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김보성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전기본)에는 2036년까지 원전을 비중 22%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38%로 늘리겠다는 계획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를 완전히 정반대로 돌려놓았다. 원전 비중을 35%로 10% 이상 증가시키고, 재생에너지는 30%로 줄여 10차 전기본을 확정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총 26기의 원전이 설치되어 있고, 영구정지 2기, 건설 중 2기, 건설 예정 2기를 포함하면 총 32기의 원전을 갖게 된다. 여기에 더해 올해 발표 예정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 원전 3~ 4기의 추가 건설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으로 원전 최강국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울진 지역에 건설 예정인 신한울 3·4호기까지 생각하면, 모두 9기의 원전이 모여 있게 되어, '원전 밀집도' 세계 최대가 될 것은 확실하다.
원전 밀집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내 가동 중인 원전 총 24기 중 고리2(2024), 고리3(2024), 고리4(2025), 한빛1(2025), 한빛2·월성2(2026), 월성3·한울1(2027), 한울2(2028), 월성4(2029), 한빛3(2034) 11기의 원전이 줄줄이 설계수명만료가 다가와 있다. 원전 비중을 확대하려면 필연적으로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잘못된 탈원전 정책을 바로잡는다며,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원자력발전소의 계속운전 신청 시기를 최대 5년 앞당기기로 했다. 제도가 시행되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수명 연장 가능성이 있는 원전이 현행 10기에서 최대 18기로 늘어난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 2월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 웹사이트에 '원전 사고·고장' 정보로 분류돼 있는 모든 사건 보고를 분석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리 1호기'에서 1979년 1월24일 증기발생기 수위 저하로 원자로와 터빈발전기가 정지한 사건부터 2023년 12월13일 '한빛 2호기' 출입통제건물 전열기 제어판이 화재로 손상된 사건까지 45년간 원자력 안전규제 당국에 보고된 사건은 모두 776건이라고 한다.
원자력 사건 등급은 경미한 고장인 0등급부터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7등급까지 8단계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1등급은 '기기 고장, 종사자의 실수, 절차의 결함으로 인하여 운전 요건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 2등급은 '사고를 일으키거나 확대시킬 가능성은 없지만 안전계통의 재평가가 요구되는 고장'으로 정의된다.
녹색전환연구소는 국내 원전에서 고장 발생이 1990년대 이후 전체적으로 감소했지만 '운전 요건을 벗어난 비정상적 상태' 혹은 '안전계통의 재평가가 요구'되는 1·2등급 고장은 증가했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하며, '원전의 노후화'가 1·2등급 고장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비록 중대사고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원전 수명연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정작 가장 중요한 원전 안전에 관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일례로 가동원전의 고장과 사고 최소화를 위한 혁신 예측 기술과 피해 최소화 대응 연구개발 등의 안전 예산을 30% 이상 삭감했고, 원전 안전 부품 기술개발 관련한 예산은 94%나 삭감시켰다.
현재 원전 부지마다 고준위핵폐기물이 꽉 차있어,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에 관한 연구와 공론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더 이상 원전을 가동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이는 원전 확대 정책을 위해 원전 지원 관련 예산을 15배 가까이 증액한 상황과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다. 원전 가동 정지 같은 안전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SMR 개발 등 원전 안전에 대한 부분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원전 정책,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가는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