004년 '밀양 성폭력 사건'이 20년 지나 다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이 가해자로 추정하는 한 남성이 유명 유튜브 채널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6월 초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가해자 색출과 신상 공개가 시작되고 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는 1년여 가까이 44명의 가해자에 의해 고통받았습니다. 수사 과정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밀양물을 흐려놓았다" 등의 말로 2차피해를 입혔습니다. 수사 과정에서의 보호도 미흡해, 가해자 가족으로부터의 압박과 모욕에 피해자 가족을 노출시켰고요.
검찰은 44명 가운데 10명만 기소하고, 20명은 송치, 13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기소된 이들에게조차 전과가 남지 않는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피해자가 합의했고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며 면죄부를 준 것이지만, 실상 합의는 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고 피해자는 학교를 결석하고 가출한 상태였습니다.
일상 회복과 치유를 원했던 피해자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서울로 전학을 갔지만, 가해자 부모가 탄원서를 써달라고 찾아온 후로는 학교도 그만뒀다고 합니다.
가해자는 전과 기록도 남지 않았는데,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주거환경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심리적·육체적 건강도 불안정한 상황"이고 "정식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및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20년이 지났지만 분통 터지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수사도, 판결도 다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이 직접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명 '사적 제재'입니다.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유튜버들은 가해자 신상 공개와 저격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동의받았다'라고 주장하거나, 피해자와의 통화나 판결 내용을 무단으로 올리는 유튜버까지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가해자를 잘못 지목해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언론들은 그러한 콘텐츠와 이에 대한 반응을 중계하다시피 하며 조회수를 끌어당깁니다. 사람들이 '정의'와 '응징'을 앞세우는 사이, 피해자의 삶은 또 뒷전이 됐습니다. 참 착잡한 현실입니다.
왜 연대하지 않고 심판하는가
"앞으로도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와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경찰, 검찰에게 2차 가해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요.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되어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 기자회견에서 대독된 피해자 자매의 입장입니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무분별한 가해자 지목과 신상 공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보호와 평안한 일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시민들을 향해 가해자를 찾아내고 심판하면서 분노를 해소하는 '판관'이 아니라, 피해자의 곁을 지키는 '연대자'가 되라는 요청이기도 할 것입니다.
온라인상의 판관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태에 열광하는 이들도 '나쁜 사람을 처단하는 것'에 대리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가해자 신상 공개' 사태에서 보듯 사실관계의 진위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판관 입장에서는 우월적 지위에 서서 '흠결 있는' 누군가를 재단하고 심판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틀려도 반성하지 않고 판관 노릇을 계속하는 유튜버들이 많을 수밖에요.
온라인상 심판의 대상이 꼭 가해자를 향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이번 '밀양 성폭력 사건'처럼 오지목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커뮤니티 여론에 휩쓸려 몰매를 맞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사이버렉카'의 저격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노조 활동을 하고 계시는 정훈님에게도 이러한 분위기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곳곳에서 판관들이 심판하면 우르르 몰려가 구경하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노 표출과 정의 구현이라는 탈을 썼지만, 실상은 놀이에 가깝습니다. 모두가 욕하고 있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정의 편에 선다는 (정체가 불분명한) 효능감까지 있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며 비난하고, 조준이 잘못됐거나 소위 '떡밥'이 떨어지면 다른 곳을 찾으면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쉽고 즐거운 일입니까.
반면 연대자는 어렵습니다. 정훈님도 그러한 일을 하고 계시지만, 책임을 지는 일이고 기꺼이 마음을 쓰는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연대는 자신의 흠결을 숨기고, 누군가의 흠결을 욕하고 평가하는 일과도 거리가 멉니다. 타인을 믿어야 하며, 그 때문에 '모난 돌'이 되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과 못남을 자각하고 성찰해야 될 때도 생깁니다. 연대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같이 싸우게 되고, 같이 싸우지 못할 때는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한 명의 피해자라도 줄이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