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0 19:19최종 업데이트 24.09.20 19:19
  • 본문듣기
국민연금연합뉴스

지난 8월 29일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을 직접 언급했다. 이후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기조는 노후소득 향상이 아니라 '국민연금 재정안정성' 강화였다. 연령별 보험료 차등 인상과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방안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 국민연금의 기본 취지와 근본 원리를 허물며, 목표를 달성하지도 못할 것이란 비판이 대부분이다(관련 기사 : 국민 속인 윤 정부... 연금개혁안의 중대 문제점 7가지 https://omn.kr/2a4vs ).

여기서 이를 재론할 이유는 없다. 대신, 정부는 왜 그런 개혁안을 생각하게 됐는지, 그 동기와 철학을 따져보고자 한다. 이 개혁안에 포함된 모든 방안은 결국 국민연금의 재정이 불안정해질 것이란 전제에서 출발한다. 정부를 포함해 현재 주류 담론은 더 걷을 방법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전제'하고, 지출을 줄이는 방법만 생각하도록 몰아가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 논란은 이 프레임 안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이 프레임에 갇히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이 프레임은 무엇이고, 국민연금의 원리와 철학에 부합하나?

도대체 국민연금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국민연금을 연금보험처럼 생각한다. 그 운영 원리도 민간의 연금보험과 같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운영하고, 의무가입이란 점만 다르다고 생각한다. 민간 연금보험의 운영 원리는 '내가 낸 돈에 이자를 쳐서 돌려받는다'라는 원리이다. 정부와 보수 전문가, 언론도 줄곧 이를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실생활에서 겪는 일이라 이해하기도 쉽고, 국민의 뇌리에 쉽게 각인됐다.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최근 신문 칼럼에서 연령별 차등 보험료 인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국민연금 차등보험료율 도입할 만하다" <경향신문> 2024.9.11.). 이것이 '세대간 형평성'에 부합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안대로 소득대체율을 42%에 고정하더라도 예전부터 가입한 50세는 생애 평균 소득대체율이 50.6%이고, 20세는 42%로 격차가 존재"하는 등 "연령대별 기여와 부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란다. 한마디로, 젊은 세대는 중·장년층과 비교하면 낸 돈에 비해 덜 받는다는 말이다.

이 주장은 부정할 수 없는 가치로 숭상되는 형평성 관념을 숫자로 뒷받침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 반박하거나 부정하기 쉽지 않다. 반증으로 새로운 숫자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누가 옳냐보다는, '내가 낸 돈 대비 받는 혜택이 같아야 공평한 거야'라는 암묵적 전제만 더 또렷이 전달된다. 이 숨겨진 전제를 프레임이라 부른다.

이 프레임에 포섭된 사람은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민간보험처럼 본다. 내가 내는 돈과 받는 혜택을 비교하는 관점 말이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낸 돈 대비 혜택의 정도를 계층별로 또는 연령별로 비교한다.

일단 이런 비교가 시작되면 모두가 불평을 쏟아낸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낸 돈 대비 덜 받는다고 억울해하고, 청년은 노인을 염치없다고 비난하고, 저소득층은 용돈 연금으로 노후를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불평한다. 이쯤 되면, 의무가입 규정을 폐지하고 노후는 각자 준비하게 내버려 두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 프레임으로는 온갖 갈등론을 피할 수 없다.

세대간 연대 vs. 갈등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가운데)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9.10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흔히 '세대 간 연대'의 원리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낸 돈을 이자 쳐서 돌려받는 국민연금'이라는 민간보험 프레임을 통해 보면, 세대간 연대의 원리라는 전통 개념조차 왜곡된다. 이 프레임에서 세대간 연대란 젊은 세대가 낸 돈으로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부조의 원리로 전락한다. 그 결과 '청년은 소득의 13%를 내고 42%를 받는데, 장년은 9% 내고 50%를 받으니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옳은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적연금 제도에서 말하는 전통적 의미의 세대간 연대의 원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젊은층이 노인층을 일방적으로 부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인인구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이다.

사회 전체의 노인 공동 부양이란 개념에는 세대 간 갈등의 소지가 거의 없다. 공동 부양 제도로서 국민연금에는 젊은 세대가 낸 돈으로 노인을 부양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이란 말 그대로 사회 전체가 노인부양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이는 현재 생산한 생산물 일부를 노인과 나눈다는 의미일 뿐이지 과거의 저축을 돌려받는다거나 누구의 돈을 누구에게 건넨다는 뜻이 아니다.

왜 현재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노인과도 나눠야 하는가? 공동 부양의 관점은 현재의 생산물에는 (과거의 생산 세대였던) 노인의 기여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현재 누리는 생산성의 큰 부분은 과거의 성취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왔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국민연금을 민간보험으로 보는 관점이다. 부자가 자신의 노력으로만 그 부(富)를 이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젊은층이 낸 돈으로 노인을 부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국민연금 보험료라는 이름으로 돈은 돈을 연금으로 주는 것처럼 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고령화에 따라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의 수가 노인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 재정이 어려워진다는 재정안정성 논리도 이에 기초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을 잘 보여주는 제도라 할 수 없다. 국민연금을 걷는 이유는 국민연금 수급권을 부여하고, 연금 급여액을 정하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다. 원리적으로, 공적연금에서는 낸 돈과 급여를 연계할 필연적 이유가 없다. 민간보험이 아니란 말이다.

오건호 위원장의 주장처럼 '현 제도에서 청년층이 중·장년층에 비해 손해'라는 주장도 기여와 급여를 철저히 연계한 주장이다. 낸 돈 대비 받는 돈의 비율로 보면, 그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주장에 숨겨진 프레임이 더 중요하다. 이 주장에는 사회와 공동 부양 등의 개념은 전혀 없다. 성공한 사람은 더 많이 노력했기 때문인 것처럼, 연금을 많이 받는 사람은 많이 냈기 때문이라는 믿음만 존재한다.

공동 부양, 누구의 부담인가?

청년층의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이 불만이라면, 그것을 올리면 된다. 그런데, 그런 제안은 하지 않는다. 미래에 보험료를 내는 청년인구가 감소하므로, 현재 청년층의 소득대체율을 인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 손해 주장의 핵심 근거는 미래 국민연금 재정 제약이라는 또 하나의 숨겨진 암묵적 전제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감소하면 재정이 어려워지는가? 오건호 위원장을 비롯해 정부, 보수 전문가와 언론 대부분이 그렇다고 말한다. 왜 재정이 부족해지는가? 받는 사람(노인)은 많은데, 내는 사람(청년)은 부족하므로.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설명에도 치명적 전제가 숨겨져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으로만 운영돼야 한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이들은 왜 국민연금이 가입자의 돈으로만 운영돼야 한다는 것인지에 관해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전제할 뿐이다.

이 점에서 노인인구의 사회 전체의 공동 부양이란 관점이 중요해진다. 국민연금은 근로소득에서만 떼어간다. 그런데 이 근로소득은 '사회 전체의 소득', 즉 GDP의 30%에도 미치지 않는다. 일하는 청년인구가 감소하면 이 비중은 더 작아질 수 있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숫자를 확인해 보자. 국민연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시기는 2080년이다. 그때 국민연금 총급여액은 사회 전체의 소득(GDP) 대비 9.4%에 지나지 않는다(당시 노인인구 비중은 전체 인구의 48%). 또한 그때 국민연금의 수입은 GDP 대비 2.3%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왜 그런가? 국민연금은 GDP의 26.9%에 불과한 근로소득에서만 걷어야 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노인부양이 사회 전체의 공동 책임이란 원리에는 부합하지 않는 전제이다. 사회 전체의 소득(GDP)에 대해 국민연금 급여 총액의 비중은 우리 사회가 생산하는 생산물 중 노인에게 분배하는 양이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정부이다. 우리 정부와 달리 선진국 정부 대부분이 공적연금에 국고를 지원하는 이유이다. 국고는 사회 전체의 소득으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마련한다. 노인인구 비중이 48%에 이르는 시기에, 이들에게 사회 전체의 생산물 중 10%가 충분한가? 우리 사회 전체가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인가?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숨겨진 프레임을 겉으로 드러내자

사회 전체의 소득 중 노인몫이 커지면, 현재의 청년 세대에게도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보장할 수 있다. 억울한 청년과 형평을 맞추기 위해, 국민연금 삭감 대신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의 지배 담론은 이를 부정한다. 그 부정의 근거는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만 운영돼야 한다'는 원리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원리는 공적연금의 취지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에 관한 토론부터 시작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국민연금을 민간보험처럼 취급하는 관점은 시장(보험회사)의 논리이지, 공공의 논리는 절대 아니란 점이다. 국민연금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 아니라 근로 세대가 내는 보험료로 운영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면, 청년과 노인이 갈등한다. 반면 사회 전체의 공동 책임으로 보면, 부자와 기업 대(對) 국민 다수의 갈등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각자도생의 논리이고 후자는 공동체적 논리다.

미래 세대를 위해

"윤정부의 연금개혁안, 국가의 노후보장 기능 포기 선언"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양대노총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사실상 국가의 노후보장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노후파탄, 분열조장 윤석열 정부 연금개악안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소연

세금은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주장은 보수의 전매특허다. 현 정부도 자나 깨나 재정건전성 걱정하면서도, 경제성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과감한 감세정책을 시행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보수가 경제성장을 위해서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말할 때는 항상, 예외 없이, 기업과 부자의 세금만 말한다는 사실이다. 일반 대중과 서민에 대한 과세는 경제성장에 해롭지 않다는 말인가?

보수는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늘어나고, 부자의 세금을 줄이면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좋아져서, 그 과실이 일반 대중에도 퍼져 나간다는 설명한다. 이를 '낙수효과'라 부른다. 그런데 현실에서 낙수효과는, 가장 좋게 말해서, 확정된 적이 없다. 오죽하면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의 대통령(바이든)도 취임 즉시 "낙수효과는 확인된 적이 없다"고 선언했겠는가.

경제 전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민간소비'다. 미국의 소비는 GDP의 약 70%, 우리나라 경제에서도 약 50%를 민간소비가 차지한다. 소비가 늘면 경제가 더 잘 돌아간다는 지적은 옳다. 그런데 이 거대한 소비 대부분은 부자의 소비가 아니라 다수인 일반 대중의 소비로 구성된다. 특별히 부유하더라도 개인의 소비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반면, 대다수 대중은 항상 배가 고프다. 그래서 부자는 소득이 늘어도 그것을 소비하는 대신 저축하는 반면, 일반 대중은 늘어난 소득 대부분을 소비하고 조금만 저축한다.

소비가 늘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런데 누가 더 많이 소비하는지 실상을 알고 보면, 일반 대중의 소득을 늘려주는 편이 소비 진작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소수 부자의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소비가 많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들의 소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충분히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대중의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증가하고, 이 증가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그러면 다시 대중의 소득이 증가하는 등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거시경제지표가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심각한 경기 침체에 봉착해 있다. 거대 수출 대기업의 성과가 좋아지면서 경제 지표는 좋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영업과 중소기업은 단군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수출보다 내수에 의존하는데, 일반 대중의 소비가 감소한 결과다.

국민연금을 더 걷는 일은 일반 대중에 대한 증세와 같다. 증세의 결과 소비가 감소하면, 투자도 위축되고, 경제성장도 생산성 향상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를 장기적으로 고집한다면, 미래 세대는 저성장, 저생산성의 '저질경제'를 물려받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미래 세대를 위하는 길일까? 왜 이 문제에는 세대간 형평성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까?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낸 돈으로만 운영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미래 인구 고령화는 정해진 미래라 여기며, 세대간 형평성까지 고려하면, 당장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이는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다. 어떻게 미래 세대에게 고생산성, 양질의 경제를 물려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이 국민연금 개혁안에도 반영돼야 한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