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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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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가라앉고 있다."

3년 전 투발루라는 작은 나라의 외무부 장관이 연설했던 걸 기억하는가. 발 밑에 바닷물이 찰랑찰랑, 예전에는 육지였던 곳이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지금은 어떨까? 놀랍게도 곳곳에서 비슷한일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먼저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기후난민'이 등장한 곳이 있다.

(1) 파나마 원주민 섬 해수면 상승으로 1300명 이주 결정

파나마 본토에서 약 1.2km 떨어진 카리브해의 작은 섬, 가르디 수그두브(Gardi Sugdub), 주민들 언어로 '게의 섬'이라는 이 곳에서 300가구 1300여 명의 구나(Guna)족 사람들은 바다에서 랍스터 낚시를 하거나 본토 맹그로브 숲의 목재를 팔며 살아왔다. 일부 관광 수입도 있었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으로 섬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면서 삶의 터전을 육지로 옮기게 됐다. 파나마 정부는 이들을 라틴아메리카 첫 '기후난민'이라고 규정했다.

'1960년대부터 한 해에 1mm씩 상승하던 해수면이 최근엔 3.5mm씩 올라와 부두를 없애고, 거리와 집까지 덮쳤습니다.' (YTN, 2024.6.6)

'파나마 운하청과 미국 해양대기청의 자료에 따르면 파나마 카리브해의 해수면 상승은 1960년대에 연평균 1㎜씩 진행됐으나 최근에는 연평균 3.5㎜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한겨레, 20204.6.4)


해수면 상승이 최근 3배 넘게 진행되면서 해마다 11~12월에 바다에서 강풍이 불면 거리가 잠기고 물이 집 안까지 들이닥친다. 기후변화는 더 강력한 폭풍을 일으켜 구나족은 바위와 말뚝, 산호를 이용해 섬 주변을 보강해왔지만 바닷물 유입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정부는 1200만 달러를 들여 육지에 구나족을 위한 새 거주지를 짓고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새 집의 열쇠를 건넸다. 이주가 시작됐고 새 거주지에는 대규모 학교시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새로 마련한 거주지는 열대 정글을 밀어 만든 조립식 주택 단지로 바다에서 2㎞ 가량 떨어져 있는 곳, 바다를 주요 생계 수단으로 삼아온 원주민들에게 본토 이주는 경제 활동 포기를 뜻한다. 집집마다 2개의 침실이 있는 이 조립식 주택에 대해 정부는 시설비를 지원했지만, 물값과 전기요금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한다.

'정부가 건설한 이스베르 얄라(Isber Yala) 마을은 아스팔트 도로 주변으로 침실 두 개짜리 조립식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든 집이 크림색 단층구조에 주황색 지붕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성급하게 추진됐다는 비판도 있다. 이 마을에는 여전히 물이 공급되지 않고 건강관리센터도 없다. 조명도 없었고 쓰레기 수거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도 계획되지 않아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생태학적 차원에서 계획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CNN, 2024.6.8)

일부 구나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실망했지만 기후변화라는 실존적 위협이 다가오는 가운데 특히 젊은 세대는 아이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우선 이주를 결정했다고 말한다. 세대 간 격차가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관광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34세 주민 페레즈는 60세인 그의 아버지가 날씨 변화는 정상적이고 계절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파나마에 거주하는 스미소니언 열대연구소의 사회과학자(애나 스팔딩)는 세대 간 인식의 격차는 누가 남고 누가 가는지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CNN, 2024.6.8)

파나마 정부 관료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파나마 카리브해 및 태평양 연안 63개 공동체가 강제로 이주할 것으로 예상한다. 가르디 수그두브 섬의 구나족이 기후난민이 된 첫 번째 공동체로 이들의 성공적 정착 여부에 대해 다른 공동체들도 주목하고 있다.

(2) 올 8월에 수도 옮기는 인도네시아... 주 원인은 해수면 상승과 지반침하

"79주년 독립기념일(8월 17일)에 맞춰 누산타라를 공식 수도로 선포하겠다."

지난 5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난 2019년 수도 이전 계획을 발표한 지 5년 만의 일이다. 대통령은 다음 달부터 새 수도에서 집무를 시작할 예정이며 새 수도 공항도 8월에 문을 열 예정이라고 외신들이 전한다. 이처럼 인도네시아가 수도 이전을 추진하는 이유 중 주요한 원인은 기후위기이다. 1천만 명이 거주하는 지금의 수도 자카르타가 인구 과밀화와 해수면 상승 문제로 놀라운 만큼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자카르타의 지반 침하 현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 속도가 가속화되었다. 북부 자카르타는 지난 10년 동안 8.2피트(약 2.5미터) 가라앉았고, 특정 지역은 매년 11인치(28센티미터) 이상 계속해서 내려간다. 도시 전역의 평균 침하율은 연간 0.4~5.9인치(1~15센티미터)이다. 이러한 급속한 침하로 인해 자카르타의 거의 절반이 해수면 아래로 잠겨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Environment+Energyleader.com, 2024.5.17)

자카르타는 본래 바다였던 곳에 흙이 퇴적돼 형성된 도시라서 면적의 60% 이상이 해수면 아래에 있던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부 수면이 연간 8㎜씩 상승하는 중이다. 결정적으로 지반침하의 주요 원인은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으로 지적된다.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해 물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공장과 주거용 주택은 불법적인 지하수 채취에 의존했고, 이는 지반 침하를 빠르게 강화시켰다. 그 결과는 위협적이다.

'도로, 교량, 건물 등 기반 시설은 고르지 못한 지반으로 인해 피해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침하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 도시의 지형은 특히 몬순 시즌에 홍수에 매우 취약하다. 손상된 인프라를 유지하고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치솟고 있으며 기업은 (자카르타에) 머물면서 적응할지 아니면 이전할지 어려운 결정에 직면해 있다.' (Environment+Energyleader.com, 2024.5.17)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오는 2045년까지 5단계에 걸친 수도 이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수도 이전지는 보르네오 섬의 '누산타라'. 원래 바다였던 자카르타와 달리 열대 밀림 지역에 건설될 '누산타라'는 총 면적(2561㎢)이 뉴욕시의 두 배 규모이고 현재 수도인 자카르타의 네 배 크기라고 한다. 정부는 2045년 완공 예정인 누산타라 건설에 약 3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오는 10월 차기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약 6000명의 공무원이 이곳으로 이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 16위의 경제 대국으로 가파른 GDP 상승에 따라 OECD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새로운 수도를 단지 행정 수도로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녹색경제, 첨단 의료 도시로 만들고자하는 구상을 밝힌다.

그러나 수도 이전이 과연 성공적일 것인지에 대해 여러 우려점과 과제도 나온다. 과연 자카르타 주민들이 옮겨갈 것인가? 정치·경제·외교 기능이 밀집한 자카르타의 기능을 온전히 옮기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르네오섬 환경파괴 논란도 있다. 정글지대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보르네오섬 원주민과 오랑우탄 등 멸종위기종 동물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막대한 이전·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 이전 2단계 사업으로 세계적 수준의 대학과 연구기관을 새 수도로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스탠포드대학교 스탠포드 도어 지속가능성 학교(Stanford Doerr School of Sustainability)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이는 새 수도에 스탠포드 지속가능성 학교의 연구 센터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자카르타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저소득층들이 수도 이전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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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라 전체가 가라앉는 투발루는 지금 호주와 외교 안보 협상 중

전 국토의 해발고도가 5m 이하로 그마저 매년 물이 차오르며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곳 투발루. 솔로몬 제도 동쪽과 피지 북쪽에 자리한 군도 국가 투발루의 전체 인구수는 1만1천 명이다. 투발루는 주변 국가인 호주와 매년 자국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280명을 기후 난민으로 받아들여달라는 내용의 '기후 안보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외교권, 자치권이 쟁점이다.

'(투발루와 호주) 양국은 2023년 11월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후·안보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협정에는 투발루가 제3국과 안보·방위 협정 체결 시 반드시 호주와 협의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투발루 국회는 이 조약이 투발루 주권을 침해한다며 비준하지 않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번에 협정을 새로 체결하게 됐다.'
(연합뉴스, 2024.5.9)


최근 양국은 다시 협상을 해 투발루가 다른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을 자유는 제한하지 않기로 했지만 호주가 항만에서 통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보안 분야에서 투발루와 제3국 간의 거래를 검토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외교권 제한 범위를 주요 쟁점으로 하여 호주가 투발루 난민을 어느정도 수용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지원을 해줄지가 결정되는 모양새다.

기후난민, 새 터전으로의 이주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 시작임을 절감하게 된다.

[참고 자료]
- Rachel Ramirez and Edu Ponces, 'Threatened by rising seas, the first of Panama's Indigenous islanders are forced to leave' (CNN, 2024.6.8)
- 장아영, '가라앉는 파나마 섬...'기후 난민' 1,300여 명 "집 옮겨요" (YTN, 2024.6.6)
- 김명진, '바닷물이 밀려든다…삶의 터전 떠나는 '기후난민' 구나족' (한겨레, 2024.6.4)
- 'Jakarta's Sinking Reality: Nusantara to Take the Capital Helm in August' (Environment+Energyleader.com, 2024.5.17)
- 김지원, '인도네시아, 8월 수도 옮긴다… 정글 한복판 '누산타라' 선택한 이유' (조선일보, 2024.6.8)
- 박의래, '호주, '대만 수교국' 투발루와 새 안보조약 체결…1천억원 지원' (연합뉴스, 2024.5.9)

덧붙이는 글 |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방송인 '오늘의 기후'는 매일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FM 99.9 OBS라디오를 통해 방송됩니다. 며칠전 오늘의 기후 유튜브 독립채널이 개설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오늘의 기후 채널' 검색하시면 매일 3편의 방송주요내용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시청은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태그:#기후변화, #기후위기, #투발루, #해수면상승, #지반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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