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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말]
3년 전 쯤, 식물을 기르는 친구에게서 그가 기르던 식물의 삽수(식물의 싹)를 나눔받았습니다. 식물을 기르는 건 처음이고, 나눔받은 식물이 너무 약해보여서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열심히 정성을 들여 돌본 결과, 그 식물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뿌리를 내리고 성장했습니다. 제 방 창가에는 한때 작은 식물원이 생겼습니다. 식물을 기르다보면 저절로 자라나는 생명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무리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해도 끊임없이 주의와 노력을 쏟아야 하죠.

내 이름을 딴 나무에게 생긴 일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기 전 저는 제 자신의 정신건강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민한 성정을 가지고 있어 남들보다 정신질환에 취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고 우울증이 제 삶을 잠식하게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결과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많은 방황을 통해 아픈 시간을 겪어야만 했어요. 그래서 식물을 기르면서, 식물들을 돌보고 위하듯이 나 자신을 돌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거실 창가에도 식물들이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주로 부모님께서 돌보시는 식물들이에요. 그 중에서 제 이름을 딴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제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난 이후, 심각했던 정신질환 증상이 괜찮아지길 빌면서 들여온 나무입니다. 제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저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게 되었습니다.

'율림' 나무는 약하고 나쁜 벌레가 많이 꼬여서 가장 손이 많이 갑니다. 그런 모습이 저를 닮은 거 같아 관심이 많이 가게 되었어요. 해충 때문에 가지와 잎을 수시로 자르면서 관리하고 있지만, 여전히 꿋꿋이 새 이파리를 내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망가진 모습의 나무를 보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 나무의 모습과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 당시의 제 마음이 겹쳐졌다고 생각합니다.
망가진 모습의 나무를 보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 나무의 모습과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 당시의 제 마음이 겹쳐졌다고 생각합니다. ⓒ Sharanya Dilip

심각하게 우울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식물들을 살피는데 율림 나무가 온통 해충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나무 돌보기를 포기하고 나무를 버린 뒤 새로운 건강한 나무를 들이자고 말했어요. 제 이름을 딴 나무가 가망없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이 쓰였고, 당시 제 마음만큼 나무에게서도 희망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님께서 말하셨습니다. 나무를 가지고 집에 왔을 때를 떠올려보고 비교해보라고요. 지금 나무가 손 쓸 수 없이 병들고 망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현재 모습이 훨씬 성장한 거라고요.

그 말을 듣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처음 집에 왔던 율림 나무는 작은 몸집에 싱싱한 이파리를 잔뜩 달고 있었습니다. 전 그때 모습을 가장 이상적인 나무의 상태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후에 병치레를 겪으면서도 나무는 계속 자랐고, 처음보다 몸통 굵기도 굵어졌으며 키도 훨씬 커졌습니다. 저는 아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무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나무의 성장과 생존을 더 중요하게 살펴보고 계셨어요.

꾸준한 돌봄을 통해 성장하는 우리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돌봄 받기를 멈추지 않은 나무가 계속 살아남아 성장하는 것처럼, 어려운 나날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제가 스스로 삶을 가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요. 저는 결국 나무를 버리자는 말을 철회했습니다.
 
 병충해를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나무처럼, 저 자신을 돌보고 포기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습니다.
병충해를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나무처럼, 저 자신을 돌보고 포기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습니다. ⓒ Johann Siemens

현재 율림 나무는 버려지지 않고 아직도 거실 한 켠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른 건강한 식물들보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도 꾸준한 돌봄을 통해 계속 생명을 이어가고 있고 성장하고 있어요.

나무를 돌볼 때마다 저는 저 자신이 제 이름을 딴 나무처럼 꿋꿋이 생존해나가기를 빕니다. 그를 위해서는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말고 제 인생을 계속해서 가꾸어야 한다는 걸 다짐하면서요.

한 개인이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산다는 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처럼 자기 자신이 성장한 정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어느날 문득 내가 성장했다는 걸 깨닫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그런 날을 맞이할 거라고 믿으며 저는 계속 삶을 가꾸며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제 이름을 딴 나무가 다른 사람에게 그늘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란 모습을 상상하면서요.
 
 '율림' 나무
'율림' 나무 ⓒ 율림

덧붙이는 글 | 에세이를 연재하는 기간 동안, 오랜만에 우울 삽화(기분의 저하와 함께 전반적인 정신 및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를 겪었습니다. 이번 삽화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삽화 기간이 지나가고 돌이켜보니 그 기간 동안에도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응원 또한 저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에세이 연재를 마무리하지만, 여러분에게서 얻은 힘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현정동장애#조현병#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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