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4주기 추모식이 열린 3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에서 사람들이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TV 연설을 보고 있다. 이날 나스랄라는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외곽을 폭격해 하마스 고위 인사가 숨진 것과 관련해 "우리가 침묵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때맞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를, 후티반군은 홍해를 지나는 화물선을 대상으로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있다. '공격 포인트' 표현이 경박하게 들린다면 필자의 의도가 전달된 셈이다. 이란은 물론 헤즈볼라도, 후티 반군도, 심지어 하마스도 전쟁을 일으킬 의사는 애당초 없었다. 이들은 '관심팔이' 무력시위를 하는 중이다.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유린한 하마스가 전쟁 의사가 없다니! 발끈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그들에겐 전쟁 의사가 없었다. 다만 그들의 오판에 의한 반인륜적 행위가 필연적으로 전쟁을 유발했고, 결국 전쟁의 책임이 그들에게도 있는 것뿐이다. 그들이 전쟁 의사가 없다고 해서 전범 혐의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7일,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지휘체계의 이상 작동으로 인해 난동이 벌어졌고, 그 대가로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뿐 아니라 가자지구 주민들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도덕적,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문제와 정치적, 전략적 배경을 판단하는 문제는 냉정하게 구분돼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하마스의 극단적 도발과 그로 인한 전쟁 발발은 역설적으로 중동의 전쟁 가능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도치 않은 고삐 풀린 난동으로 전쟁을 유발한 하마스로 인해 이란과 그 동맹세력들은 극도로 '절제된 도발'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을 워싱턴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미국은 가자지구에서 작전을 벌이는 이스라엘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거두고 정확한 목적지점에 집중하는 '외과수술적 작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친이란 반군들의 도발에 대해서는 신중한 대응과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이 직접 이스라엘과 미국을 겨누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동 갈등의 두 중재 세력, 아랍과 서방
이란은 최근 들어 우라늄 생산을 크게 늘렸다. 이에 전 세계 언론들도 일제히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생산이 무기화가 가능한 선을 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전쟁 준비가 아닌 무력시위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이 표면 위로 노출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란과 동맹 반군들의 도발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차이에서 유래한다. 이스라엘 극우 내각은 앞서 말했듯 역내 두 국가(이스라엘-팔레스타인) 보장이 불가능해지는 순간까지 팔레스타인을 내몰 것이며, 이를 위한 이란과 동맹세력들과의 충돌도 불사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입김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에 대한 네타냐후 총리의 대응 태도에서도 연유하지만 미국의 역할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도 한몫한다. 그리고 미국이 내려놓은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중동과 유럽연합이다.
이집트와 카타르는 중동 아랍국가들 가운데 특히 현 분쟁 상황에 대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지난해 말, 두 나라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미국, 유럽연합에 자신들이 작성한 이스라엘-하마스 종전 협상안을 전달하면서 수용과 지지를 호소했다.
이 협상안에는 휴전과 인질 석방 - 과도 내각 구성과 총선 - 새 팔레스타인 자치 기구 구성이라는 큰 틀의 계획이 포함돼 있다. 과도 내각에 하마스까지 포함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 문제에 이견은 있지만 큰 틀에서 이스라엘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고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