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마이크로텍 해고노동자가 지난 3월 5일 아침 8시경 부산시 부전동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건강돌봄 지원사업단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삶을 바치는 이들이 있다.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다 해고된 노동자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 현장에서 기록하고 행동하는 공익활동가들, 한국 사회의 인권은 이들 덕에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과연 건강한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2023 부산지역 해고노동자 및 공익활동가 건강돌봄 지원사업'은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했다. 해고노동자의 무너진 일상을 버티게 하고 공익활동가의 반복되는 소진을 막아줄 '건강돌봄'이 절실함에도 이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자원과 지원체계는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그마저도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지역의 활동가 94명에게 몸 검진, 마음 검진, 치과 진료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을 소개하며 사업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한 이후 해고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를 참혹하게 경험했다. 2013년 4월 부산에서 해고노동자들이 더는 죽지 않고 살아서 싸울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뜻이 모여 '부산 지역사회 연대기금 만원의 연대(만원의 연대)'가 발족했다. 만원의 연대는 월 1만 원씩 내는 후원인들의 후원금으로 2013년 5월부터 지금까지 4개 사업장 해고노동자들에게 월 100만 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그 100만 원조차 같이 해고된 여럿이 나눠 쓰는 처지이다 보니 해고노동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엄두를 낼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실상을 잘 알고 있는 만원의 연대가 '건강돌봄 지원사업'의 대상자인 부산의 해고노동자들을 추천하고 모집했다.
사회적 약자와 긴밀하게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는 공익활동가들의 현실 또한 녹록지 않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취약한 재정 기반으로 인해 활동가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활동비와 휴식 없는 삶, 불투명한 미래'라는 악조건 속에서 열정과 헌신을 요구받고 있다. 아울러 폭력피해·인권침해 당사자들의 고통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당사자의 안위를 우선하게 되는 현실 때문에 고립과 소진을 경험하고 있다.
2022년 2월 부산에서는 단체와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인 '부산인권플랫폼 파랑'이 창립됐다. 그해 진행한 '2022 부산지역 인권단체 및 인권활동가 현황조사'에서 62개 단체가 '심리적·신체적 건강 지원'과 '의료비 지원'을 파랑에 바란다고 응답한 것을 보면 부산에 활동가의 건강돌봄 지원체계가 부족함을 알 수 있다. 파랑은 건강돌봄 지원사업의 또 다른 대상자인 공익활동가들을 모집하고 이 사업의 실무를 맡았다.
2014년부터 운영된 한국여성재단의 '여성활동가 대상 치과진료'에서 부산지역 활동가가 지원받은 것은 2022년 1건이 최초 사례였다. 건강돌봄 지원사업을 계획할 때 치과 진료는 가장 필요한 항목으로 파악됐지만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게 되는 1순위 항목이기도 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부산경남지부'는 투쟁사업장으로 '찾아가는 구강검진'을 통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해고노동자들을 발굴하고, 총 40명의 대상자를 부산양산지역 치과 19곳에 배정하여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연계했다.
만원의 연대, 파랑, 그리고 건치가 함께 건강돌봄 지원사업단을 구성했고, 몸 검진과 마음 검진을 맡아줄 기관을 찾았다. 그리하여 한국건강관리협회 부산광역시 서부지부가 1인당 100만 원 상당의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마주심리상담소가 마음검진에 이어 추가 심리상담을 지원하며 협력 기관으로 참여했다.
진단받고도 비용 부담으로 치료 포기 적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