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3월, 청소기를 구입했다. 대기업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이뤄진 구매였다. 한번의 클릭으로 제품을 선택해서 집 앞 배송까지, 과정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성능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청소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문제였다. 소리는 거셌지만 흡입력은 부족했다.

온라인 쇼핑몰 서비스 센터에 연락하여 반품비를 지불하더라도 환불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제품 개봉을 했다고 하니, 반품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유선 청소기
 
온라인으로 구입한 유선 청소기.
 온라인으로 구입한 유선 청소기.
ⓒ 이은지

관련사진보기

 
청소기는 직접 코드를 꽂고 연결을 해야 성능을 알 수 있는 제품이다. 박스를 여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사유로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하고자 했다. 지난 4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상담센터는 "전자제품은 사용을 해봐야지만 성능을 알 수 있긴 한데, 사용을 하고 나서 성능이 미흡하다는 건 한국소비자원 상담 단계에서 분쟁 조정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환불하고 싶다고 하자, 소비자상담센터는 온라인 쇼핑몰과 청소기 회사에 협조 요청을 해보겠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물 서비스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센터는 "전자상거래법에 의거해서 전자제품의 경우, 전원이 인가되고 개봉이 된 제품은 제품의 불량이 아닌 이상 변심이나 성능 부족으로는 반품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기사님이 방문을 했을 때 제품이 불량이 아니라 판정이 난 상황에서는 업체 쪽으로 (반품을 ) 강요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상품 페이지 제일 상단에, 가전제품의 특성상 박스 개봉이나 전원 연결 시에 불량 외에 반품이 불가하다는 내용을 다 확인하실 수 있도록 크게 고지해놨다"고 강조했다.

A/S 기사 방문 결과, 하자가 없다고 했고 결국 반품은 불가능했다.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전자제품은 하자가 있지 않은 이상 교환이나 환불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전자상거래법 제17조에 따르면 '소비자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로 재화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소비자는 청약철회를 할 수 없다. 다만 제품의 하자가 발견 된다면 청약철회가 가능하다.

즉, 온라인에서 구매 후 포장을 뜯었기에 '가치가 감소한 경우' 환불해줄 수 없다는것이다. 성능에 대한 불만족은 오롯이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는 성능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을까? 소비자가 테스트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의정부에 있는 전자제품 판매 매장 세 곳을 찾아가 보았다.
 
무선청소기만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이다.
 무선청소기만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이다.
ⓒ 이은지

관련사진보기

 
처음 방문한 매장은 LG 단독 매장이었다. 청소기가 4개 있었으나 모두 무선 아니면 로봇 청소기였다. 유선 청소기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무선 청소기는 실제로 사용해볼 수 있었으며, 제품 상단에 흡입력이 '최대 320W'라고 적힌 홍보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장 직원은 무선 청소기 성능을 보여주며 "예전 청소기들은 180~220W"라 설명했다. 

가전제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업체 담당 직원은 "대체적으로 220W 모델이 청소기의 대부분"이며 "이제 90%가 무선 청소기, 10%만 유선 청소기"라고 했다. 매장을 둘러보자 유선 청소기는 8개 제품이 전부였으나 무선 청소기는 그 배에 달했다.
 
매장에서 마주한 유선 청소기는 8개에 불과하다.
 매장에서 마주한 유선 청소기는 8개에 불과하다.
ⓒ 이은지

관련사진보기

 
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무선 청소기는 손으로 들기만 하면 테스트가 가능했는데, 유선 청소기는 전원이 연결되지 않아 사용해볼 수 없었다. 어떤 세기와 흡입력을 가졌는지 체감할 수 없는 것이다.

대형마트 전자제품 판매 코너를 방문했다. 해당 매장에서는 유선 청소기를 아예 찾을 수 없었다. 반면 이곳저곳 무선 청소기는 배치되어 있었고 전부 테스트가 가능했다. 또, 흡입력을 나타내는 W는 제품마다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담당 직원의 부재로 제품 설명을 요청할 수 없어 흡입력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다시 청소기 회사 서비스센터에 문의를 남겼다. 흡입력 세기를 물었다. 회사에 따르면 구매한 청소기의 흡입력은 '420W'였다. 답변을 듣자 오히려 의아함만 남았다. 직접 성능 테스트를 해본 결과, 무선 청소기(320W)에 비해 구매한 청소기의 흡입력(420W)은 매우 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손잡이를 잡으면 느껴지는 진동의 세기가 달라서 두 청소기 사이의 차이는 비교적 명확히 느껴졌다. 회사 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100W만큼의 흡입력 차이를 소비자 입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셈이다. 

소비자를 구제할 방법은 정말 없을까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물건 구매는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구매 시 성능을 직접적으로 검증할 수 없고, 명백한 하자가 없다면 '개봉' 시 반품은 불가하다는 것이 현 정책이다. 직접 찾아 본 결과, 오프라인을 통한 성능 검증도 어려웠다. 판매되고 있는 물건의 종류도 한정돼 있을 뿐 아니라, 유선청소기를 직접 테스트해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많은 가전 제품의 성능을 직접 테스트해볼 수 없는 현 시점에서, '단순변심'의 기준을 바꿔 소비자를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좌혜선 소비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은 앞서 언론을 통해 "소형가전과 설치가 필요한 대형가전 등으로 구분해 '제품 가치 훼손'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기준 마련 없이는, 성능 불만족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소비자가 져야 한다.

제품 판매 업체인 회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제품의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을 게시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는 "법적으로 의무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사업자들에게 권유할 수 있다, 전자제품 사용법 영상을 만들어 (회사 홈페이지에) 올려야 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소비자 기본법 등에 기재한다면, 사업자에게 지도할 수 있다"고 답했다.
  
결국 나는 유선 청소기 반품에 실패했다. '제품 가치 훼손'에 대한 기준 마련, '실제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 게시' 등이 실현된다면 더 많은 구매자들이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다음 청소기를 구매하기 전까지 실질적 변화가 있길 바라본다. 

태그:#전자상거래법, #단순변심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