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말엔 언제나 바쁘다. 책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걷기도 해야 하고 바느질도 해야 하니까. 중간중간 삼시세끼 해 먹어야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날도 바느질을 먼저 해야 하나 주말에 할 독서모임 책을 먼저 읽어야 하나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을 걸었다.

"오늘 뭐 할 거야?"
"바느질하고 책도 읽고 걷기도 할 건데?"
"오늘은 나랑 창고 정리 좀 하면 안 돼?"


그렇게 시작되었다. 2023년 봄맞이 집 정리.

처음부터 깔끔한 집은 아니었다

2021년 11월에 이사 올 때 한 번 물건들을 욱여넣은 후 한 번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은 창고 속 물건들을 모두 꺼냈다. 이제 중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쓰던 탬버린과 소고 같은 학용품도 싹 버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공간에는 한 번 꺼낸 후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침대 발치에, 앞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던 캐리어를 넣었다.

먼지를 떨 때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할 때는 창고부터 정리해서 공간을 만들고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을 창고에 넣어서 자주 쓰는 공간에 두는 물건의 수를 줄이는 것이 좋다.

평일 동안 갖지 못했던 자유 시간을 주말에도 가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지만 군살을 빼듯 구석구석 끼어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싹 처분하고 나니 후련했다. 옷으로 가려두니 남들은 모르지만 내 허리에 낀 군살을 나는 알듯 집안 여기저기에 숨은 짐에 그간 마음이 불편했다는 걸 깨달았다.
 
 봄맞이 집정리.
봄맞이 집정리. ⓒ 최혜선

우리 집에는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공용 공간에는 별로 물건이 없다.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기존 주민의 사인을 받으러 온 분들은 항상 '집이 참 깔끔하네요'라고 말을 해주곤 했다.

우리가 처음부터 집을 깔끔하게 유지한 건 아니었다. 아이는 어리고 집은 좁았던 시절에 거실을 서재로 꾸미겠다고 한쪽 벽면을 책장으로 채워서 가뜩이나 좁은 거실을 더 좁게 만들었다.

어떤 물건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그 물건을 살 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물건을 어디서 가장 싸게 살 수 있을까만 생각했지 그 물건이 집에 들어와서 놓일 자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철없던 시절.
철없던 시절. ⓒ 최혜선

그때는 주말마다 어린아이들을 안고 업고 매주 삼청동, 종로, 명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좁고 짐 많은 집이 갑갑해서 주말마다 집에서 탈출했던 거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폭이 2미터도 안 되는 좁은 거실에 깊이가 1미터쯤 되는 커다란 높이 조절용 책상을 사줬다. 책상이 놓일 공간은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다 사준다는 저 비싼 책상, 나만 못 사줄 쏘냐'라는 치기 어린 보상심리에 들인 것이었다.

물건이 집에 들어온 순간 깨달았다. '책상을 살 돈이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구나. 저 책상은 아이만의 큰 방이 있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 물건이구나.'

'한 달 살기' 이후 내게 일어난 변화

남들 좋다는 걸 따라 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어느 해에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그게 그렇게 좋다고들 하니 아이가 더 크기 전에 해주자 싶었던 거다. 이번 따라 하기는 그 후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싱크대, 식탁, 세탁기, 냉장고만 있는 한 달 살기 방에서 가져간 옷만 가지고 사는데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공간은 더 좁은데 물건이 가득 찬 우리집 대문을 열었을 때 순간 훅 끼쳐오던 답답한 마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제주 한달살기 집.
제주 한달살기 집. ⓒ 최혜선

성별이 다른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방이 3개인 집으로 옮기려고 이사를 준비했다. 방이 하나 더 생기니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하고 들어가면 별문제 없겠지 싶었던 안일한 생각은 곧 깨어졌다.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를 받으려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이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남편이 방 하나 더 있어도 물건이 많으면 아무 소용 없더라는 무서운 얘기를 해줬다.

정신이 확 들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집에서 쓸 컬러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기본은 흰색으로 하되, 가구는 옅은 우드로, 중문이나 폴딩도어의 프레임은 검은색만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남들은 몇 시간씩 걸린다는 인테리어 세부 항목을 고를 때도 범위가 제한되어 선택하기가 쉬워졌고 시각적 피로도가 줄었다.

둘째로 집의 공용 공간에 두는 물건의 수를 제한하기로 했다. 그 당시 우리의 모토는 '짐 앞에 장사 없다'였다. 으리으리 번쩍한 인테리어 디자인도 구질구질한 짐이 많으면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을 담은 구호였다. 부부가 서로 '이것 좀 버리지? 그런 건 사지 말지?' 견제하면서 많이 버리고 그걸 유지했다.

그렇게 거실에는 소파와 작은 책장 하나만 남겼다. TV는 없다(필요에 따라 이 방 저 방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모니터는 있다). 어차피 가족 구성원 모두가 모여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뭔가를 보는 일은 드물다. 각자의 기기로 자기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물건의 수를 제한해야 하니 하나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면 싶었다. 부엌 공간이 작고 식탁은 집에 들어오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놓아야 하니 식탁 의자는 등이 없는 것으로 사서 쓰지 않을 때는 식탁 밑에 집어넣었다.

스툴형 의자는 때로 침대 옆에 차를 놓는 미니 탁자로도 쓰고 창가에 앉아 책을 볼 때 커피 한 잔을 올려놓을 보조 테이블이 되기도 한다. 식탁의자가 하루 24시간 그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셋째로 집에 뭔가를 들이려면 하나를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그래서 지금은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을 집에 들일 때는 돈도 돈이지만 다른 것을 비워서 그것을 놓을 공간을 먼저 만든 다음에 물건을 산다. 책도, 아이들 장난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고, 물건을 둘 범위를 정하고 그걸 넘어가는 물건은 우선순위를 정해 처분했다.

이렇게 원칙을 정하고 부부가 합의하니 매일매일 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집은 일정 수준으로 유지가 되었다.

공용 공간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 각자의 방은? 눈을 감는다. 문을 닫는다. 가끔 에너지가 찰랑찰랑 넘칠 정도로 올라올 때 마음을 굳게 먹고 들어가 내보낼 만한 물건들을 물색해뒀다가 아이에게 물어보고 싹 치워낸다. 참고로 이번 주말에는 75리터 쓰레기봉투를 두 개 내보냈다.

후련해진 마음으로 곧 우리집 베란다 앞에 필 벚꽃을 기다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봄맞이집정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