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회흐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배불뚝이를 다다 식칼로 베어내자>(1919-20)
Staatliche Museen
회흐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배불뚝이를 다다 식칼로 베어내자>(1919)는 베를린 다다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는 역시나 시대의 주요 매체인 신문과 잡지가 '사실'로 전달하는 사진 이미지들을 재조합해 새로운 화면을 만들었다. '포토몽타주(photomontage)'라고 일컫는 이 미술기법은 회흐가 통렬한 사회비판의 도구로 고안한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화면은 정치인, 미술가, 문화계 인사들이 기계, 건물, 지도, 군중 이미지 등과 혼잡스럽게 뒤섞여 있고, 그 사이사이 텍스트가 중첩된다.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크게 보면 '다다'와 '반 다다(anti-Dada)'의 세계가 대치하는 구조다.
우선 '다다'의 세계는 베를린 다다의 주요 멤버들과 그들의 사상적 뿌리가 되는 인물들로 채워진다. 조지 그로스와 존 하트필드 형제, 라울 하우스만, 요하네스 바더 등이 마르크스와 레닌, 그리고 코민테른 독일 대표였던 카를 라데크와 같은 극좌파와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여기에 독일공산당(KPD)을 창안한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다다를 선전하는 모습으로 더해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뜻밖의 인물로 보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전쟁과 억압을 맹렬히 비판했던 평화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다.
한편 '반 다다'의 세계는 위의 인물들을 탄압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만든 주요 인사들로 가득하다. 프로이센 제국의 마지막 군주 카이저 빌헬름 2세를 중심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핵심 인사들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초대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 총사령관, 구스타프 노스케 내무장관 등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이렇게 보면 베를린 다다는 전쟁에 책임이 있는 지배권력과 싸우는 혁명 세력이다. 그런데 회흐에게 혁명의 대상은 정치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 전복을 꾀하고 혁명을 부르짖는 주체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러한 그의 비판적 입장은 그가 활용한 여성 이미지에서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