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조각칼로 새긴 글자, 누가 봐도 사람인이 아니라 시옷이다.
노일영
서까래를 대충 다듬어도 될 텐데, 옹이 하나하나까지 그라인더로 갈아 내며 형태를 살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날씨가 싸늘해지며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데 말이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서까래만 바라보며 살 것도 아닌데 그깟 옹이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이구, 이번 예술의 주제는 서까래가 아니라 옹이구만. 옹이의 형태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느라 고생이 많아. 흙집을 짓는 건지 예술을 하는 건지."
"건축이 예술이잖아. 그리고 여기 책에 보면 옹이를 잘 살리면 훨씬 보기에 좋다고 그러잖아. 그래서···."
'건축이 예술이라서 흙벽을 쌓는 동안 사람을 그렇게 예술적으로 잘도 갈구셨구만.' 남편은 흙집 관련 책을 3번이나 읽었으면서도, 집 짓는 현장에다 그 책을 놔두고 가끔씩 읽어가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비꼬아도 남편은 실실 웃으며 대꾸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다.
어쩌면 남편은 고지식한 게 아니라 자신이 '똥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의 손을 믿을 수 없어서 오직 책에만 의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그건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이 서까래가 모이는 통에다 조각을 하려고 한 것인데, 책에 조각을 권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며 남편은 기어코 조각칼을 들려고 했다. 장식적인 요소라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남편은 믿을 수 없는 그 손으로 조각을 시작하고 말았다.
양각한 글자에 먹물까지 입힌다고 반나절이나 허비했다. 남편이 새긴 글자는 내가 보기에 시옷(ㅅ)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시옷이 뭐냐고, 흙집이니까 히읗(ㅎ)을 조각하는 게 맞지 않나?"
"사람인(人) 자를 쓴 건데?"
참지 못하고 깔깔거리며 나는 박수까지 마구 쳤고, 남편도 나를 따라 낄낄거렸다.
"이건 누가 봐도 시옷이라니까. 진짜 웃긴다, 사람인 자도 제대로 못 쓰냐?"
"뭐 그러면 사람 할 때 시옷이라고 하면 되지."
내가 이 정도로 깐죽거리면 분명히 삐쳤을 남편인데,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그래, 흙벽 쌓으며 쌓인 마음의 벽은 이제 무너뜨리는 걸로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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