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
'태극기 휘날리며'가 14일 '실미도' 에 이어 한국영화 사상 2번째로 1000만 관객의 시대를 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미도’가 기록한 관객동원 신기록을 차례로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고 해외수출 계약 협상이 마무리되면 모두 100억원 이상의 해외수출 성과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강 감독의 전 작품인 ‘쉬리’가 99년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 치운 것처럼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역대 흥행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월 초에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인 두밀령 전투와 낙동강 방어선 전투신이 촬영된 경남 합천 황매산의 환경파괴 문제가 제기 됐고, 한나라당 김모 의원은 2월 19일 국회 법사위 사회-문화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공산군을 비난하지 않게 국민을 세뇌시키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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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용공논란

'태극기 휘날리며'에 드러난 남한 중심의 사고

▲ 대구역에서 진석과 진태가 징집되는 장면
김 의원은 영화에서 한미 동맹보다 중국과 북한의 동맹이 더 이상적으로 그려져 젊은이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를 용공적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오히려 우익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강제규 감독은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혹자는 내가 왜 줄곧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내가 분단 이데올로기에 자극 받아서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전쟁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내 생각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장르 영화에 대한 갈증이 계속 있었고 전쟁으로 인한 한국의 분단 현실은 리얼리티와 더불어 많은 흥밋거리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더없이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혹자들은 동기가 너무 상업적인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의 현실을 어깨에 짊어지고 거창한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사명감으로 이 영화를 기획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치부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간단한 동기(혹자들이 말하는 상업적인 동기)로 시작해서 만든 ‘태극기 휘날리며’는 거꾸로 분단의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만든 이로 하여금 또 보는 이로 하여금 역사적 현실과 사명을 조금이라도 느끼게끔 하고 있으니 말이다.”

[레이디 경향] 3월호, “잘 만들 자신 없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강제규”


인터뷰에서 강 감독은 “전쟁으로 인한 한국의 분단 현실은 리얼리티와 더불어 많은 흥밋거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전 작품인 ‘쉬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분단이라는 소재를 영화에 적절히 활용한다.

이번 영화에도 분단과 형제애를 소재로 그의 연출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강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역사적 현실, 분단 현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필자가 강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항상 아쉬운 점은 너무 남한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야비한 빨갱이 새끼들'

▲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느끼는 분단 현실, 북한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일까? 용공성을 지적한 김 의원의 주장과 달리, 필자는 이 영화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충분히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북한군의 민간인 학살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하면서 우익마을의 민간인을 죽이고 시체에 지뢰까지 설치한 장면이나, 마을 입구에 목매달아 놓은 시체들의 모습은 인민군에 대한 분노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심정적으로 국방군의 편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광기는 내 동료가, 동생이, 부모님이 내 눈 앞에서 다치고, 죽었을 때 일어난다. 상대방의 사상은 중요하지 않다. 6.25 전쟁에서 이념을 위해 싸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필자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는데, 특별히 중공군이 밀려내려올 때 인민군(의용군) 포로들이 돌변하여 국방군을 죽이고 인질로 잡는 장면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인민군을 학살하는 국방군에 대한 반감은 주로 진태에게 집중되고 여러 번의 학살시도는 대부분 진석의 행동으로 인해 무마된다. 그러나 우익마을의 지뢰 사건에서 촉발된 인민군에 대한 분노는 인민군 포로들이 진태 소대의 소대장을 죽이고, 다른 한 명을 외팔이로 만들면서 증폭된다.

이 방법은 관객의 감정을 몰아가는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야비한 빨갱이’를 그려내야 했을까?

필자는 적과 동지를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쉬운 전쟁을 그릴 때, 더구나 전쟁에서의 적이 같은 민족이고, 그 전쟁 이후 고착화된 분단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묘사할 때 어느 정도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극기…'에서 필자가 강 감독에게 아쉬운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것은 필자가 강제규 감독의 ‘쉬리’보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와 같다.

6.25 전쟁, 그리고 50년

8.15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 민족은 미군정 하에서 조금씩 분단되기 시작했다. 일제 시대 하에서, 좌우익 통일전선과는 거리가 멀었던 두 지도자가 38도선 이북 지역과 이남 지역의 지도자가 되면서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은 각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6.25 전쟁 이후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었다. 그리고 휴전 후, 50년이 훨씬 지났다.

독립 후 3년이나 지나서야 시작된 친일파 처벌 작업은 친일 지주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민당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장악한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함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5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의 요직은 친일파와 친일파의 후손들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과거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그들이 살아남을 길은 해방 직후의 “민족 대 반민족 구도”를 “좌우 대립구도”로 바꾸는 방법 밖에 없었다. 6.25는 그 연장선 상에서 일어났다. 이후 군사독재 하에서 반공 교육을 거치며 더욱 벌어진 남한과 북한 사이의 간극은 아직도 좁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업적으로 매우 뛰어난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그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다.
2004-03-17 13:5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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