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8 17:29최종 업데이트 24.08.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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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을 겪어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노동자들 ⓒ unsplash


임금은 노동하는 직장인의 목적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나의 황금 같은 시간의 처분을 사용자에게 맡긴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계를 꾸려 갑니다. 그런데 사용자가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고 나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분노가 치밀 겁니다.

이처럼 임금 지급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기초적인 약속입니다. 그런데 일터에서는 이런 기초적인 질서가 잘 안 지켜집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는 한 달에 1회 이상 지급일을 정해 임금을 전액 지급해야 합니다. 은행 적금과 이자 납부, 월세와 가스요금, 학원비 등 한 달 단위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노동자들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것이겠지요. 한 달에 1회 이상이라고 했으니, 일당으로 지급하든, 주급으로 지급하든 상관없지만 최소 한 달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조경 일을 하는 60대의 강아무개씨는 건설 현장에서 속칭 '오야지'로 불리는 도급업자에게 채용되어 전국을 돌며 조경일을 합니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3개월간 충남 천안에 어느 공장에서 조경 일을 했는데 임금 500만 원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오야지'는 강씨에게 원청 회사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노임을 못 주고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고용노동지청에 신고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나마 일을 시켜주는 '오야지' 눈 밖에 날까봐 머뭇거리다 보니 벌써 2개월이 지났습니다.

일용직은 건설 현장을 비롯해 제조업, 그리고 각종 용역업체에 단기간 고용되어 일합니다. 건설 현장에서는 속칭 '오야'라 불리는 인력 수급 업자가 일당제로 노동자를 모집해 하청받은 업무를 수행합니다. 공사를 발주한 원청 회사의 대금 지급 기간과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기한이 일치하지 않는 겁니다. 따라서 원청의 대금 지급이 늦어지면 고용 관계상 사업주인 '오야'가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를 대비해 건설산업법과 근로기준법은 임금체불에 대하여 원청 회사의 연대책임을 지워 체불당한 노동자가 원청 회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설일용직들의 일감을 주는 원청 회사나 '오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용노동자 처지에서 이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청소년이나 여성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 계층에 대한 수습 기간에,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해 임금을 체불하는 못된 관행도 있습니다. 한국노총 지역상담소가 상담한 사례에 따르면 개인 카페에서 수습 기간을 정해 2개월간 일한 어느 노동자의 시급은 5000원에 불과했습니다. 2024년 최저임금 시간급이 9860원이니, 4860원이나 미달했습니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1년 이상의 근로계약을 한 경우 3개월 이내의 수습 근로기간을 정해 최저임금의 10%를 감액할 수 있습니다. 업무에 미숙한 신규 채용 노동자에 대해 일정 기간 업무 숙달에 따른 사용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입니다. 이는 편의점 등 단순 판매 직종이나 1년 미만의 단기간 근로자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 일반 서비스 업종에서 1년 미만의 단기간 계약을 하고도 청소년이나 여성 비정규노동자에 대해 수습 기간에,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관행이 여전합니다.

임금체불 항의하니, 세무사에게 물어보라는 사업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붙은 알바 구직 안내문. ⓒ 연합뉴스


이러한 중소 영세사업장의 임금체불 문제는 사업주의 영세성과 노동관계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도 부담스러워 급여의 계산,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원천징수, 고용보험법상의 기업지원 파악 등 인사·노무 역량을 갖출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의 연장근로나 휴일근로 등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을 계산하지도 못하거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실제 상담을 하다 보면 퇴직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 산정 때 당연히 포함하여야 하는 상여금을 빠뜨려 임금체불로 신고당하는 사업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는 임금 지급 시 노동자에게 임금의 구성항목과 계산 방법 그리고 공제 내용 등을 기재한 임금 명세서를 줘야 합니다. 그러나 인사 노무 역량이 부재한 중소사업장은 일반적으로 소득세 등의 원천징수 업무를 대리하는 세무사에 4대 보험료나 임금 산정 업무 등을 위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무사는 세법의 전문가이지 노동관계법 전문가가 아닙니다.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율 계산을 잘못하거나, 평균임금 산정 때 들어가야 할 상여금이나 수당을 빠뜨리는 등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자문을 사업주에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상담 사례에서 평균임금 산정이 잘못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에게 사업주는 세무사에게 문의하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 일쑤입니다.

이처럼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 대다수는 중소 영세사업장에서 일합니다. 물론 이들 사업장 사장님도 코로나19의 확산이나 고금리 경제위기 속에서 힘들 겁니다. 그래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정한 약속입니다.

중소 영세사업장의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정부는 노동법에 대한 중소 영세 사업주의 이해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경제단체는 매번 중소 영세 사업주의 열악한 경영환경을 방패 삼아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규제를 피하려 하지만 말고, 책임 있는 자세로 사업주들의 인사 노무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골프장 팔아 체불임금 갚겠다고 위증한 회장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지난 1월 22일 위니아전자지회·위니아딤채지회와 함께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유위니아 임금체불 사태와 관련해 박영우 회장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제공


경영상의 한계로 불가피한 중소 영세 사업주와 달리 대기업의 임금체불은 그 규모가 방대하고 내용 면에서 악의적입니다. '딤채'라는 김치 냉장고로 유명한 대유 위니아 임금체불 사태가 대표적입니다. 현재 대유 위니아를 비롯해 대유그룹 소속 3개 회사 노동자에 대한 체불임금액은 800억 원이 넘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임금체불 사건입니다.

대유 위니아는 지난해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소속 조합원 수백 명이 임금체불을 당한 한국노총 금속 노동조합연맹은 "대유그룹 박영우 회장은 위니아 딤채 인수 인후 회사 쪼개기와 부실 계열사 밀어주기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후 국내외 부동산 투기, 고가 미술품 매입, 남양주 호화별장 건축 및 무리한 인수·합병 시도 등으로 대유 위니아를 부실기업에 이르게 했다"라고 주장합니다.

박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 전에도 대유 위니아로부터 1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됐습니다. 대유 위니아 임금체불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난해 10월 국회에 출석해 골프장을 매각해 체불임금을 청산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내부 계열사로 빼돌리고 체불임금을 갚지 않아 국회 위증죄로 검찰이 수사 중입니다.

지난 2022년부터 수년간 경영 위기 속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제일 먼저 자녀 교육비를 줄이고 부모의 병원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금융권 대출을 시도했으나 회사의 4대 보험료 6개월 이상 미납으로 신규 대출과 기존 대출 연장이 중단되는 생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에 대한 혹시나 하는 기대와 호전되기 어려운 기업 경영 상황 속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이직의 시기와 개인의 경력 형성 기회를 둘 다 놓치며 이중의 경제적 피해를 겪습니다.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통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며 자존감은 떨어지고 우울감은 높아집니다. 이처럼 대기업의 임금체불은 노동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고 노동자의 피해도 큰 만큼, 강력한 처벌로 그 책임을 명확하게 물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지난해 노동자의 임금체불액은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연도별 임금체불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2023년) 임금체불 신고 금액은 약 1조 7000억 원입니다. 직전 연도(2022년)에 비해 약 4400억 원이 증가했습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임금체불의 빈도 역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임금체불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지난해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44%가 임금체불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부터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상황은 그리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올해는 상반기(1~6월)에만 벌써 약 1조 400억 원으로 전문가들은 지난해 임금체불액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합니다. 더욱이 최근의 위메프와 티몬 사태로 수천 명의 큐텐 계열사 노동자들과 대금 미지급으로 경영 위기를 맞은 입주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 예정된 것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 질 겁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8월1일 기준 위메프와 티몬을 비롯한 큐텐 계열 전자상거래 입점업체나 소비자에 대한 미정산 금액은 약 2800억 원입니다. 그중 소비자 피해 예상액인 약 600억 원을 제외하고 2200억 원을 미지급 받은 약 3300개 업체 노동자가 회사의 자금 위기로 임금체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

신속한 소비자 피해 구제, 노동자에는 뻔한 대응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위메프·티몬 사태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추경호 원내대표·한동훈 대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 남소연


정부와 여당은 지난 6일 당정 협의를 열어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한 신속한 구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미정산 사태로 손해를 입은 소비자의 일반 상품에 대해서는 1주 내로 환불이 완료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대금 미지급 피해 기업에 2000억 원 규모의 긴급 경영 안정 자금과 3000억 원 규모의 신용보증기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피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정부는 위메프와 티몬 사태로 임금체불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간이대지급금 등으로 최대 2100만 원의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치 큰 지원금을 편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입점업체에 대한 통 큰 금융지원과 달리 임금체불 노동자 지원액은 기존 대지급금 상한액을 언급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업주의 탐욕을 견제해야 할 정부가 임금체불은 경영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그저 그런 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미국 뉴욕주는 임금체불 예방을 위한 법령에서 임금체불을 '임금 절도'(Wage Theft)라고 부릅니다. 노동자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절취하는 범죄행위로 명확하게 규정해 처벌하는 것이지요.

저는 미국 뉴욕주의 법률 명칭인 '임금절도'가 임금체불에 대한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높이고, 체불 피해 노동자가 체불임금액의 배액 이상을 청구해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청구권을 입법화하는 등 법을 위반해 얻는 이익에 비해 그 처벌이 더 큰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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