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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문턱에 다다른 6월 대낮의 볕은 뜨겁기만 했다. 하루가 달리 몸집을 키우는 초록 식물들에 눈이 시릴 지경이다. 한여름처럼 뜨거운 볕에 물 주는 것을 며칠만 소홀히 하면 손바닥만 한 정원의 초록이들은 풀이 죽어 축 처진다. 부지런히 호스를 당겨 물을 주는데 수국이며 벚나무에 지저분한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

누군가 하얀 물감을 찍 짜놓은 듯한 형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새똥이었다. 모두가 잠든 이른 아침 혼자 깨어 마당에 나오면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자연의 소리에 세속에 찌든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손가락만 한 작은 새들이 울타리 주변을 걸어 다니는 모습은 깜찍하고 사랑스러웠다. 여기까지는 단독주택 거주자의 이름다운 그림, 낭만적인 전원생활이다. 지금처럼 새똥이나 고양이똥, 잡초와의 전쟁, 온갖 벌레와의 싸움은 현실이다.

그러면 그 작은 새들이 싸 놓은 똥이란 말인가? 그렇다기엔 양도 많고 체급 대비 너무 많은 양을 싸 놓은 듯했다. 갑자기 새들이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생겼다거나 배탈이 났을 리도 없고 기가 막혔다. 물줄기를 세게 틀어 수국잎에 잔뜩 싸놓은 새똥을 씻어냈다. 그동안 돌보지 못한 화분들을 정리하고 시든 줄기를 잘라주는데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수년 전 이 집으로 왔을 때 울타리 너머엔 단풍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울타리보다 키가 훨씬 작았던 나무는 어느새 울타리를 훌쩍 넘어 무럭무럭 자랐다. 언제 클지 멀게만 느껴지던 순간이 지나고 울창해진 나무를 보니 찡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을 살아가며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도 잊고 있다 눈을 뜨면 어느새 그 지점에 다다랐을 때가 있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의 날들도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한다. 나무의 삶도 우리네 삶도 참 많이 닮았다.
 
나를 노려보던 새끼 물까치
▲ 넌 누구냐? 나를 노려보던 새끼 물까치
ⓒ 원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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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가 단풍나무 위에서 가만히 나를 노려보는 놈(?)을 발견했다. 새였다.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 핸드폰을 들이밀었는데 도망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빤히 나를 본다. 그러다 자리를 옮기는 모양새가 영 시원찮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푸드덕푸드덕 불안하기만 하다. 무슨 새가 저렇게 어설플까? 그 순간 내 머리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까악 까욱 까 까-"

물까치였다. 까만 머리통에 하늘빛 깃털이 섞인 꽁지가 기다란 새. 언뜻 생긴 것만 보면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하지만 우는 소리는 영 별로다. 물까치를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무리를 지어 하도 시끄럽게 날아다니길래 찾아봤더니 이름이 물까치였다. 물까치 서너 마리가 내 머리 위로 빙빙 돌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꼭 나를 위협하는 듯했다.

'뭐야? 왜 이래? 내가 뭔 짓을 했다고?'

떳떳했지만 내심 공격을 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제자리로 돌아가 데크 위를 빗자루질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며칠 내내 시끄러운 새소리가 들렸고, 새똥이 넘쳐나고, 집 주변으로 물까치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녔다. 귀를 기울여 보니 성조와는 달리 병아리 소리 같은 고음의 까까 소리가 들렸다.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울타리 틈 사이로 이리저리 살펴보니 역시나 단풍나무에 새 둥지가 있었다. 가장 높고 풍성한 나무였다. 그 안엔 노란 입을 벌리고 꿈틀거리는 새끼가 있었다. 아까 가지에서 어설프게 푸드덕거리며 나를 바라봤던 것도 바로 물까치 새끼였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으니 어미 새들이 경계하며 날아와 나를 위협한 것이었다. 참고로 물까치는 공동육아를 한다고 한다.
 
단풍나무 위의 물까치 둥지, 정녕 매듭을 부리로 만들었을까?
▲ 물까치 둥지 단풍나무 위의 물까치 둥지, 정녕 매듭을 부리로 만들었을까?
ⓒ 원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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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나는 파파라치처럼 울타리 틈 사이로 둥지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 야무지게 지어놓은 둥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그만 부리로 언제 저렇게 나뭇가지와 마른 잎, 노끈 같은 것들을 물어다 날랐을까?

우리 집 마당에 있던 노끈도 가져간 듯했다. 사람이 일부러 둥지와 굵은 나뭇가지를 연결해 놓은 듯 보이는 노끈의 매듭이 눈에 띄었다. 세상에, 부리로 매듭을 지은 걸까? 놀라웠다. 물까치 너, 생각보다 똑똑하구나(새대가리라는 말은 취소할게).

연이어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와 가지 위를 엉금엉금 걸어 다녔다. 새끼치고 덩치가 꽤 컸다. 과연 새끼가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이심전심 초등생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저 새 혹시 물까치가 아니라 뻐꾸기 새끼 아니야?"

아마 탁란이라고 하지? 아들은 뻐꾸기가 물까치 둥지에 알을 낳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날갯죽지의 푸르스름한 색이며 까만 헬맷을 쓴 듯한 모습이 어미와 똑 닮았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 

어린 새가 혹시나 나무에서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던 마음으로 바라봤다. 어미(인지 아비인지 모른다)는 밤낮으로 부지런히 뭔가를 물어다 새끼의 입 속으로 넣어준다. 눈 앞에 펼쳐진 조류의 모성애에 괜스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어설픈 날갯짓을 하는 새끼들은 머지않아 둥지 밖을 떠나 훨훨 날아갈 것이다.
 
날갯짓을 하다 아래 가지로 떨어졌다
▲ 물까치의 날갯짓 날갯짓을 하다 아래 가지로 떨어졌다
ⓒ 원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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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물까치새끼, #둥지매듭, #물까치둥지, #물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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