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대 20년을 간토대학살 진상규명에 매달린 김종수대표천안 아우내 동산에서 그를 만났다.
민병래
김종수는 2006년 '아힘나'(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나라) 평화캠프를 도쿄에서 주최할 때 강연자로 온 야끼가야타에코 할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열 살 때인 1923년 조선인 청년이 공동묘지로 끌려가 소나무에 묶였습니다. 눈이 가려지고 총살될 때 '아이고, 아이고' 했지요. 너무 가슴이 아파 울면서 집으로 돌아 갔어요"라고 그때 기억을 들려줬다.
그녀는 일본 전역에서 조선인학살을 증언해왔는데 이 강연은 김종수를 사로잡았다. 사실 그는 간토라는 지역이 어딘지도 몰랐고 모두 유언비어에서 비롯된 일로만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김종수의 관심은 온통 '간토 조선인 학살' 문제였다.
2007년 5월,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에서 '간토 학살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생생한 진실을 담은 사진들에 넋을 잃었다. 김종수는 박물관장 송부자에게 "한국에서 전시할 테니 이 전시물을 빌려달라"고 떼를 썼다. 박물관 이사회는 듣도 보도 못한 김종수였지만 긴 회의 끝에 그의 진정성을 믿고 대여를 결정했다.
김종수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대표간사 유기홍 의원)'의 도움으로 2007년 9월 국회에서 '간토 학살 전시회'와 간토 조선인 학살 연구자인 재일교포 강덕상 교수의 강연회를 열었다. 이 행사가 계기가 되어 2007년 11월, 도쿄에서 '간토조선인 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아래 시민연대)가 결성되었고 김종수는 한국대표를 맡았다.
이후 그와 '시민연대'는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알려나가는 데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김종수와 시민연대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이 사건을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다.
일본민중의 불만을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돌린 일본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