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채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군 검찰단 출석이 예정됐던 박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7월 28일 금요일 오후, 해병대수사단은 채 상병 유가족을 만나 수사 결과를 설명했다. 군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군사경찰은 규정상 수사 중간에 한 번, 끝날 때 한 번 유가족을 대상으로 수사설명회를 하게 되어있다. 사고 발생 상황, 원인, 그리고 원인의 책임 소재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설명을 들은 유가족이 더 알아봐 주길 바라는 부분이 있으면 추가 수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견이 없으면 수사는 종결 수순을 밟는다.
수사가 종결되면 군사경찰은 민간경찰에 사망 원인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수사 의뢰한다.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망 원인 관련 범죄는 군사경찰에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민간경찰은 군사경찰로부터 통보받은 범죄 인지의 경위, 근거, 관련 기록을 검토하고 대상자들을 수사한 뒤에 검찰 송치 여부를 판단한다.
이 날 유가족에게 설명된 수사 결과는 대략 이렇다. 지휘관들의 작전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장병들이 현장에 투입됨에 따라 임무수행에 필요한 로프, 구명조끼 등을 휴대하지 못했고, 지휘관들은 안전에 관한 지휘관심을 소홀히 하여 실질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전을 실시하였으며, 사단장의 작전지도 중 지적사항 등으로 예하 지휘관이 지휘부담을 느껴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하게 되어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병대수사단은 해병 1사단장 임성근 소장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민간경찰에 수사의뢰할 예정이었다.
그에 앞선 7월 28일 오전,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사령관에게 똑같은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7월 30일 일요일 오전에는 해군참모총장에게, 오후에는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했다.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모두 보고를 받은 뒤 보고서에 확인 서명을 했다.
이들이 수사 결과를 보고받을 수 있는 건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라 군사경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휘·감독권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조는 지휘관이 군사경찰을 지휘·감독할 때에는 공정한 수사를 위해 직무 수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과거에 헌병으로 불리던 군사경찰은 수사 외에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법령은 군사경찰의 여러 임무 중 범죄 수사에 관한 사항만 특별히 꼬집어 독립성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법경찰관이 아닌 군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해 함부로 범죄 수사에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국방부장관 등 군 지휘관들은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을 권한은 있지만 그렇다고 수사 방향을 뒤틀거나, 절차에 간섭하거나, 수사 대상자를 선별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에 개입할 권한은 없다. 만약 지휘관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개입한다면 이는 명백히 법령을 위반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여하간 별일 없이 보고를 마친 박 대령은 부대로 복귀해 다음 날 진행될 수사 결과 언론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날 오후 무렵 해병대사령부로부터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수사결과보고서를 보내주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 박 대령의 설명이다. 종결되지 않은 사건의 수사 기록은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기밀이다. 대통령실이 검찰, 경찰에 개별 사건 수사 기록을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군대도 마찬가지다.
결과보고서 제출을 거부하자 국가안보실은 언론 브리핑자료를 요구했고, 이에 사단장 등 8명을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긴 브리핑 자료를 보냈다고 박 대령은 밝혔다.
국방부의 적반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