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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벌 중 사형 다음으로 가장 중한 유배형이 있었다. 유배형은 귀양살이를 말하는데, 주로 관리들이 죄를 저지른 경우 죄인을 먼 변방이나 외딴섬에 보내 거기에서 살게 하던 형벌이다. 대표적인 유배지로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남 강진, 경남 남해, 포항 장기 등이다.

죄인들이 거주할 지역이라 유배지도 사람이 살기 힘들고, 험준한 지역을 골라 귀양을 보냈다. 그중 한 곳이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에 있는 장기면이다. 유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기면은 그동안 차량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별로 알려지지 않는 곳이었다.
 
녹음이 우거질 때 공중촬영한 포항 장기 유배문화체험촌 모습
 녹음이 우거질 때 공중촬영한 포항 장기 유배문화체험촌 모습
ⓒ 포항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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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장기 유배문화체험촌이 조성되고, 인근에 있는 장기읍성이 사색하기 좋은 길로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은 포항에서 주목받고 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형벌체험장과 유배와 관련된 이야기벽

푸른 바다를 벗 삼아 경주에서 동해안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양포, 구룡포 방향과 포항, 오천 방향으로 갈라지는 양포삼거리와 만난다. 양포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포항, 오천 방향 장기로를 따라가면 15여 분 거리에 장기 유배문화체험촌이 길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죄인을 호송하는 우마차 모습(실제는 개인 사비로 말을 타고 유배지로 떠남) 지난 2일 촬영.
 죄인을 호송하는 우마차 모습(실제는 개인 사비로 말을 타고 유배지로 떠남) 지난 2일 촬영.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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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바로 옆에 관리사무실이 보인다. 사무실 바로 앞에는 죄인을 호송하는 우마차와 곤장, 목칼, 곤장 형틀 등 죄인을 다스리는 형벌 도구가 놓여 있다. 그때 당시 죄인들에게는 끔찍한 도구들이었지만, 요즘은 방문객들의 포토존으로 활용되고, 직접 체험하는 놀이기구로 변신하여 한층 재미를 더한다.

바로 앞 망향교를 건너면 병풍처럼 세워진 이야기벽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우암 송시열, 오른쪽에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다. 가운데는 장기 유배지와 관련된 내용과 장기지역으로 유배 온 105인의 인적사항을 적은 기록이 있다.
 
포항 장기 유배문화체험촌에 있는 유배와 관련된 이야기벽 모습(2023.1.27)
 포항 장기 유배문화체험촌에 있는 유배와 관련된 이야기벽 모습(2023.1.27)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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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적거지
 

우암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1675년 6월 10일 장기에 도착해 장기성 동문 밖 마산리 고을 선비 오도전의 집에 위리안치되었다. 입구 쪽에 장기현의 모습을 그린 지도가 있고, 그 뒤에는 우암 송시열 적거지(유배 생활을 하던 곳)로, 당시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가운데 기와집이 유배인에게 거처와 음식을 제공하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던 보수주인(保授主人) 오도전의 집이다. 왼쪽 탱자나무가 심어진 초가집이 송시열이 기거했던 곳이다. 살아있는 자의 죽음이라 불릴 정도로 중죄인에게 내려지는 위리안치는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둘러싼 집안에서만 지내도록 하는 중벌을 말한다.
 
우암 송시열이 기거했던 적거지 전체 모습(2023. 2. 2)
 우암 송시열이 기거했던 적거지 전체 모습(2023. 2. 2)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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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둘러싼 곳에 위리안치된 우암 송시열이 기거했던 초가집(2023. 2. 2)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둘러싼 곳에 위리안치된 우암 송시열이 기거했던 초가집(2023. 2. 2)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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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 작은방에는 붓글씨를 쓰고 있는 우암 선생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평소 물고기 기르는 것을 좋아했던 우암이라 그런지 마당 뒤편에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유배지의 암울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밝게 하기 위해, 기와집 우측에 돌담으로 만든 야외 화장실이 있다. 포토존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과거 화장실을 복원해 방문객이 여기에서 옛 추억을 되살리며,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가기를 바란다는 글귀도 새겨 놓았다.
 
유배지의 암울한 모습을 더 밝게 하기 위해, 기와집 우측에 돌담으로 만든 야외 화장실(여기가 포토존)
 유배지의 암울한 모습을 더 밝게 하기 위해, 기와집 우측에 돌담으로 만든 야외 화장실(여기가 포토존)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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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은 이곳에서 4년을 머물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지역의 선비들을 가르쳤다. 우암은 유배객의 몸이지만 가족과 노복까지 대동할 정도여서 당시 우암의 입지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현재 장기초등학교 부지에 터를 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초등학교 한편에 우암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현재까지 자생하고 있다.

유배 중에도 암암리에 중앙의 내로라하는 정객들과 인근 지역 현감들이 수시로 찾아와, 그의 가르침을 받아 갈 정도로 지역주민들과 선비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다산 정약용 적거지

다산 적거지 입구에 안경을 쓴 다산의 사진이 방문객을 반긴다. 마당에는 도리깨질을 하는 농부들의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마당 왼쪽에는 목화가 심어져 있고, 반대편에 있는 장독대는 정감 어린 시골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산은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이자 정의를 실천한 사상가이며 행정가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다. 다산은 1801년 1월 19일에 터진 신유박해 사건에 연루되어 같은 해 2월 27일 장기현으로 유배가 결정되었다. 유배길을 떠나 3월 9일에 장기에 도착하여 마현리 구석골 성선봉의 집에 배소를 지정받았다.
  
포항 장기 다산 정약용 적거지 모습(2023. 2. 2)
 포항 장기 다산 정약용 적거지 모습(2023. 2. 2)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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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황사영 백서사건 연루 의혹으로, 그해 10월 20일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기까지 7개월 10일 동안 장기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다산은 한양에서 문초를 받고, 전남 강진으로 이배되어 1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목민심서>로 더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은 220여 일 동안 장기에 머물면서 장기고을 백성들의 생활상과 고을 관리들의 목민 형태를 130여 수에 달하는 시작(詩作)으로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당대 농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기농가 10장'이다.

다산 적거지 뒤쪽 야트막한 둔덕에는 2군데의 초가집 정자와 자연치유원 그리고 민속놀이마당이 있다. 민속놀이마당 한가운데 대형 그네가 세워져 있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스릴을 느끼며, 그네를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로 위에는 투호놀이 기구가 있어 조용한 산속에서 전통놀이 체험도 즐길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적거지 뒤쪽 야트막한 둔덕에 있는 민속놀이마당 모습(2023. 2. 2)
 다산 정약용 적거지 뒤쪽 야트막한 둔덕에 있는 민속놀이마당 모습(2023. 2. 2)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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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을 닮은 장기읍성

다산 정약용 적거지 바로 옆으로 장기읍성으로 가는 '우암과 다산 사색의 길'이 있다. 장기읍성까지는 700여 미터 거리로 20여 분이 소요된다. 대나무와 솔숲 사이로 걷는 오르막 산책길로 걷기 좋게 야자매트도 깔려있다.

지난달 27일 이곳을 방문했다가, 영하 14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로 인해 장기읍성 방문을 취소하고, 지난 2일 다시 방문했다. 노약자분들은 장기 유배문화체험촌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장기면 행정복지센터 위쪽 언덕길을 이용하면 된다. 장기향교를 거쳐 장기읍성 북문까지 편리하게 차량으로 이동도 가능하다.
 
포항 장기읍성 동문 주변 모습(2023. 2. 2)
 포항 장기읍성 동문 주변 모습(2023. 2. 2)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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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읍성 입구가 있는 동문으로 가기 위해 승용차로 이동했다. 장기면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언덕길로 오르면 곧바로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 후 동문 방향으로 가다 보면 현내평야의 모습과 시원한 동해바다가 훤히 펼쳐진다.

장기읍성은 고려 현종 2년(1011)에 해안으로 들어오는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 조선 세종 21년(1439)에 왜구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다시 돌로 축조하여 군사기지 등으로 이용되었다.

동악산(252m)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등성이 해발 100m 높이의 평탄한 곳에 축조되어, 읍을 다스리는 기능도 했다. 아래로는 장기천이 동해로 흘러 들판을 형성하고 있다. 장기읍성 안에 민가가 있어 읍성의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읍성 성벽은 몇 해 전 방문 때와는 다르게 깨끗하게 복원해 놓았다.
 
포항 장기읍성 모습(2023. 2. 2)
 포항 장기읍성 모습(2023. 2. 2)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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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386호로 지정된 장기읍성은 면적이 12만 4936㎡이며, 성벽 높이는 3.7~4.2m이다. 성의 형태는 긴 마름모꼴형으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외부 세력들이 쉽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1440m이고, 3개의 성문과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항아리형 옹성과 사각형 치성을 갖추고 있다.
 
포항 장기읍성 북문 모습(2023. 2. 2)
 포항 장기읍성 북문 모습(2023. 2. 2)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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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을 지나 북문 방향으로 가면 오르내림이 심한 골짜기가 나오는데 내려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추락주의라는 경고판도 세워져 있다. 동문은 유배를 온 다산 정약용이 관아에서 하룻밤을 묵고 관리를 따라 내려온 길이다.

얼핏 보면 중국 만리장성을 닮은 듯한 장기읍성. 하늘과 맞닿은 듯한 장기읍성은 어느 계절에 와도 걷기 좋고, 혼자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의 이름을 딴 사색의 길도 함께 걸으며, 이곳에서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태그:#포항 장기읍성, #포항 장기 유배문화체험촌, #포항 장기 우암 송시열 적거지, #포항 장기 다산 정약용 적거지, #장기 유배지 유배와 관련된 이야기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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