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등 9개 시민단체가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화빈
이 전대미문의 상황에 대해 다층적인 분석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음모론적 세계관에 기반하여 집단행동을 불사하는 젊은 남자들의 등장은 역사 속에서 꽤 꾸준히 반복되어 왔다. 다만 누구나 쉽게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환경을 갖춘 온라인 시대에 왜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망상에 더욱 쉽게 빠지는지는 질문할만 하다. 그리고 지역적인 특수성을 짚자면 왜 한국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남성 성기의 크기'를 놓고 이런 해프닝이 발생했는지 궁금하다.
여느 사회 현상에 대해서 그렇듯 이 또한 진지하게 이야기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번 해프닝은 누군가의 노동권과 안전할 권리를 위협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기는 한데, 발단과 전개를 살피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 '성기', '크기'라는 단어를 진지한 표정으로 반복하며 이 사태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하고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항의를 받은 기업의 반응이다. 2년 전 발생했던 '집게손 사태'에 대한 회사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하고 이미지를 수정하거나 혹은 무시하거나. 결론적으로 두 부류의 기업에게 모두 별일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의 기업들은 애꿎은 손가락 이미지를 수정하고 아마 본인들도 이해가 가지 않을 사과문을 쓰느라 꽤나 고생을 했을 것이다.
집게손에 대한 항의가 떠들썩했던 것과는 별개로 이는 온라인의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지역과 계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분노도 아니었다. 여기에 앞서 언급했듯 이 논란은 지극히 지엽적인 문화와 심지어 어느 정도의 망상에 기반했다. 항의가 운동으로 발전될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했고 당연히 대중을 설득하여 광범위한 공분으로 발전시킬 여지도 없었다.
과연 그것이 최선의 대응이었을까
2년 전의 상황에서 기업들이 배운 게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가급적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으려 하고 일단 문제 제기가 있다면 자세를 낮추는 것이 위기를 예방하려는 기업들의 태도인 건 잘 알겠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이들이 '불편하셨다니 죄송하다', '문제를 검토해보겠다'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면 아마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건 보통 기업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이니까.
하지만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기업 넥슨은 갑자기 자사의 게임에 비슷한 손 모양이 등장하는지 모조리 검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심지어 문제로 지목된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디렉터는 갑자기 긴급 생방송을 진행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런 문화를 몰래 드러내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까지 한다고?"
기업의 모든 행보와 발표하는 메시지는 회사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그건 자기 일을 잘할 때뿐만이 아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포함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빗발친 '집게손은 남성혐오의 상징'이라는 주장은 그 근거나 내용이 진지하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망한 수준의 것이었다.
물론 그 항의를 진지하게 취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내용에 대뜸 동의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이 황당무계한 항의를 벌인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대하고도 그런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능할까. 한국만이 아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서 전 세계가 다 안다. 이미 작금의 '집게손 사태'는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런 사람들이 넥슨이 아무리 거창하게 회사의 목표와 비전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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