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식 <백악춘효> 여름 작(왼쪽)과 가을 작(오른쪽)
황정수
가을 날 맑은 하늘을 보며 광화문에서 백악을 반듯이 바라보면 조선 마지막 화원인 심전(心田) 안중식(安仲植, 1861-1919)의 작품 '백악춘효(白岳春曉)'가 떠오른다.
조선시대에서 근대기를 이르는 동안에 이곳 광화문과 백악을 응시하며 그린 그림으로는 안중식의 작품이 단연 압도한다. 사실 안중식의 작품 외에는 광화문과 백악을 그린 작품이 거의 없다. 이렇게 된 되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조선시대에 임금이 사는 궁궐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 전기 왕권이 강하던 시절에 궁궐을 소재로 사적인 작품을 그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는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00년간 유허로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사실적인 풍경을 그리는 일이 많아졌으나, 경복궁은 고종 때 와서야 중건되었으니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후기 강희언이 그린 '북궐조무'같은 그림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곳이 경복궁인지 창덕궁인지 확실하지 않고, 안중식 작품의 넓은 시야와 규모를 따르지 못한다. 이러한 안중식의 솜씨는 그의 타고난 필력의 우수함도 있지만 중국에 영선사를 따라 가서 일 년 동안 북경에 머무르며 경험한 것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중국에 머무르며 자금성 등 고궁의 모습을 보며 궁궐을 그리는 회화적 기법에 눈을 떴을 것이다.
안중식은 '백악춘효'라는 제목의 작품을 1915년 한 해에 두 점을 그린다. 한 점은 여름에 그리고, 가을에 또 한 점을 그린다. 두 점 모두 다른 계절에 그렸는데, 작품 소재는 같은 '봄 풍경'을 그린 것이다. 백악을 배경으로 광화문을 바라보며 봄날의 경복궁 모습을 그렸다. 운무에 쌓인 궁궐의 모습이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게 한다. 장승업의 수제자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화려한 필치의 산수에 대한 해석이 명쾌하다.
또한 궁중 화원이 가져야 할 기본기가 충실하여 궁궐의 집채를 그린 표현이 좋고 각 소재들 간의 배치가 뛰어나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 두 작품 속에 묘사된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같은, 해에 같은 소재를 그렸는데도 작품의 구성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한 계절 차이인데도 다른 점이 있는 것은 그 사이에 궁궐 주변의 모습이 변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두드러진 것은 가을에 그린 작품 속에는 작품 전면에 배치된 해태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안중식의 실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신문물을 접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배운 그가 작품 속에 균형감을 잃게 할 정도의 중요한 소재를 빠뜨렸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는 당시 경복궁에 주변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을 그린 1915년에는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린 해이다. 일본과 조선이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 행사는 경복궁에서 열렸다. 행사를 위해 건물을 새로 짓고 기물들이 옮기는 일제의 만행이 저질러졌다. 필시 이 가을에 일본은 행사를 위해 해태를 옮기는 일을 했었을 것이다.
안중식의 입장에서 조국의 궁궐이 파헤쳐지는 만행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슬 퍼런 제국의 힘 앞에 자신의 뜻을 마음껏 드러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그림 한 구석에서나마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편으론 저물어가는 조국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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