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전남 완도군의 군목(郡木)은 동백나무다. 그럼 군화(郡花)는? 역시 동백꽃이다. 동백나무가 섬 어디에나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당연히 군목은 동백나무요 군화는 동백꽃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완도에도 예전에는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숲이 있었다. 완도읍 죽청리 동백나무 숲 (2970㎡)이 그 주인공이다. 1962년 12월에 천연기념물 45호로 지정됐으나 이 아름다운 숲은 인간들의 파괴로 그 기능을 상실해 1965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유리건판 사진을 보면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동백나무들이 자라고 있던 숲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최대의 동백군락지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 곳은 삼두마을 동백나무 자연림이고 또 한 곳은 완도수목원의 동백나무원이다. 

군외면 삼두마을은 50여 년 전 삼장안(三莊案)과 두읍(斗邑)마을이라는 두 마을이 합쳐지면서 삼장안 마을이 두읍마을에 흡수됐다. 

이때 상왕봉을 중심으로 한 도보교통(徒步交通)의 요충지 삼장안 마을(1960년대까지 후반까지 완도 체도의 도로망과 교통은 아주 보잘 것 없었다고 한다. 그때는 모두가 걸어서 다니던 시기였는데 삼장안 마을에는 각 마을을 연결하는 물맹이재, 보름아골재, 마당재, 한두재, 시날재, 쇄내미재, 노구재, 목밭재 등 상왕봉을 넘는 여러 군데의 재(峙)가 있었다고 한다.) 자체가 없어지고 삼두(三斗)마을이 탄생됐다.  

이곳 삼두마을 산 1-1 241ha와 1-4번지 일대 82ha에 우리나라 최대의 동백나무 군락지(群落地)가 형성돼 있다. 전체면적은 323ha로 산 1-1번지는 삼두마을의 진산인 봉두산(394m, 鳳頭山)의 일원으로 다양한 나무들이 혼합림(混合林)을 이뤘는데 이중 동백숲은 70%가 하층림(下層林)으로 구성돼 있어 미래의 산림자원인 반면, 산 1-4번지는 옛 삼장안 마을의 일부분으로 숲의 95% 이상이 자생동백(自生冬柏)으로 만 이루어진 단순림(單純林)이다. 

자생동백 단순림의 경우 수고는 5m 이내이나 수관(樹冠)은 매우 좋은 편이고, 흉고직경은 15cm내외다. 이는 그동안 간벌이 없이 자생으로 숲이 유지되다 보니 나무들이 밀식돼 수간(樹幹)이 약한 편이다. 

두 곳 다 식생은 옅은 편으로 대부분 나무들의 수령은 50년 내외다. 1970년대 후반, 당시에는 동백나무가 마을의 앞뒤 산에 지천으로 널려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민 모두가 동백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오늘날 자생동백 단순림은 31ha를 집중 관리공간으로 정해 완도수목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동백나무와 꽃을 관찰하는 관찰로와 숲을 돌아보는 순환로를 개설해 관광객이면 누구나 숲을 돌아보고 힐링할 수 있다. 

또한 봉두산 자락의 하층림은 26ha를 동백순림으로 집중 육성할 계획인데 상층부 성목(成木)과 잡목(雜木)을 점진적으로 제거해 천이(遷移)가 이루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완도수목원 내 동백나무원은 수목원이 개발되기 전 주민들이 목축을 하거나 붉가시 숫을 구웠던 마을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동백나무원에는 옛 집터들과 골목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채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동백나무원은 1991년에 조성됐는데 기존의 동백나무 숲과 주민들이 다녔던 길을 그대로 살린 체 세계 각국의 동백나무 114종 276본을 들여와 식재했다. 면적은 약 1.17ha로 이곳의 동백나무 역시 식생이 옅은데 일부 나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무들이 흉고직경 20cm를 넘지 못한다.   

이곳에 오면 세계의 모든 동백나무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데 중국과 일본 동백나무의 원종(原種)은 물론 인근의 동백전시원도 둘러볼 수 있다.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다음은 박진수(76, 군외면 삼두리, 사진)씨의 증언이다.

"우리마을 저그 뒷산이 봉두산(鳳頭山)이요. 상왕봉의 지맥이 흘러내려 바다로 향하는 봉황(鳳凰)의 머리인디 우리가 애릴때는 봉두산이 전부다 동백이었어요.

그때는 6.25 뒤라 땔감이 아주 귀해요, 요 앞산이 진동산이고 저그는 대리산이요 마을을 중심으로 온 천지가 동백나무가 덮여 있었어요. 그래서 귀한 줄 모르고 전부다 비어다가 정개(부엌)서 불 땠어요. 나무가 강하니까 불이 겁나게 모다요, 애기부터 어른까지 동백나무를 비로 댕긴디 어떤 나무는 밑둥이 하도 큰 게 어른들도 못 보듬아요, 그래서 도치로 장작을 패대끼 나무를 했어요.

아까도 애기 했지만 우리 동네는 동백나무 천지고 개인 산에는 어런들이 못 보듬을 동백나무가 수두룩 했어, 그란디 도시의 조경 업자들이 와서 보고 동내 가게에서 술 한잔 삼스로 포라고 하거든 그랑께 그냥 헐값에 다 폴아부렇어. 또 근원(根源)이 존 놈은 분재한다고 이 집서 한나, 저 집서 한나 캐다가 분재 맹그러 불고, 동내산의 동백나무는 전부다 도치로 패서 불 때 불고  그란디 세월이 흐른께 다시 저라고 동백나무가 자란 것을 본께 참말로 자연이 위대하요."

누가 씨를 뿌리지 않았지만 수백헥타르의 산에서 자연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다면 위대한 자연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

기약 없는 세월이 흐르겠지만 1965년 인간의 무지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돼 지금은 유리원판의 박제로 남아있는 죽청리의 동백나무 숲이 다시 살아나기를 염원하며 펜을 놓는다.

유영인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신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완도신문은 1990년 9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참 언론을 갈망하는 군민들의 뜻을 모아 창간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사훈을 창간정신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길을 걷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