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가운데)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9.10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흔히 '세대 간 연대'의 원리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낸 돈을 이자 쳐서 돌려받는 국민연금'이라는 민간보험 프레임을 통해 보면, 세대간 연대의 원리라는 전통 개념조차 왜곡된다. 이 프레임에서 세대간 연대란 젊은 세대가 낸 돈으로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부조의 원리로 전락한다. 그 결과 '청년은 소득의 13%를 내고 42%를 받는데, 장년은 9% 내고 50%를 받으니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옳은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적연금 제도에서 말하는 전통적 의미의 세대간 연대의 원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젊은층이 노인층을 일방적으로 부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인인구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이다.
사회 전체의 노인 공동 부양이란 개념에는 세대 간 갈등의 소지가 거의 없다. 공동 부양 제도로서 국민연금에는 젊은 세대가 낸 돈으로 노인을 부양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이란 말 그대로 사회 전체가 노인부양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이는 현재 생산한 생산물 일부를 노인과 나눈다는 의미일 뿐이지 과거의 저축을 돌려받는다거나 누구의 돈을 누구에게 건넨다는 뜻이 아니다.
왜 현재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노인과도 나눠야 하는가? 공동 부양의 관점은 현재의 생산물에는 (과거의 생산 세대였던) 노인의 기여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현재 누리는 생산성의 큰 부분은 과거의 성취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왔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국민연금을 민간보험으로 보는 관점이다. 부자가 자신의 노력으로만 그 부(富)를 이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젊은층이 낸 돈으로 노인을 부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국민연금 보험료라는 이름으로 돈은 돈을 연금으로 주는 것처럼 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고령화에 따라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의 수가 노인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 재정이 어려워진다는 재정안정성 논리도 이에 기초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을 잘 보여주는 제도라 할 수 없다. 국민연금을 걷는 이유는 국민연금 수급권을 부여하고, 연금 급여액을 정하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다. 원리적으로, 공적연금에서는 낸 돈과 급여를 연계할 필연적 이유가 없다. 민간보험이 아니란 말이다.
오건호 위원장의 주장처럼 '현 제도에서 청년층이 중·장년층에 비해 손해'라는 주장도 기여와 급여를 철저히 연계한 주장이다. 낸 돈 대비 받는 돈의 비율로 보면, 그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주장에 숨겨진 프레임이 더 중요하다. 이 주장에는 사회와 공동 부양 등의 개념은 전혀 없다. 성공한 사람은 더 많이 노력했기 때문인 것처럼, 연금을 많이 받는 사람은 많이 냈기 때문이라는 믿음만 존재한다.
공동 부양, 누구의 부담인가?
청년층의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이 불만이라면, 그것을 올리면 된다. 그런데, 그런 제안은 하지 않는다. 미래에 보험료를 내는 청년인구가 감소하므로, 현재 청년층의 소득대체율을 인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 손해 주장의 핵심 근거는 미래 국민연금 재정 제약이라는 또 하나의
숨겨진 암묵적 전제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감소하면 재정이 어려워지는가? 오건호 위원장을 비롯해 정부, 보수 전문가와 언론 대부분이 그렇다고 말한다. 왜 재정이 부족해지는가? 받는 사람(노인)은 많은데, 내는 사람(청년)은 부족하므로.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설명에도 치명적 전제가 숨겨져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으로만 운영돼야 한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이들은 왜 국민연금이 가입자의 돈으로만 운영돼야 한다는 것인지에 관해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전제할 뿐이다.
이 점에서 노인인구의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이란 관점이 중요해진다. 국민연금은 근로소득에서만 떼어간다. 그런데 이 근로소득은 '사회 전체의 소득', 즉 GDP의 30%에도 미치지 않는다. 일하는 청년인구가 감소하면 이 비중은 더 작아질 수 있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숫자를 확인해 보자. 국민연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시기는 2080년이다. 그때 국민연금 총급여액은 사회 전체의 소득(GDP) 대비 9.4%에 지나지 않는다(당시 노인인구 비중은 전체 인구의 48%). 또한 그때 국민연금의 수입은 GDP 대비 2.3%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왜 그런가? 국민연금은 GDP의 26.9%에 불과한 근로소득에서만 걷어야 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노인부양이 사회 전체의 공동 책임이란 원리에는 부합하지 않는
전제이다. 사회 전체의 소득(GDP)에 대해 국민연금 급여 총액의 비중은 우리 사회가 생산하는 생산물 중 노인에게 분배하는 양이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정부이다. 우리 정부와 달리 선진국 정부 대부분이 공적연금에 국고를 지원하는 이유이다. 국고는 사회 전체의 소득으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마련한다. 노인인구 비중이 48%에 이르는 시기에, 이들에게 사회 전체의 생산물 중 10%가 충분한가? 우리 사회 전체가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인가?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숨겨진 프레임을 겉으로 드러내자
사회 전체의 소득 중 노인몫이 커지면, 현재의 청년 세대에게도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보장할 수 있다. 억울한 청년과 형평을 맞추기 위해, 국민연금 삭감 대신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의 지배 담론은 이를 부정한다. 그 부정의 근거는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만 운영돼야 한다'는 원리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원리는 공적연금의 취지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에 관한 토론부터 시작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국민연금을 민간보험처럼 취급하는 관점은 시장(보험회사)의 논리이지, 공공의 논리는 절대 아니란 점이다. 국민연금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 아니라 근로 세대가 내는 보험료로 운영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면, 청년과 노인이 갈등한다. 반면 사회 전체의 공동 책임으로 보면, 부자와 기업 대(對) 국민 다수의 갈등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각자도생의 논리이고 후자는 공동체적 논리다.
미래 세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