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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çmiş Olsun Türkiye! Sizinle Birlikteyiz!"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장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튀르키예어로 '다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한 대학 학과가 진행하는 캠페인의 대표 문구기도 하다.

현지 시각으로 2월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에서 규모 7.8 강진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튀르키예의 많은 사람들은 안식처와 가족을 잃고 차디찬 길바닥에 내몰렸다. 전 세계인의 안타까움 속에서, 이들을 돕기 위한 구호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구호 물품 지원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튀르키예와 누구보다 각별한 이들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아래 터키어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투르크권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과다.

터키어과 몇 학생은 튀르키예의 재난 소식을 듣고, 개인적으로나마 추모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튀르키예의 평안을 기도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모여 점점 커지고, 학교 차원에서 구호 활동을 진행하게 됐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전국에서 모인 물품
 
50~60개의 구호 물품함이 한 편에 층층이 쌓여 있다.
▲ 한국외대 1층에 설치된 구호 물품함 50~60개의 구호 물품함이 한 편에 층층이 쌓여 있다.
ⓒ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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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 본관 1층 로비 한 편에는 엄청난 양의 박스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언뜻 보아도 50~60개는 돼 보였다. 모두 터키어과로 보내온 구호 물품들이다.

알록달록한 모자, 낱개로 포장된 생리대,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겉옷, 개별 지퍼백에 담긴 옷가지, 방역용 마스크까지. 튀르키예를 향한 마음이 이곳에 담겼다.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만에 약 2000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알록달록한 모자, 낱개로 포장된 생리대,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겉옷, 개별 지퍼백에 담긴 옷가지, 방역용 마스크까지.
▲ 한국외대 1층에 설치된 구호 물품함 알록달록한 모자, 낱개로 포장된 생리대,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겉옷, 개별 지퍼백에 담긴 옷가지, 방역용 마스크까지.
ⓒ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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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 김서연(21), 송준엽(23) 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서연 학생은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제35대 학생회장, 송준엽 학생은 제36대 학생회장이다. 터키어과 사무실에서 만난 이들은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송준엽씨는 캠페인에 대한 높은 관심을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그가 말을 잇는 와중에도 학과 사무실에 구호 물품을 문의하는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 왔다.

"외대 구성원 내에서 진행할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학과 공식 누리소통망을 보시고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근처에 사시는 분이나 전국적으로 원주·부산 같은 곳에서도 전화가 와요. '외부인인데 보내도 되냐, 이것도 보내도 되냐?' 이렇게 물어보세요. 실제로 학과 사무실로 보내시거나, 직접 상자에 넣어주시기도 했어요."

튀르키예로 '따뜻한 마음'이 출발합니다

학생회는 2월 23일 목요일까지 모금을 받는다. 구호물품은 2월 17일 금요일까지 도착하는 건을 취합해 터키항공에 전달할 예정이다. 1층에서 본 것처럼 가장 많이 들어오는 구호 물품은 겨울 의류였다. 김서연씨는 "그런데 튀르키예 현재 날씨가 추운 편이라, 담요가 부족해서 (담요를) 위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도 말했다.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학생들에게 튀르키예의 재난은 남 일이 아니다. 송준엽씨는 지진 발생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공모전 참여를 위해 튀르키예에 있었다. 이후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비행기에서 내려서야 재난 소식을 알게 됐다.

"인천공항에 착륙했더니 전화가 엄청 와있어요. 제가 튀르키예에 있을 때 날씨가 매우 추웠던 기억이 있어서 소식을 듣고 더 걱정됐죠."

머리를 맞댄 학생들은 '실질적으로 튀르키예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자'는 약속을 했다.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학생회가 구호 캠페인을 진행하자는 결론이 났다. 이들은 "전공 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회 간의 소통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튀크키예어로 ‘다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 튀르키예 모금 및 구호물품 지원 안내 포스터 튀크키예어로 ‘다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 한국외대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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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캠페인의 홍보 문구 "Geçmiş Olsun Türkiye! Sizinle Birlikteyiz!(다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도 학생들이 다 같이 대화를 나누고, 학과 교수와의 논의를 거쳐 탄생한 것이다. 김서연씨는 멋지게 쓸 자신이 없다며 머뭇거리다가도, 종이에 튀르키예어 몇 자를 적어주며 말했다.
    
"보통 PRAY FOR TURKEY를 가장 많이 쓰고 있는데, 저희가 직접적으로 터키어를 배우는 학과이다 보니 터키어로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터키어로 문구를 정하게 됐어요."
  
김서연 학생이 적어준 튀르키예어
 김서연 학생이 적어준 튀르키예어
ⓒ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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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엔 현실적인 문제도 따랐다. 방학 기간이다 보니, 학생회 인원 절반 이상이 지방의 본가에 내려간 경우가 많았다. 김서연씨는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인원이 아무래도 학기 중보다는 아주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송준엽씨는 "학생들이 모금 계좌를 만들기가 어렵고, 기부함을 학교에 함부로 설치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학교나 학과에서 지원을 많이 해줘서 해소가 됐다"고 덧붙였다.

크고 작은 어려움에도 캠페인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래도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어요. 전공생이다 보니까 튀르키예인 친구도 있고, 이번 일의 피해가 좀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려움은 최대한 해결하고, 튀르키예가 입은 피해 복구를 빨리 도와드리자고 생각했어요.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학생들이 건의를 드려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거니까 책임감도 커지고 열심히 하게 돼요." (송준엽씨)

김서연씨는 "튀르키예어를 배우는 입장으로서, 먼저 앞서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게 사람들에게도 더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픔을 함께하는 "연대"
 
지난 2022년 12월 9일 열린 학과 학술문화제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2022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학술문화제 지난 2022년 12월 9일 열린 학과 학술문화제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한국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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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유일한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학생으로서, 튀르키예 지역의 "아픔을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이들은 가만 생각하다가 "연대"라고 입을 모았다.

"왜냐면 지금도 튀르키예에 있는 제 친구들과 연락하고 있고, 제가 좋아하는 이 과의 일이기 때문이에요, 조금이나마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서 '연대'예요.

튀르키예 여행을 가서 저희가 직접 터키어를 하고 터키인과 교류를 하고, 언어를 알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잖아요. 문화나 서로를 이해하기도 쉬워지고요. 터키는 인사말도 다양하고 외부인을 환대해 주는 문화도 있어요. 그에 맞춰서 저희가 대답하고 인사를 주고받기도 하고요. 여행 갈 때마다 정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연대감을 느껴요." (송준엽)

"튀르키예가 6·25 전쟁 때 UN 참전 용사로 한국을 도왔잖아요. 그때 튀르키예가 우리와 함께한 것처럼, 튀르키예가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 한국인도 함께하겠다, 이런 느낌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함께한다는 게 그들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고, 이런 의미이지 않을까요." (김서연)
 

이들도 튀르키예어가 생소했고, 처음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김서연씨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비대면 수업을 이어온 일명 '코로나 학번'이기에, 튀르키예와 관련된 실질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캠페인이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핫팩에 설명서가 붙어 있는데 한국어이기 때문에 튀르키예로 보내려면 번역이 필요하잖아요. 튀르키예어가 사실 많이 쓰는 언어는 아니니까, 문의가 오면 조금씩 해석해서 보내곤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얼마 안 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어요." (김서연)

이어 "튀르키예를 저도 모르게 우리나라라고 얘기하게 될 정도로, 애정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송준엽씨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튀르키예 지진에 관심을 두시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학생회 활동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튀르키예의 소식을 알리고, 선한 영향력을 퍼뜨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선한 영향력

학생회는 이번 캠페인이 종료되면 또 다른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튀르키예가 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맞았거든요.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서, 튀르키예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련 행사를 계획하고 있어요. 재난 피해자가 엄청나고 상처는 계속되잖아요. 피해 복구 작업이나 남아 있는 분들의 아픔이나, 계속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논의하고 있어요." (송준엽)
 

마지막으로 두 학생에게 앞으로의 목표가 있느냐고 물었다.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말을 다듬어 되묻자,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튀르키예'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함께였다. 

"튀르키예 문학이나 예술 쪽 일을 하고 싶어요. 튀르키예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거나 기획하는 거요. 영화든, 문학이든, 어떤 미술품 전시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국내에 기획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튀르키예를 알 수 있게끔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송준엽)

"이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지역 전문가가 필요하기도 하고, 지역과 연결하려면 관련된 학과 사람들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럴 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또 요즘 인터뷰도 하고 기자님들 옆에서 구경하다 보니 기자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더라고요. 전공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처음 한 것 같아요." (김서연)

태그:#튀르키예, #한국외대, #구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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