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MBC는 "일본이 유엔의 인권 규약을 잘 이행했는지 심의받는 자리에서 위안부 피해자 보상과 공식 사과 문제 등에 진척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2년 전 답변을 되풀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MBC
이처럼 일본 측은 할 일을 다 했다는 취지로 답변했지만, 문제 해결의 요체인 사과와 배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 합의에 즈음한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는 공식 성명이 아닌 전화 통화로 이뤄졌다. "어제 일로 모두 끝이니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이 <산케이신문>에 보도되면서 그나마 그 사과도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진심을 담지 않은 사과라는 점이 그런 식으로 드러났다.
또 불법행위 인정을 전제로 하는 배상금 지급은 2015년 합의로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이 지급하겠다는 금전은 위로금이나 지원금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이런 명목으로 돈을 주고받으면 애당초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하려 한다는 것은 일본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책임을 면하는 쪽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대표단은 건성으로 답변하는 모양새지만, 일본이 유엔 무대에서 이 문제를 계속 답변해야 하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대충 봉합하려 하는 한일 양국 정부 앞에 피해자나 한국 국민 외에 또 다른 산이 우뚝 서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유엔 등의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 건성이든 아니든 일본이 계속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느끼게 된다.
일본은 1979년에 발효된 자유권협약과 관련해서는 위안부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고 2020년에도 답변했다. 그래 놓고도 2022년에 동일한 답변을 또다시 해야 했다는 것은 일본의 답변을 강제하는 힘이 작동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일 양국 차원을 떠나 이미 세계 문제가 되어 있는 위안부 문제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유엔 인권기구인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일본 정부에 처음 권고한 시점은 1994년이다. 피해자 김학순의 최초 증언이 있은 1991년 8월 14일로부터 얼마 뒤의 일이다. 이 위원회는 1994년 1월부터 위안부 문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한일 정부가 외면하는 문제를 수면 위로 계속 끌어올리는 힘이 국제사회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인들은 당사자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위안부 피해를 전시 성폭력으로 과감하게 부르지는 못한다. 그렇게 부르는 일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그런 표현을 삼가게 된다. 일제가 커다란 잘못을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끔찍한 느낌을 주는 단어의 사용을 주저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지난 세기부터 전시 성폭력이란 용어를 '주저 없이' 사용했다. 1998년 8월 21일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지적한 게이 맥두걸 특별보고관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문에서 이 용어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결의문에서 인권소위는 전시 성폭력을 비판하고 이것의 처벌을 위한 입법을 각국에 촉구했다.
유엔 인권소위가 전시 성폭력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배려하지 않아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짚고 최선의 해법을 찾자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1세기 들어 위안부 문제를 '범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 관한 2009년 제6차 정기심사에서 이 문제를 범죄로 지칭했다.
인류 보편적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