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을 기다리는 베스트블레테렌 트라피스트 맥주들
윤한샘
만약 운 좋게 수도원을 방문한다 할지라도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도 없다. 수량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은 6개 들이 한 박스만 살 수 있고, 심지어 현지인들도 24병 한 세트만 허락된다. 온라인을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으며 재판매는 금지되어 있다.
물론 이 맥주가 단순히 희귀성만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베스트블레테렌 12는 수년 전부터 주요 미국 맥주 평점 사이트에서 모두 100점을 맞으며 최고의 맥주로 칭송받고 있다. 2012년 베스트블레테렌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예가 미국에서 있었다. 수도원 지붕 공사 자금을 위해 한시적으로 베스트블레테렌 12 6병 세트를 미국에 판매했는데, 24시간이 되지 않아 준비된 1만 5천 세트가 모두 팔려버린 것이다. 가격은 무려 84.99달러(약 11만 원)였다.
어떻게 수입됐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도 잠깐 보였던 적이 있다. 330ml 한 병에 무려 5만 6000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일 만한 가격이었지만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구매했다. 아니, 벨기에 가는 비용보다는 훨씬 더 저렴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런 일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희귀한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두렵기까지 하다. 이후 가격이 2만 4000원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베스트블레테렌 12는 언제나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맥주였다.
이런 까닭으로 자연스럽게 성 식스 투스 수도원은 이번 여행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베스트블레테렌을 다녀온 사람들의 무용담은 기대를 더욱 부추겼다. 인자한 미소를 띤 늙은 수도사가 수도원에서만 허락된 신비의 맥주를 건네는 상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로망이었다.
산산조각 난 로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