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0 06:54최종 업데이트 24.06.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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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혜

 
이제까지 대통령님을 위한 반도체 특별 과외 연재 기사를 통해 반도체 팹에서 다양한 가스와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그걸 잘못 다루면 위험하기도 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여러 번 설명했는데, 그게 잘 전달되었는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반도체 팹에서 사용하는 특수가스에 대해서 사고 사례를 중심으로 조금 더 깊이 설명하려고 합니다. 

유해성을 기준으로 한 가스의 분류
 
가스 등 화학물질을 취급할 때는 유해·위험성을 분류하여 그림문자로 만들어 부착해야 합니다.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먼저 가스를 그 유해성에 따라 어떻게 분류하는지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가스 중에 가장 만만한 게 불연성 가스입니다. 불연성 가스란 연소, 즉 스스로 타지도 않고, 다른 물질을 태우는 성질도 갖지 않은 가스입니다. 무색, 무취, 무자극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독립적으로는 딱히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불연성 가스가 있으니 가연성 가스도 있을 테죠. 메탄, 에탄, 프로판 등의 가스들인데 산소와 결합하면 빛과 열을 내며 불이 붙습니다. 위험하죠. 가연성 가스보다 더 불에 잘 붙는 것이 산화성 가스입니다. 삼불화질소, 붕소, 아산화질소 등이 대표적인데, 낮은 온도에서도 불에 잘 붙어서 전기 스파크와 같은 작은 불씨에도 금방 불이 붙어 위험합니다.


지금까지는 화재의 위험만 이야기했는데 독성가스는 존재 자체가 인체에 유해한 독성을 가진 가스입니다. 불화수소, 암모니아, 질산 등이 대표적입니다. 독성가스 누출 가능지역에는 가스 감지기와 경보설비가 설치되어야 하는 등 사용과 보관 과정에 지켜야 할 내용들이 법으로 촘촘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식성가스가 있습니다. 이건 가스와 접촉한 물질이나 장비 혹은 신체에 부식을 유발하는 가스로 삼불화붕소, 염소, 불화수소가 여기에 속합니다. 부식성가스 역시 안전한 취급을 위한 규정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만든 <화학물질의 유해성․위험성 분류 지침>을 보면 물리적 위험성, 건강 유해성, 환경 유해성 등의 항목 아래, 보다 세밀한 분류가 되어 있으니 가스의 위험성에 대해 관심 있다면 함께 찾아봐도 좋습니다.

반도체 회사에서 발생한 가스안전사고
 
2013년 1월, 당시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환경부 공무원,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 감식반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장에서는 불산 가스가 누출돼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하는 등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반도체 팹에서 웨이퍼를 가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스는 수십 종에 이릅니다. 독성가스와 부식성 가스도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반도체 팹에서는 사용하는 가스 별로 <물질 안전 보건 자료 : MSDS>를 비치해 두고 가스를 취급하는 작업자들에게 위험성을 고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스 사용과 보관 등을 위한 법이 정해져 있고, 기업들도 안전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가스와 관련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개만 보겠습니다.

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불산 관 교체 작업 중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불산 가스에 노출된 작업자 5명이 어지러움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한 명이 숨지고, 네 명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관계기관에 제때 신고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작업 당시 안전 장구도 착용하지 않았던 상태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8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이산화탄소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작업자 두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고가 발생한 지 5년 만인 올해 2월에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삼성전자와 하청업체 직원 아홉 명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가스 사고는 삼성전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2015년 SK하이닉스 공장 신축 현장에서 밀폐된 배기 시설을 점검하던 협력업체 직원 세 명이 질소 가스에 질식해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산소결핍이 우려되는 작업 공간이었지만 산소농도 측정과 같은 예방 조처는 없었습니다.

6년이 지난 2021년,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서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세 명이 병원으로 실려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해 11월에는 SK하이닉스 청주 공장에서 화학물질인 테오스(TEOS)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서도 이런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이니 다른 중소 반도체 회사나 소재·부품·장비 업체에서의 사고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테지요.

유독성 가스를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 팹의 경우 안전을 위해 안전 장구를 갖추는 것부터 가스 보관과 취급 과정에서 세세한 것까지 규정을 정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현장 안전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기준 관련 환경부의 보도자료. 기준 완화를 합리화로 둔갑시킨 뒤 그로 인해 현장 안전이 높아진다고 주장합니다.환경부 보도자료
 
지난 16일, 환경부는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기준 합리화로 현장 안전을 높인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제목만 보고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에 대한 안전 기준을 강화한다는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환경부가 말한 "합리화"는 안전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환경부가 보도자료에서 합리화했다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안전성 평가제도는 2014년 이전에 설치된 기존 취급 시설의 방류벽 등 4개 시설에만 적용되던 대상을 사업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모든 취급 시설과 새로운 기술까지 인정 범위를 확대했다.

2) 반도체 업종의 가스공급설비는 평상 시에 가스누출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유·누출이 발생하는 비상 시에 처리설비로 자동 연결되어 안전하게 처리되는 경우에는 상시 처리되는 것으로 인정했다.

3) 2022년 12월 31일 이전에 제작되어 사용 중인 유해화학물질 운반용기는 안전상의 결함이 없는 경우 검사기한(2.5년)이 경과하더라도 제도 시행 초기인 점을 감안해서 2025년 7월 31일까지 사용연장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가 막힙니다. 환경부의 이번 지침은 안전을 강화한 게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안전을 포기한 겁니다.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안전성 평가제도'란 안전을 위해 마련된 '화학물질관리법'을 지키기 힘든 기업이 대체 방안을 마련하면 법을 지킨 것으로 인정해 주는 특례제도입니다. 1번은 이 특례제도 인정 대상을 크게 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2번은 가스공급설비의 가스 누출과 처리에 관련된 시설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는 뜻이고, 3번은 유해화학물질 운반 용기의 검사 기한을 내년까지 연장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환경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쓰다 보니 안전과 관련된 규제 완화 조치가 "안전관리 강화"로 둔갑합니다.뉴스1 보도 화면
 
세 가지 모두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지만, 안전과 관련해서는 위험 확률을 더 높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합리화"를 통해 "현장 안전을 높인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보도자료를 받은 언론은 환경부의 주장을 그대로 담아서 <"반도체 시설 안전관리 강화"…화학물질안전원, 고시·지침 8건 개정> (뉴스1)이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환경부의 이번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 기준 관련 고시 및 지침에 대한 개정안은 어떻게 해석한다고 해도 안전관리 강화가 아니라 안전관리 완화입니다. 반도체 팹이 수없이 많은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잊을 만하면 이와 관련된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안전과 관련된 규정을 이렇게 쉽게 완화해 주는 이유가 과연 뭘까요? 

2022년 8월, 대통령님 취임 이후 이뤄진 환경부의 업무보고에서 환경부는 "환경은 살리고 부담은 줄이는 환경규제로 바꾼다"는 내용의 '환경규제 혁신 방안'을 보고했습니다. 그 혁신의 첫 번째 항목은 "허용된 것 말고 다 금지하는 닫힌(positive) 규제에서, 금지된 것 말고 다 허용하는 열린(negative) 규제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지켜야 할 환경부가 규제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안전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환경부
 
아무리 봐도 귀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입니다. 환경부의 규제 혁신은 환경뿐만 아니라 안전 관련 규제도 그 대상이 됩니다. 안전을 위해서는 허용된 것 말고는 다 금지하는 게 옳습니다. 그래야 안전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사고라는 게 1퍼센트의 확률로 발생한다고 해도, 일단 발생한다면 그건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규제 혁신이라는 환경부의 설익은 규제 완화가 또 얼마나 많은 인명사고를 불러오게 될지 겁이 납니다.

"합리화"란 말로 규제 완화를 감추고서 안전을 높일 거라 말하는 환경부에게 더이상 안전을 맡겨 놓을 수 없습니다. 서양 속담에 "작은 구멍이 큰 배를 침몰시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환경부가 지금 대한민국 안전에 구멍을 자꾸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말려야 합니다. 대통령님이 기업의 이익보다 국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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