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6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 겸 부총리
연합뉴스
"극히 이례적"
그런데 방한 목적이 강제징용 논의라고 하지만, 아소 다로 부총재가 실무 협의를 위해 방문한다고 보기는 당연히 힘들다. 그가 이 문제로 한국에 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다.
<산케이신문>보다 2시간 반 뒤에 나온 <도쿄신문> 기사 '자민당 아소 부총재 2일 방한, 징용공 둘러싸고 윤씨와 회담 조정(自民党の麻生副総裁、2日に訪韓 徴用工巡り尹氏と会談調整)'은 복수의 정부 및 자민당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방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당 중진인 아소 씨가 방한해서 정부 간의 현안 해결을 향한 역할을 짊어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라고 평했다.
아소 다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보다 13년 빠른 1940년에 출생했다. 일제 침략전쟁 중에 출생했기 때문에, 할아버지 기업인 아소탄광이 한국인 약 8천 명을 강제징용해 노예노동을 시킬 당시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33세 때인 1973년부터 6년 동안은 아소그룹의 핵심 사업체인 아소시멘트 사장을 역임했다. 전범기업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소 다로는 기시다 자민당 총재보다 직급이 낮지만, 나이도 많을 뿐 아니라 경력도 훨씬 많다. 아소시멘트 사장을 그만둔 1979년부터 국회의원선거에서 14선을 기록한 아소는 경제기획청 장관(1998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책위 의장, 2001~2003), 외무대신(2005~2007), 총리 겸 자민당 총재(2008~2009), 부총리 겸 재무대신(2012~2021) 등을 역임했다.
여기다가 아베 신조 피격 당시 국회의원 49명을 보유한 제3파벌의 리더다. 당시 기시다파는 아소파보다 다섯 명 적었다. 소수파 리더인 기시다 총리는 아소파의 협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시다가 아소에게 한국에 가서 구체적 협의를 하라고 심부름을 시킬 처지에 있지는 않다. 일본 언론들은 그가 징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협상을 염두에 두고 오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논의할 목적으로 방한한다고도 볼 수 없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공식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두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행보로 봤을 때 윤 정부 역시 기시다 내각과 마찬가지로 '전범기업의 한국 자산이 법원 강제집행을 통해 현금화돼서는 안 된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현금화는 절대 안 된다는 점에 관한 한 두 정부의 기본 태도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미쓰비시 및 일본제철 자산의 현금화 문제는 한국 사법부 소관이지만, 한·일 두 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을 견제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 역시 방침을 명확하게 표명하지 않고 두 정부의 직·간접적 압력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 정부는 전범기업의 불법행위 책임을 한국이 대신 부담하는 묘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압류된 자산이 현금화되지 않도록 하되 전범기업이 어느 정도로 성의 표시를 하도록 할지 고민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언론들은 아소 다로가 현금화는 안 된다는 뜻을 재차 강조하기 위해 방한한다고 하지만, 윤 정부 역시 이미 그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방한 목적이 현금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고는 볼 수 없다. 구체적인 실무 협상을 위한 방한도 아니고 '현금화는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기 위한 방한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82세의 아소 다로 부총재가 격에 맞지 않게 방한하는 것은 한국에 관한 입장을 정리하기 전에 외무성 차원이 아닌 자민당 차원에서 윤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반발 여론 때문에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윤 정부가 '현금화 반대' 및 '일본 기업 보호'의 의지가 확고한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아소 다로가 현금화는 안 된다는 일본의 방침을 재차 강조할 것이라는 일본 보도는 그런 의미로 이해되는 게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