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5 15:06최종 업데이트 24.07.2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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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의 직필’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국정운영 경험이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더 포용적이고 더 혁신적이며, 더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맞대고자 한다. [편집자말]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하에 초대형방사포를 동원한 핵반격가상종합전술훈련을 실시했다고 4월 23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핵방아쇠'라 부르는 국가 핵무기 종합관리체계 내에서 초대형방사포를 운용하는 훈련을 진행했다며 "적들에게 보내는 분명한 경고 신호"라고 이날 보도했다. 2024.4.23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앞으로 한반도에서는 핵 군사훈련이 경쟁적으로 실시된다. 북한은 지난 4월에 이미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핵반격이라는 명분으로 가상 핵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오는 8월에는 한미 양국도 북한핵에 대비한 핵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반도에서 실시되는 군사훈련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협상과정에서 뜨거운 쟁점이었다. 한미군사훈련이 중지되기도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중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한미군사훈련이 실시될 때마다 대화는 중단되고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었다.


이제는 한반도에서 실시하는 군사훈련의 성격이 달라졌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이 핵군사훈련을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승인하였다. 한미 양국은 이 지침에 따라 올해 8월경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연합훈련인 '을지자유의방패(UFS)'를 계기로 북한의 핵 공격 시나리오를 적용한 다양한 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고 북한의 핵공격에 대하여 한미 양국이 대응하는 핵 훈련을 하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핵보유국가들끼리 핵전쟁을 염두에 둔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위험하고도 놀랄만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북러조약과 북중조약에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개의 핵국가가 개입하게 된다면 동북아시아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핵보유국가들끼리 핵전쟁을 연습하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이런 가설이 가능하다. 작년에 한미 양국이 출범시킨 한미 핵협의그룹에 일본까지 참여하게 된다면 한미일 핵협의그룹은 세 나라가 핵전쟁 시뮬레이션을 하는 성격으로 발전할 것이다. 과거 한반도 비핵평화를 위해 협력했던 남한을 비롯하며 미일중러 등 6개국이 핵전쟁을 염두에 두고 군사훈련을 하게 되는 극단적인 반전이 이뤄지고 있다. 한반도가 동북아 6개국의 핵 훈련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핵폭탄급 부메랑이 된 핵무장론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발전시키며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어설프기만 하다. 윤 대통령은 작년 1월부터 핵무장론을 꺼냈다. 하지만 미국은 같은해 4월 한미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대가로 한국의 평화적 핵능력까지 원천적으로 가로막아 버렸다. 더불어 북한 핵에 대한 확장억제 제공 차원에서 핵 군사훈련을 하면서 장차 일본까지 참여시킬 구상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는 당연히 미중 전략경쟁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한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핵무장을 주장한 결과, 국제사회로부터 핵개발 의심국가로 낙인찍히는 결과만 가져왔다. 과거 일본은 이와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일본은 비핵 3원칙을 주장하면서 철저하게 비핵국가를 지향했다. 그 결과 일본은 핵 잠재력 확보에 성공했다.

윤석열 정부와 보수세력의 어설픈 주장은 비핵 3원칙을 주장한 일본과 달라도 한참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한반도에서 핵국가들이 핵군사훈련을 경쟁적으로 실시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과거 한미군사훈련이 한반도 정세에서 갈등요인으로 작용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핵 군사훈련은 앞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만큼 한반도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남북한이 핵 훈련을 벌일 때마다 서울과 평양에서는 말폭탄을 날릴 것이다. 핵을 통해서 안전을 지키겠다는 발상이 부메랑이 되어 핵무기급 말폭탄으로 변질되고 있다.

안보를 강조할수록 거꾸로 안보가 불안해지는 상황이다. 안보 무능이 낳는 결과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하지만, 결국 '힘만 쓰는 평화'에 불과하다. 힘만 쓰는 평화의 결과는 '안보 불안'이다.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군사력만을 강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군사력만을 강화한다면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결국 힘만 쓰는 평화는 상대측의 군사력 강화를 초래하고, 이는 또 다른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안보딜레마'다. 힘만 쓰는 평화는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력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결국 무한 군비경쟁의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은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면서 위험을 회피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대결하는 공간은 글로벌한 무대가 아니라 한반도라는 좁은 지대이다. 이 좁은 지대에서 이들 6개국이 자칫 위험한 핵군사훈련 도박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치고 있다. 안보에 무능한 수구세력들이 힘만 쓰는 평화를 추구한 결과이다.

수구보수의 안보는 힘만 숭상하는 냉전안보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지난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한미일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아래쪽부터 우리군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함. ⓒ 해군 제공

 
과거 냉전시대에는 싸워서 이기는 것을 안보의 본질로 생각했다. 그래서 군사력이 곧 안보 그 자체였다. 세계를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세계관에는 그러한 안보관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대한민국은 해방이 되자마자 분단과 전쟁을 겪었다. 전쟁을 겪은 분단국 대한민국으로서는 국방력은 국가생존과 직결한 문제였다. 해방 이후 50여 년 동안 보수세력들이 대한민국을 운영해왔다. 보수세력은 국가안보의 책임을 맡았다. 그 사이에 안보는 보수가 유능하다는 허구적인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세계는 변화하였다. 2차 대전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냉전의 국제질서는 1990년을 전후하여 50여 년의 수명을 다하였다. 냉전이 끝나고 지난 30년 동안은 냉전시대와 다르게 동서 진영이 협력하는 탈냉전시대였다. 우리는 탈냉전을 맞이해서 중국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하고 교역을 하였다. 이제 탈냉전의 30년이 저물고 세계질서는 또 다른 낯선 곳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세력들의 안보전략은 '오직 힘'을 강조하는 냉전시대의 전략에 머물러 있다.

튼튼한 국방은 현대안보에서도 기초가 된다. 변화하는 국제정세는 국가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도 다차원적으로 만들고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는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다양하다.

현대안보의 기초가 튼튼한 국방이라면, 현대안보를 실현하는 수단은 유능한 외교다. 국방과 외교를 융복합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평화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수단을 다양화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안보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진보정부가 평화를 추구하면서 튼튼한 국방을 뒷받침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보수는 수구세력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수구세력이 취하고 있는 냉전적인 안보관에 대한민국 보수가 압도당하는 형국이다. 합리적인 보수세력조차 수구세력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안보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구세력이 꼬투리 잡아서 이념논쟁이 발생하면 피로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수구세력의 안보관을 그대로 따르고 마는 것이다. 시대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보수세력은 결코 보수가 아니다. 수구세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분파일 뿐이다.

수구세력은 힘을 숭상할 뿐이다. 그들에게 국가의 외교가 추구해나가는 세계는 오로지 흑과 백의 양극단만 있을 뿐이다. 외교는 양극단 사이에서 회색의 영역을 넓히고, 그 영역에서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극단에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적대하고, 아세안은 소홀히 하고, 미일 외교에만 '몰빵'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이 이 같은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몰빵외교를 펼치면서 힘만 쓰는 평화를 추구한다면 그 결과는 안보불안이다. 한반도를 핵보유국가들이 핵군사훈련을 하는 무대로 내어주는 것은 무능한 안보의 산물이다.

수구세력은 불안한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안보를 이용하기도 한다. 과거 총선을 앞두고 북한에게 총격을 부탁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판문점에서 북한이 총격을 가하면 국민들 사이에서 안보 불안감이 조성될 것이고. 그 결과 총선에서 수구보수세력들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뿐만이 아니다. 북한이 금강산 댐을 지어서 서울을 물바다로 잠기게 할 것이라는 세계적인 사기극을 펼친 세력도 수구보수세력이다.

미래의 평화와 번영을 만드는 진보의 안보

지금은 한국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냉전시대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 UNCTAD)는 2021년도에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운크타드가 창설된 1964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 변동을 이룬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한다.

운크타드 발표가 있기 직전에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은 우리의 위상이나 경제규모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가적인 역량에 대해 국제사회의 평가와 인정이 뒤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크타트 총회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한 결정에 195개국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운트타드 회원국 195개국 만장일치의 표결은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신장되었다는 뜻이다. 해마다 국가별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영국의 '브랜드 파이낸스'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세계 10위 수준이다. 세계인들이 한국에 열광하고 있고, 한국은 세계인들이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루고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비전은 평화롭고 번영하는 한반도, 국민이 행복한 나라이다. 우리의 미래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공기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안보'이다. 그 새로운 안보는 '평화를 만드는 안보'이다.

평화를 만드는 안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가자지구를 모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델보다는 교류협력으로 번영을 이루고 있는 독일과 같은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맺어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이루고,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모델을 추구하면서도 보수정부보다 더 튼튼하게 국방비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 수구보수와 다른 진보의 안보이다.
 
- '사의재의 직필' 고정 필진
정해구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도종환 전 문화체육부 장관, 박두용 한성대학교 교수, 조대엽 포럼 사의재 공동대표, 김유찬 전 조세재정연구원장,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 염한웅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이병헌 광운대학교 교수, 박능후 포럼 사의재 상임대표(전 복지부 장관), 정현백 포럼 사의재 공동대표(전 여가부 장관),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 김연명 중앙대학교 교수, 반상진 전북대학교 교수, 백선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김창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사의재 통일팀장이자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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