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의 고리-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N'편의 한 장면
SBS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게 피해자의 회복엔 가장 좋은 게 맞아요. 근데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려면 이 사회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국민이 요구를 하잖아요. 한국에서는 제대로 처벌을 못 받을 게 빤하니 미국으로 보내라. 사실 이거 부끄러워야 하는 지점이거든요. 국민들이 한국사회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얘기잖아요." (<그것이 알고 싶다> '웰컴투비디오' 편 중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 활동가의 '뼈 때리는' 고언이다. 성범죄자들을 단죄하지 않는 한국사회에 기대감을 저버리는 피해자들은 그렇게 오늘도 절망하는 중이다.
N번방 사건을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 역시 "갓갓이 잡히고, 박사가 잡히고, 와치맨이 잡히고 주요 가해자들은 다 잡았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사실 지금도 그렇게 변한 건 없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23일 방송된 MBC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 - 성범죄의 무게'편 역시 그렇게 성범죄자들에게 관대한 판사들의 판결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명하고 있었다.
구하라, 그리고 오 판사
"잊혀졌던 구하라씨의 재판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n번방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최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A판사가 n번방 공범 이모군의 재판을 담당한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A판사의 과거 판결들도 속속들이 공개됐습니다.
배우 고 장자연 성추행 사건 무죄, 성노예 게임사건 집행유예 등 국민 법감정과 거리가 있는 판결들도 함께 화제가 됐습니다. n번방 재판 담당 A판사를 교체해 달라 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했고 결국 A판사 본인이 재배당을 요청해 마무리됐습니다." (< PD수첩> 한학수 PD)
지난 3월 'N번방 담당판사 오덕식을 판사자리에 반대, 자격박탈을 청원합니다'란 청와대 국민청원은 시작 나흘 만에 40만 넘게 동의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미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오 판사에 대한 비판과 성토가 이어져왔고,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그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며 전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다.
어디 오 판사뿐이겠는가. < PD수첩 >은 "지난 10년간 전체 성범죄 판결의 41.4%는 집행유예, 결론적으로 71.6%는 실형을 면했"다고 꼬집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웰컴투 비디오'의 공범들도, N번방 사건의 가담자들도, 여타 다른 성범죄 가해자들 역시 이러한 한국 법원의 관대한 처벌을 알고 있고 기대하며 또 적절하게 대응한다.
합의는 기본이다. 그런데 원래 취지와 다르게 이 합의를 악용하는 가해자들이 부지기수다.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배우 강지환이 대표적이다. 그는 1심 이후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피해자들과 합의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