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9일(현지시간)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워싱턴DC에 있는 의회 의사당에서 퇴직연금 투자시 ESG 요소를 고려하도록 하는 바이든 행정규칙을 막기 위한 결의안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ESG를 진보 담론으로 인식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미국 사회에서 기후변화와 불평등, 빈곤 등 모든 환경‧사회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ESG 이슈는 진영 투쟁의 최전선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정치 역학 구도에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ESG 행동은 전통적 보수주의자 시각에서는 '비즈니스의 정치화'이다. 즉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전략가인 앤드류 윈스턴은 ESG를 공격하는 부류를 다음과 같이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 기득권 전통주의자(ESG에 중점, 악의) ▲ 사회적 보수주의자(지속가능성에 초점, 선의) ▲ 진정한 비평가(ESG 초점, 선의) ▲ 정치적 착취자(지속가능성 중점, 악의).
이 중에서 기득권 전통주의자와 정치적 착취자가 ESG에 대한 악의적 공격자이며, 반 ESG 캠페인 주도자다. ESG 투자에서 배제되거나 기후대응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화석연료 및 총기 제조 기업들, 주주 우선주의 및 단기 이익 투자자들은 기득권 전통주의자에 속한다. 공화당 정치인, 인종‧성 차별주의자들은 정치적 착취자들이다.
반 ESG 캠페인은 반 ESG 입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기후위기 컨설팅 회사인 플레이아데스 전략(Pleiades Strategy)은 반 ESG 법안이 "화석연료 기업, 총기 제조업체 등을 선호하는 고위험 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기후변화, DEI(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노동자 권리 등 비즈니스 관련 주제에 대한 기업의 참여를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분석한다.
플레이아데스 전략이 발간한 '2024 반 ESG 주 법률 전망'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 1월 말까지 미국 38개 주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책임 있는 금융'을 공격하는 318개의 법안을 제출했고, 17개 주에서 37개의 반 ESG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가결된 대다수 법안은 기업, 노동, 재무 담당자, 환경론자들의 강한 반대로 법안의 범위가 축소됐다.
세계적 로펌인 모건루이스는 ESG와 관련한 다양한 규제(반 ESG 규제, 친 ESG 규제)들을 다음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 보이콧 입법 금지 ▲ ESG 기반 차별 금지 ▲ ESG 고려 금지 ▲ ESG 고려 요구 ▲ ESG에 기반하여 투자를 금지. 이중 앞의 3가지 유형은 반 ESG 규제고 뒤 2가지 유형은 친 ESG 규제다.
반 ESG 법안의 핵심 대상은 '금융기관'이다. 금융기관이 ESG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넷제로(Net Zero) 관련 금융 이니셔티브인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 이 중에서 넷제로 보험연합(NZIA)은 공화당 집권 주 정부 법무장관들과 정치인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합의 활동을 미 연방 반독점법 위반 가능성으로 압박하자 30개에 달하던 회원사는 11개로 대폭 줄었다. 창립 멤버들이 대거 이탈할 정도였다.
침묵과 탈퇴, ESG 포기 아니다
반 ESG 캠페인으로 인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침묵과 이니셔티브 탈퇴 등은 ESG 회의론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해석이다. GFANZ를 탈퇴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 넷제로 달성을 위한 정책과 활동에는 변함이 없다고 천명한다.
블랙록 래리 핑크의 'ESG 용어 사용 전면 중단'도 사실 'ESG의 정치화'로 인한 논란 피하기다. 공화당 집권 주든, 민주당 집권 주든 미국의 모든 주가 블랙록의 큰 고객이며, 모든 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적자금은 포기할 수 없는 비즈니스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블랙록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모든 글로벌 금융기관에도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결정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일 뿐 ESG 회의론 때문이 아니다. ESG를 내용상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제로 투자분석 플랫폼인 모닝스타 다이렉트에 따르면, 블랙록의 ESG 운용 자산은 부진한 수익률, 반 ESG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2022년 말부터 2023년 말까지 총 53% 증가했다. 또 <블룸버그>에 따르면 투자은행, 자산운용사 등의 펀드매니저 및 리스크 관리 책임자를 대상으로 한 ESG 데이터 예산 설문조사에서, 반 ESG의 영향권인 북미 금융회사의 응답자가 거의 절반임에도 92%가 ESG 데이터 비용 증가를 예상했다. 이는 ESG 회의론에 대한 좋은 반박 근거다.
ESG 회의론은 아직 미국에 한정될 뿐 전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 유럽에서 ESG는 여전히 견고하고, 아시아 등 그 외의 지역에서 ESG는 확산 중이다. 2023년 4분기에 미국, 일본에서 있었던 ESG 펀드런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ESG 펀드의 순유입은 증가했다. 또 ESG 관련 일부 법‧제도‧정책에 대한 반대도 있지만 미국의 반 ESG 현상과는 결이 다르다. ESG에 대한 인정을 토대로 적용 대상과 시기와 강도 등이 문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ESG 생태계 위해 '기본법' 제정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