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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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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외국인 가사관리사 1200명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국가의 아이 돌봄 책임을 저가 민간 시장에 떠넘기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위가 지난 19일 내놓은 '저출생 추세 반전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비전문 취업 비자(E-9) 형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1200명을 들여오겠다고 밝혔다.

E-9 비자에 속한 국가는 필리핀·몽골·스리랑카·베트남·태국·우즈베키스탄·파키스탄·인도네시아·캄보디아·중국·방글라데시·키르기스스탄·네팔·미얀마·동티모르·라오스 등 16개국으로, 지금까지 이 지역 출신 노동자들은 국내에서 가사관리사로 일할 수 없었다. 재외동포 비자(F-4)를 받을 수 있는 중국동포(조선족)에만 가사관리사 취업을 허용해왔기 때문이다. 서울시 역시 정부의 협조를 받아 오는 9월부터 100명의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를 들여오는 시범사업을 앞둔 상태다.

전문가들은 맞벌이 부부 증가로 아이 돌봄 시장의 수요는 크게 늘어난 반면, 공급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 돌봄 노동이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임에도 노동 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청 자료상 2013년 25만 명이던 '가사 및 육아도우미' 취업자는 2022년 11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발간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방안'에서 2022년 기준 가사 및 육아도우미의 수요를 28만 명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2022년 가사 및 육아도우미의 수가 11만 명임을 감안하면, 18만 명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당장 임금이 더 싼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부족한 공급을 충당하겠다는 건 민간 시장에 정부의 책임을 털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 '저출생' 대책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기적으로 증세를 해서라도 국가의 돌봄 책임을 늘려 누구든 돌봄 공백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든 내국인 가사관리사든 사회가 아닌 각 개인들에만 육아를 계속 내맡기게 되면, 결국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의 육아 부담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책임지겠다' 해야지, 왜 '더 싼 인력 줄게'라 하나"

최영미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위원장은 20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정부 발표는 돌봄의 '사회 보장' 관점을 완전히 흩트려놓은 것"이라며 "돌봄 인력이 부족하다면 국가의 지원을 늘려야지, 왜 '더 싼 인력 줄게'라는 식으로 가나"라고 꼬집었다.

최 위원장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해 아무리 돌봄 가격이 감소된다 해도, 여전히 그만큼은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애를 키울 수 있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마치 현재 요양·간병이 각 개인과 가족에만 떠넘겨져 살인까지 일어나는 마당에 '국가가 책임지겠다'가 아닌 '간병비 좀 줄여줄게' 하는 것과 똑같다"라며 "저출생 대책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국내 가사·돌봄 노동에 사람이 부족하고 나이 든 노동자가 몰리는 이유는 일은 힘든데 처우는 열악하기 때문"이라며 "외국인 노동자까지 들여온다는 건 아예 정부가 이 일자리를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편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가사 및 육아도우미'의 월평균 임금은 94만원에 불과했고,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8시간이었다.

한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맞벌이를 해도 아이를 키울 수 있고, 누구나 균등하게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려면 민간시장이 아닌 공공의 역할을 더 높이는 수밖에 없다"라며 "공공 아이돌보미의 경우 신청을 해도 대기자가 많아 수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실정인데도 정부는 여기에 투자하지는 않고 외국인 노동자까지 포함한 민간 시장 확대만 외치고 있다"고 했다.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사회가 실질적으로 육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증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호세아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부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돌봄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재원문제 해결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태그:#저출생,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육아, #돌봄, #사회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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