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림수진
"뚱뚱이네 옆집."
우리 마을에서 누군가 우리 집 주소를 물을 때 가장 간결하고 쉽게 통하는 방법이다. 내가 굳이 그렇게 답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물음에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 집 주소를 대주기도 한다. 뚱뚱이네 옆집이라고.
수년 전 마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나를 뚱뚱이네 옆집 사람이라 불렀다. 마을이 생긴 이래 3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동양인이 들어왔으니 우리 집이나 나의 택호는 '아시아댁' 혹은 '한국댁'이 되었어야 할 것이나 엉뚱하게도 '뚱뚱이네 옆집댁'이 되어버렸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집 공식 지번 대신 어느 샌가 나도 '뚱뚱이네 옆집'을 우리 집 주소로 쓰고 있다. 가겟집에 외상을 달 때도 뚱뚱이네 옆집이고 GPS에 잡히지 않는 우리 집을 찾아 도시로부터 택배 차량이 들어올 때도 기사에게 마을 사람 아무에게나 뚱뚱이네 옆집을 물으시라 청한다.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뚱뚱이네 옆집 사람으로 칭한다.
뚱뚱이의 정체
마을에서 그토록 유명한 뚱뚱이는 우리 옆집 할머니다. 뚱뚱이, 아무리 별명이라지만 한국에선 누군가에게 섣불리 붙이고 부르기 어려운 별명이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선 뚱뚱이라 불리는 사람이나 뚱뚱이라 부르는 사람이나 수십 년 그렇게 불러온 것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어느 날 할머니께 여쭈었다. 남들이 뚱뚱하지도 않은 당신을 뚱뚱이라 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냐고.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그게 뭐 기분 나쁠 일이냐고 오히려 내게 물었다. 당신의 진짜 이름은 당신에게도 쑥스럽다는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Luz(루스, 빛)라는 할머니의 진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우리 마을에서 오직 '뚱뚱이네 옆집댁'으로 통하는 나뿐이다. 당신의 남편도, 자그마치 열 네 명이나 되는 당신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그녀를 뚱뚱이라 부른다. 그러니 내가 어쩌다 Luz라는 이름을 대면 열이면 열, 그가 누구냐고 내게 묻는다. '뚱뚱이'라고 거듭 말해줘야 내가 말하는 그 사람이 우리 옆집 할머니임을 알아차린다.
문제는(물론 나 혼자 생각하는 문제겠으나), 우리 옆집 할머니가 전혀 뚱뚱하지 않다는데 있다. 그런데도 뚱뚱이라 불리는 이유를 굳이 짐작하자면, 할머니가 태어났을 때 엄청 우량아였다는 사실뿐. 자그마치 반세기 훨씬 전의 일이다. 할머니가 여전히 뚱뚱이로 불리는 유일한 추정의 근거로, 그 댁 마루에는 할머니가 첫 돌 무렵 엄청난 체구를 자랑하며 찍은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에 등극한 멕시코의 비만율이 설명하듯, 내가 사는 이 마을에도 진정으로 뚱뚱한 사람들이 차고도 넘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우리 옆집 할머니를 제치고 뚱뚱이라 불리지 않는다. 아마 우리 할머니의 뚱뚱이 별명이 갖는 오리지널리티는 제법 터를 깊게 다진 듯하다.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묘비명에도 '뚱뚱이의 무덤'이라고 적히지 않을까 은근 걱정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