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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아웃(Dugout)에서 몸을 풀거나 펜스에 팔을 걸치고 동료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 뭔가를 쉴 새 없이 질겅질겅 씹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껌 씹는 여유'라고 오해했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껌이 아니라 '씹는 담배(Chewing Tobacco)'라는 걸 알게 됐다.

미국에서는 흔히 '츄(Chew)'라고 불리는 무연 담배는 야구 선수들의 애용품이자 한때 '야구 선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만큼 야구 선수들의 니코틴 의존도가 높았다는 이야기도 되고, 야구 선수들을 이용한 담배 회사의 홍보 전략이 잘 먹혔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2016년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반 이상의 구장이 씹는 담배를 금지하면서 더 이상 필드 여기저기에서 입담배를 씹는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갑자기 선수들이 금연을 하게 된 건 아니다. 눈으로 볼 수만 없을 뿐, 그들은 여전히 경기 중에 담배를 애용하고 있다. 

이른바 '니코틴 파우치'. 잇몸에 끼우는 신형 담배로 옮겨간 것이다. 

미국 Z세대 사이에 퍼지는 또다른 중독의 위험   

미국의 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니코틴 파우치는 말 그대로 손가락 한마디만 한 작고 얇은 팩이다. 이 팩을 입술 안쪽과 잇몸 사이에 끼우고 니코틴을 흡입한다. 미국의 대형 담배 기업 필립 모리스사가 스웨덴의 모기업으로부터 인수해 미국에 적극 유통시킨 'Zyn'(진)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동그랗고 산뜻한 포장의 캔 안에 15개의 파우치가 들어있고, 가격도 일반 담배보다 저렴하다. 

기사 작성을 위해 편의점 몇 군데를 돌며 살펴보니 계산대 뒤로 니코틴 파우치 캔들이 꽤 자리 잡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니코틴 파우치보다는 가격이 비싼 편이다. 담배 회사들은 미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했고 씹는 담배는 야구 선수의 이미지가 되었다. 무연 담배 한켠에 니코틴파우치 매대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판매중인 무연 (씹는) 담배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니코틴 파우치보다는 가격이 비싼 편이다. 담배 회사들은 미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했고 씹는 담배는 야구 선수의 이미지가 되었다. 무연 담배 한켠에 니코틴파우치 매대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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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틴 파우치 안에는 담뱃잎이 없다. 그래서 연기도 없고 침을 뱉을 필요도 없다.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 혼자 조용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장소나 대중교통 이용 중에도 니코틴 파우치를 사용해 봤다는 후기가 많다. 방이나 침구, 옷에 냄새가 배지도 않는다. '덕분에 엄마한테 덜 혼난다'는 X(옛 트위터) 이용자의 글도 보인다. 

Zyn은 포장도 예쁘지만 맛도 다양하다. 실제 젊은 사람들이 Zyn을 많이 찾는지 매장 점원(캐셔)들에게 물어보았다. 미국에는 주류와 담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가 따로 있다. 최근에는 합법적 대마 판매를 허가받아 담배와 같이 취급하는 곳도 있다. 이들 가게는 아무래도 애연가들이나 개인 취향이 뚜렷한 고객이 주로 찾는 곳이라 그런지 나이가 있는 고객은 씹는 담배(Chew), 젊은 층은 전자담배(Vape)가 아직은 주류라고 한다. 

그러나 편의점의 경우는 확연히 Zyn을 찾는 구매자가 늘었다고 말한다. 미국은 편의점이 한국처럼 단독 매장으로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주유소에 편의점이 같이 있다. 쉽게 찾아와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산원 S는 한 단골 고객을 보며 니코틴 파우치의 중독성을 체감했다고 한다. 금연을 위해 단계적으로 일반 담배에서 니코틴 파우치로 바꾸기 시작했다는 단골 고객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자주 들러 니코틴 파우치를 구매했다. 본인도 중독성을 인정하더란다.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손이 더 간다면서 말이다. 

구매자 A는 여자친구를 위해 니코틴 파우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흡연자인 여자친구가 있는데,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까지 생각해 가족의 간접 흡연 없이 혼자 담배를 즐기기 위해서라 한다. 아직 완전히 담배를 끊지는 못했지만 데이트 중에는 우선 파우치를 이용해 보는 중이다. 

니코틴 파우치의 중독성이나 유해성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의 의견도 갈린다. 공중 보건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담배 연기 속에 존재하는 유해 물질 걱정이 없고, 일정 농도로 16~24시간 천천히 니코틴이 흡입되기 때문에 폐를 통할 때보다 인체에 덜 위험하다고 한다. 반면 니코틴의 유해성과 중독성이 일반 담배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는 측도 있다. 문제는 FDA가 니코틴 파우치의 위험성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기준을 내놓기 전에 이미 유행처럼 번졌다는 데 있다. 

미국은 주류(술)와 담배의 판매와 홍보에 엄격한 편이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의 술담배 노출 빈도를 줄이고자 애쓴다. 공공장소에선 구입한 술병이나 맥주캔이 보이지 않게 불투명 포장지로 가리게 하고 있고, 담배의 옥외 광고와 TV 광고도 금하고 있다. 그러나 Zyn의 경우는 옥외 광고뿐 아니라 소셜미디어 광고, 미디어 스타인 인플루언서들의 사용담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게다가 전자 담배에는 금지된 계피나 민트, 레몬 등 다양한 맛을 입혀 판매 중이다.  

편의점에서는 구매자의 나이를 확인하며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휴대가 간편한 Zyn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청소년에게 전해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니코틴 파우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펜타닐과 대마초 그리고 니코틴 파우치
 
판매대 위 뿐 아니라 각각의 매대에도 상품 관련 건강 위험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 담배 경고 문구  판매대 위 뿐 아니라 각각의 매대에도 상품 관련 건강 위험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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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씹는 담배가 퇴출된 배경에는 암에 걸린 선수들이 있다. 침샘암으로 사망한 토니 그윈이나 구강암에 걸린 유명 투수 커트 실링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30년간 씹어온 담배 때문에 구강암에 걸렸다고 밝힌 커트 실링은 이후 적극적으로 담배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알려왔다. 그럼에도 많은 선수들이 Zyn과 같은 니코틴 파우치로 옮겨가, 여전히 니코틴에 의존 중이다. 그들을 향해 '딥 중독'에 이어 'Zyn 중독자'라 부르는 경우도 생겼다.   

판매대 위에 게시된 경고 문구에도 니코틴 파우치의 구매는 갈수록 늘고 있다. <로이터>는 작년에만 3억8000만 캔이 팔렸는데, 올해 판매량은 5억 캔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분기 실적이 이미 지난해 출하량 보다 80%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같은 니코틴 파우치의 판매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필립모리스가 청소년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으면서 Zyn을 담배 대체 요법으로 과잉 광고하고, 인지장애와 잇몸질환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 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또 워싱턴D.C.에서는 화학적 향과 맛을 가미한 담배 제품 판매를 금지한 규정을 어겼는지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웹사이트를 통한 니코틴 파우치의 전국 판매가 중단됐다. 

빠르게 퍼진 펜타닐과 합법화된 대마초 판매. 그 뒤를 잇는 니코틴 파우치의 유행이 미국 국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 전에 적절한 규제가 가능할지 궁금해진다.

태그:#니코틴파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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