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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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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교사들은 예상했던 시나리오라며 전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며 하나같이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다시 기용됐을 때부터, 이미 학교는 '이명박 시즌 2'를 염두에 뒀다는 거다.

얼마 전 정부는 사회관계 장관 회의를 열어 '교육 데이터 개방 및 활용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표준점수와 과목별 등급 비율, 백분위 등 수능 관련 모든 자료를 정책 연구자에게 제공한다는 게 골자다. 대입 관련 연구를 통해 실효성 있는 교육 정책을 발굴한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정부는 학교와 학생 이름 등 개인정보는 비식별 처리된다고 강조했다. 개방된 데이터가 사교육 등 영리 목적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과 '개인정보 보호법'을 철저하게 준수한다는 방침도 덧붙였다. 데이터 개방과 활용에 따른 부작용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방안에 대한 교사들의 비판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지역별, 학교별, 학생별 수능 성적은 온 국민의 최대 관심사여서 어떤 경로로든 결국 공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입 관련 연구가 부족해 실효성 있는 교육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상상 그 이상으로 처절한 학교의 몸부림

전가의 보도처럼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면, 주상 같은 법률도 순식간에 무력화되는 걸 우리는 익히 경험해 왔다. 일부 보수 언론은 부박한 여론을 부추겨 수능 성적을 공개하도록 채근했고, 명문대 진학 실적을 기준으로 전국 고등학교 서열을 기사화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스스로 학벌 구조의 파수꾼임을 자처한 셈이다.

언론에 수능 성적 상위 100위까지의 학교가 발표될 때마다 대입에 목매단 전국의 인문계고등학교는 북새통이 됐다. 진학 실적을 내기 위한 회의가 열리고, 입시 교과목의 경우 성적 향상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명문 학교'와 '똥통 학교'의 갈림길에서 학교의 몸부림은 상상 그 이상으로 처절하다.

서열화와 낙인의 굴레는 고래 심줄보다 질기다. 학업 성취도 향상을 위해선 이른바 '수월성 교육'이 불가피하다고 부르대고, 낡은 레코드판 마냥 고교 평준화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추진된 배경이며, 이를 주도한 이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이주호 현 교육부 장관이다.

만점보다 등수를 따지고, 점수보다 등급을 우선시하는 상대평가 체제 아래에서 학벌과 서열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보를 비식별 처리하고, 공개를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례로, 대학에 제공되는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교 이름이 가려지지만, 어느 학교 것인지는 몇 가지만 대조해 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아무리 의법 처리 운운하며 을러대봐야 공개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교사들의 공통된 인식에는 '이주호'라는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교사들은 그를 두고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우리 교육에 이식한 '골수 경쟁지상주의자'로 규정한다. 경쟁만이 우리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교육의 발전이란 곧 학력 신장과 동의어다.

경쟁교육을 신봉하는 이들에겐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금언조차 봉건적인 잔재일 뿐이다. 그들은 교육조차도 성과가 계량화된 지표로 산출되어야 할뿐더러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어야만 지속 가능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교육을 주식 시장의 단타 거래처럼 여기는 셈이다.

아이들을 밑도 끝도 없는 경쟁으로 내몰아 학업 성취도를 높이려는 발상이야말로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나아가 이는 협력과 연대라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부정하고 가로막는 반교육적 처사다. 고교 서열화를 강화할 게 불 보듯 환한 이번 방안은 현 정부의 퇴행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연구 부족이 아니라 정부 의지 박약이 문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023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023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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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입 관련 연구의 부족과 실효성 있는 교육 정책의 미비를 인과 관계로 이해하는 건 견강부회다. 지역별, 학교별, 학생별 수능 관련 자료를 연구 분석하면, 사교육 과열과 수도권 집중 현상 등 지금 우리 교육의 당면 과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 정책의 목표가 대입인 양 오해를 살 소지마저 있다.

단언컨대, 역대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교육 정책마다 실패로 귀결된 건 대입 관련 연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교육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고,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해결책을 몰라서가 아니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박약해서일 뿐이다.

온존한 학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아무리 대입 제도를 손보고 참신한 교육 정책을 내놓는다 한들 백약이 무효다. 우리 사회의 서열화한 학벌 구조는 이미 봉건시대의 신분제처럼 고착화한 단계에 들어섰다. '의치한약'을 제외하고 전공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아이들조차 남는 건 '간판'뿐이라고 선선히 말한다.

일반고에 견줘 특목고와 자사고의 명문대 진학 실적이 월등하고, 서울이 지방보다, 도시가 농어촌 지역보다 수능 성적이 크게 앞선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이를 보완할 목적으로 '지역 균형 선발 제도'를 도입했지만, 특정 지역과 학교의 명문대 독식은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극심해졌다. 학령 인구의 격감과 맞물리면서 이제 지방대는 소외를 넘어 소멸로 치닫고 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교육부에는 교육이 없다'

이번 방안을 통해 나오게 될 교육 정책은 '안 봐도 비디오'다. 장담하건대, 수능 성적이 뒤처진 지역에 '강남 대치동급 인터넷 강의'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해당 지역의 교육 환경 개선에 중점적으로 예산을 투입한다는 발표가 뒤따를 것이다. 그러잖아도 정부는 맞춤형 공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할 거라는 '뻔한' 청사진을 내놓은 터다.

지역별, 학교별, 학생별 수능 성적 공개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려는 교육부의 무모함에 교사들은 '교육부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부 부처 중에 가장 쓸모없는 곳이 교육부라는 거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교육부에는 교육이 없다'는 조롱이 난무하고, 언제까지 교육부의 '헛발질'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 시즌 1'이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상징된다면, '이명박 시즌 2'는 이번 '교육 데이터 개방 및 활용 확대 방안'으로 대표될 듯하다. 이름만 다를 뿐,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목표는 동일하다.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교육 정책은 그대로인 셈이다. '퇴행의 아이콘'이 된 이주호 장관에게 교육 개혁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라는 이야기다.

태그:#교육데이터개방및활용확대방안, #수능관련정보제공, #고교다, #경쟁교육, #교육부무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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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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