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히지 말아주세요!'라는 주의 문구가 적힌 상자
구교형
누구나 자기 물건이 소중히 다뤄지길 바라는 마음은 있을 것이고 가급적 잘 배송하고픈 마음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택배라는 배송방식 자체가 한 기사가 다양한 물건을 한꺼번에 모아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기에 무작위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정말 깨지는 물건만 아니면 굳이 그렇게 쓰지 않아도, 택배기사들은 물건을 보거나 들어만 봐도 던져도 되는지, 눕혀도 되는지 거의 안다. 그러나 정말 문제가 되지 않으면 쌓는 과정에서 눕히지 말라 써도 눕히고, 던지지 말라 써도 던지게 된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린다.
어떤 분은 주문한 물건이 녹으면 안 되니 특별히 빨리 배송해 달라고 전화를 주시기도 하지만 여름철 배송의 ⅓~¼은 냉동식품이기에 그렇게 분류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린다. 더구나 택배차는 냉동차가 아니기에 잘 냉동한 물건도 녹고 물이 흐르고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취급을 원한다면 택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가장 마음 상하는 것은 '형님! 이게 오늘 살아서 갈 수 있을까요?'라는 문구와 함께 식물을 보내는 것이다. 애교로 웃으라고 쓴 문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우리가 취급을 잘못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비꼬는 것 같아 같이 웃어주기는 쉽지 않다.
운전하다 보면 '승질 더러운 아이가 타고 있어요', '소중한 내 새끼가 타고 있다'는 식의 경고 문구를 볼 때 느끼는 반발심과 비슷하다. 드리고 싶은 말은 소중한 물품은 택배로 보내지 말아 주십사 하는 것이다. 문구를 적을 수는 있지만 문구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택배는 모든 물품을 정말 무작위로 쌓아 올려 배송하는 방식이다.
시스템도, 의식도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기사도 사람이기에 가끔 잘못 배송한다. 잘못 배송하면 어떻게 찾을까? 물건이 없다는 연락을 받으면 초보 때는 머리만 하얘질 뿐,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고객이나 고객센터의 독촉 전화를 받으며 입만 바짝 탈뿐 우물쭈물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조금만 기억을 되짚어 보거나 추적해 보면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가닥이 잡혀 별로 걱정도 안 한다.
물건을 정리하며 동 호수나 비슷한 건물 이름을 잘못 적었을 때는 의심나는 곳을 찾아가면 영락없이 거기 있다. 배송하기에는 아파트가 쉽지만 잘못 배송했을 경우 물건을 찾기엔 오히려 동네 일반주택이 훨씬 쉽다. 아파트나 건물은 이름과 동 호수만 보고 기계적으로 놓고 오는 것이라 숫자 하나만 틀려도 엉뚱한 데 놓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주택은 집 모양새, 위치, 가옥구조 등이 다 달라 경력이 쌓이면 오늘, 어제, 그제 그곳을 갔는지 안 갔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거의 다 기억난다. 그래서 못 찾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웬만한 건물은 CCTV가 설치되어 있고, 그렇지 않아도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도난 사고를 요즘에는 거의 보기 힘들다. 참, 놀라운 성숙함이다.
물론 그래도 끝까지 못 찾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모든 기사는 계약과 더불어 차 사고와 물품 분실에 대비한 보험을 자동으로 들고 있다. 그래서 물품 배상을 할 경우에도 가격의 일부만 부담하게 된다. 다행한 일이다.
여러모로 택배기사가 배송에만 전념할 수 있게 시스템도, 의식도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감사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개선하고 발전해야 할 다양한 영역들이 있지만, 우리 국민의 민도와 시민의 성숙함을 보면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하겠다. 무더위에 모두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한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22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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