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출퇴근하는 택배 대리점이 있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수출의 다리 앞 도로
구교형
처음 택배 배송을 시작해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늘 맴도는 구역이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을 비롯한 옛 구로공단 주변이다. 나도 서울 출신으로 서울 성내동과 천호동, 경기도 성남과 광주 등 주로 남동쪽에서 성장했다. 결혼 후 경기도 광명, 안양 쪽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안양천 건너 구로동 쪽은 특별한 연고가 없어 지나다니면서도 큰 관심이 없던 곳이었다.
지금은 매일 출퇴근하는 택배 대리점이 가산디지털단지 중심이자 이름에 역사가 묻어나는 '수출의 다리' 교각 아래 위치해 있고, 배송 구역은 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가리봉동이기에 그곳의 역사와 문화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오늘은 우리나라 수출 중심 성장 시대를 상징하던 그곳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국 경제개발 시대의 상징과 같이 여겨지던 '구로공단'이라는 이름도 역사 속에서 사라진 지 제법 오래되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새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국가 수출주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수출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서울을 대표하는 구로공단 3개 단지도 그런 목적으로 1965년에 착공해 1973년에 완공했다. 구로공단 주력상품은 당시 한국 자본과 기술력의 미약함으로 섬유와 봉제 등 의류 가공품이었다.
1960년대부터 농촌을 떠나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이주한 젊은이들이 공단지역 노동자로 일했다. 이들은 이름 없는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며 고된 노동을 견뎌 한국산업화와 수출입국의 토대를 놓았지만, 경제발전의 공로는 정치권과 재벌들에게 돌아갔다.
전태일 열사 분신을 거쳐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노조 운동을 통해 노동조건과 삶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요구들이 늘어났다. 1979년 YH무역 파업사건은 당시 대표적인 사건이다. 일부 진보적인 기독교계에서도 노동자들의 교육, 노조 운동 등을 돕기 위해 산업선교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한 구로공단의 뜨거운 열기는 1980년대까지 계속되지만, 세계 경제와 우리나라 경제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서서히 식어갔다. 영화 <구로 아리랑>(1989년, 이경영, 옥소리, 최민식 출연)과 <박하사탕>(2000년, 설경구, 문소리, 김여진 출연)은 구로공단과 가리봉 공단촌을 배경으로 그 시절 시대와 역사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민중가요 '사계' 역시 죽어라 미싱 돌려 만들어 낸 멋진 옷을 정작 자신들은 입어보지도 못하는 어린 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였다.
1.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2.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3.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4.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두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