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여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인형극, 고양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하래연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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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onestar720)등록 2024.10.21 17:53
올 래(來), 인연 연(聯). 하래연 작가의 이름은 스스로 개명한 것이다. 근래 길고양이를 챙겨주다가 같은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 그 분으로부터 집 근처 산책로 벚꽃길의 유래도 알게 됐다. 래연 작가는 산책하며 자연을 느낀다. 그의 발걸음은 운율이 된다. 운율에 이끌려 랩을 배우기도 했다. 랩은 순간의 감정을 자아내는 게 어쩐지 시와 닮았다. 어린 시절에는 힙합이 주류가 아니었기에 낯설었지만 지금도 열심히 작업 중이다. 작업물이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아직 쑥스럽다"며 웃는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는 인형극을,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는 고양이 투병기를 소재로 한다. 언뜻 달라 보이지만 두 책은 공통점이 있다.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를 인형극의 세계로 이끈 건 어린 시절에 읽은 슈토름의 동화 <인형 놀음장이 플레>였다. 동화책에 담겨 있던 컬러 삽화의 인형이 몽환적으로 다가왔었다. 2009년, 인형극 축제에 가기 시작했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에 담겨있는 샤를르빌 세계 인형극 축제뿐 아니라 국내의 춘천인형극제, 독립공연예술가네트워크 축제 등 찾아 인형극을 즐긴다.

하래연 작가의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왼쪽) 책은 현재 세계 인형극 학교 자료센터에도 놓여 있다.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는 여러 독자들로부터 고양이와 함께한 인증샷을 받기도 했다. ⓒ 하래연 작가 제공


내년에는 춘천에서 세계인형극축제가 열린다. '국제인형극연맹 유니마'에서 춘천을 유니마 총회 개최지로 선정하면서 세계인형극축제 또한 열린다. 래연 작가는 열흘간의 축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당장은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리는 예술인형축제를 즐길 예정이다. 특히나 올해 좋아하는 극단에서 신작을 올린다. 쇼케이스와 원작을 떠올리며 기대하고 있다.

하래연 작가와 동화 삽화 샤를르빌 세계인형극축제를 기록해둔 노트를 보고 있는 하래연 작가(왼쪽). 래연 작가가 보고 빠져든 <인형 놀음장이 플레>의 삽화(오른쪽)다. 그는 “동화책을 다시 구해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 왼쪽 한별 오른쪽 하래연 작가 제공

한국에서 인형극은 대중적이지 않은 분야예요. 인형극의 매력은 어떻게 찾았나요?
맞아요. 외국도 마찬가지예요. 어린이 만을 위한 연극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죠. 처음 본 건 대전 엑스포였어요. 그때 마침 대전에 살던 때라 놀러 갔었죠. 인형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봤어요. 순간 전율이 일었어요. 인형극을 볼 수 있는 다른 축제를 찾다가 춘천인형극제에 가기 시작했어요.. 대학원에서 프랑스 시인 랭보를 전공했고, 나중에 배낭여행 때 랭보의 고향인 샤를르빌에 갔다가 인형극 학교와 박물관을 봤어요. 그 후로 샤를르빌 인형극 축제에 가기 시작했어요.
인형은 표정이 없거나 고정되어 있어요. 그런데 상황과 인형 조작술에 따라 그 표정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살아있는 것처럼요. 인형극에는 텍스트가 없거나 줄거리가 선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인형극을 설명하는 팜플렛에도 '시적이다', '몽환적이다'는 설명이 자주 나오죠.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지만 딱 꼬집어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세계에요.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연극을 보면 같은 내용이더라도 배우가 달라지면 다른 감상이 나오더라고요. 인형극은 어떤가요?
저번 춘천인형극제에서 어떤 인형극을 봤는데 전 지루했어요. 아마 대사가 없고 오롯이 움직임만 있어서 그랬나 봐요. 그런데 같은 객석의 아이들은 조그만 동작에도 웃으며 집중하더라고요. 인형극을 실제로 제작하는 지인도 그 공연이 재밌었대요. 아마 직접 조작을 하다 보니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겠죠. 연령이나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샤를르빌에서 《피노키오 라이브》라는 인형극을 봤어요. 실제 어린 배우들이 등장해요. 무대 위에서 어른 배우들이 아이들을 다소 기괴한 방식을 통해 피노키오로 분장시켜요. 분장도 진짜 실감 나고 배우들도 너무 잘해요. 그런데 이 아이들을 배우가 아닌 어린이들로 보면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 있죠. 그런 불쾌함을 공연 중에 퇴장함으로써 표현해요. 구두 소리를 낸다거나 문을 쾅 하고 닫죠. 그런데 남은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고 기립박수를 쳤어요.
공연 방식이나 소재 면에서 유럽권은 아동에 관련해선 굉장히 민감해요. 아동 성 착취를 주제로 한 공연도 내용을 떠나서 표현이 간접적이지 않으면 불쾌함을 숨기지 않아요. 이런 면에서 감상에 차이가 있음을 확실히 느끼죠.

인형극을 좋아하시잖아요. 직접 공연을 만들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를 출간하고 인형극 관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어요. 예술인형축제 관계자를 하셨던 분으로부터 2021년도 축제 운영위원을 제안받아서 참여했죠. 영광스럽고 즐거웠어요. 실제로 인형극을 만들어보자는 권유도 받았어요. 집에 나름 꾸며놓은 랭보, 그리고 떠난 고양이들을 위한 신전이 있어요. 고양이 깃털이나 동전, 랭보에 관련된 오브제 같은 걸 한 곳에 모아뒀죠. 그걸 본 어떤 분이 오브제들이 근사하다면 이걸로도 인형극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해요. 하지만 이야기를 짜고 맞춰서 구현한다는 것, 실행 자체가 어려워요. 무대들의 교차와 움직임 같은 것 도요. 그런 만큼 인형극 종사자들이 경이롭게 여겨져요.
확장해 보면 인형극은 세상과 비슷해요.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각자의 삶이란 알고 보면 참 놀랍잖아요. 덜렁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보장된 게 아무것도 없고 청사진도 없는 이 암흑을 열심히 걸어가죠. 사람을 움직이는 건 자신의 의지와 힘, 용기에요. 아무리 보편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해도 미래가 확실하지 않음에도 다들 선택하며 살아요. 살기 힘든 세상이라 해도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형극도 그래요. 겉보기와 다르죠. 굉장히 다층적이고 입체적이거든요. 대사와 대사 말고도 많은 게 필요해요.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의 표지 사진과 내지 판화가 인상 깊었어요. 출간 과정에서 직접 디자인했나요?
표지는 제가 좋아하는 극단이에요. 'Demain on change tout'라는 극단인데 샤를르빌 축제에 늘 오죠. 샤를르빌을 한 바퀴 돌면서 퍼포먼스를 할 때 찍었어요. 디자인 하시는 분이 포토샵으로 다듬고 깃털도 더 추가하고 에폭시로 처리했죠. 저도 참 마음에 들어요. 책이 나오고 극단으로부터 DM을 받았어요. 한국 관계자를 통해 알게 됐다면서, 자신들의 작품이 표지가 되어 영광이라고 책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아쉽게도 연락이 끊겨서 전달하진 못했는데, 다음에 샤를르빌 축제에 가게 되면 한 권 가져갈 거예요. 내지 삽화로 함께 수록된 판화는 축제에 동행했던 지인 케이의 작품이에요. 생각해 뒀던 디자인 계획이 어그러져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케이에게 말했더니 '내가 해볼까?' 하더라고요. 하루에 하나씩 지우개 도장을 파서 만들어줬어요.
이 책을 내면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추천사를 써준 지미 님도 마찬가지예요. 두세 줄 가볍게 부탁했는데 인형극에 대한 진실한 감정을 가득 담아 연극의 한 장면처럼 표현해주신 거예요. 그래서 '이건 추천사로 끝낼 내용이 아니다' 싶어 여러 차례 대화 나눈 내용을 끝에 그대로 실었죠. 원고는 혼자 쓰지만 다 쓰고 나면 피드백을 받기도 해요. 그게 책의 흐름에 도움이 돼요. 좀 더 유연하고 자연스러워지죠.

래연 작가가 직접 찍은 인형극 축제 사진들. 퍼레이드 중 인형극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지난 2021년 작가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 하래연 작가 제공


얼마 전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의 출간 3주년을 맞았다. 때마침 래연 작가는 벼르고 있던 '시간여행호프집'을 방문했다. 귀갓길마다 묘한 분위기에 이끌려 눈길을 뒀던 호프집이다. 마침 파티를 즐기던 옆 테이블 손님으로부터 케이크를 나눠받기도 하며 따스한 분위기를 즐겼다. 이 호프집을 통한 귀갓길에는 제롬이랑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 가족도 만날 수 있다. 재래시장 한구석에는 그 고양이 가족을 위한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동굴과 캣타워 등 제법 잘 갖추어진 구석이 있는 고양이들의 안식처다. 래연 작가는 의자에 누워 있는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는 고양이 '모리'를 간호하며 쓴 책이다. 모리 외에도 '제롬', '별', '로리'가 등장한다. 차례대로 보낸 아이들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때때로 돌보는 길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래연 작가의 삶에서 고양이는 없어선 안 될 존재다. 고양이와 있으면 자기 속에서 아이처럼 가장 자연스러운 부분이 절로 흘러나온다.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에 네 마리의 고양이가 나와요. 그중 작가님과 가장 닮은 아이는 누구였나요?
아무래도 제롬이였죠. 섬세하달까, 예민했어요. 평생을 울었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어요. 저도 그렇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평온한 게 아니라 불안해요. 그걸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하려고 하죠. 떠날 때 가장 슬펐던 건 별이에요. 처음 떠난 아이였기도 하고 제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여의었던 경험이었어요. 사별의 아픔을 이해했죠. 별이는 참 예뻤어요. 뱅갈종인데 선조에 샴이 있었는지 포인트가 딱 있었죠. 마지막으로 떠난 로리랑은 소통했던 기억이 나요.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집에 오자마자 누워 있었거든요? 로리가 가만히 오더니 배 위에 올라오더라고요. 그러다 내려가니까 일어날 수 있게 된 거예요. 분명히 너무 힘들었었는데. 에너지를 주더라고요. 전 항상 로리에게 '넌 왜 개인기가 없어'라며 타박하고 개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힐러였던 거예요. 그런 기운이 강한 아이였죠.
고양이는 저한테 다시 안 올 천국이었어요. 제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키우는 아이가 없어요. 23년을 고양이와 함께했었는데 아무래도 고양이를 키우면 여행 가기가 어려워요. 어쩌다 한번 장기 여행을 가는 거면 아예 다 맡겨두고 갈 수 있는데 자잘한 국내 여행은 힘들죠. 그래서 지금은 오가는 삶을 즐기고, 여행하면서 그동안 우리나라 곳곳이 세월에 변화한 모습을 좀 느끼려고요.

래연 작가와 가장 비슷했던 고양이 제롬.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는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일기기도 하지만 그가 제롬과 교감했던 이야기도 나온다. ⓒ 하래연 작가 제공


제롬과 로리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 책의 내용에 의하면 제롬은 로리와 오른쪽 사진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 하래연 작가 제공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까요?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는 잘 모르던 인형극에 대해 알게 돼서 흥미로웠고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는 담담한 어조에 더 큰 슬픔이 몰려왔어요.
많이들 그렇게 말해요.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에서는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으며 끝이 허무가 아니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어요. 고양이는 세상과, 만물에 조응해서 살아간다는 걸 전하고 싶었고요. 책으로 완성되기 전에 적어가던 투병기를 블로그에 공개했었는데 어떤 이웃이 '글을 담담하게 쓰니 본인이 더 슬프다'고 말하더라고요.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다가올 미래가 겁나 더러 꺼리는 책이기도 해요.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는 인형극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어요.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소설로 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화자를 저로 설정하게 됐죠. 나를 보여야 이 이야기가 더 잘 다가갈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개인의 생각과 감정, 경험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있죠. 책을 낼 때마다 경험했던 시련이 한 번씩 들쑤셔지는 기분이에요.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넣을 때 고민했어요. 그 이야기는 소설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내가 주인공인 소설이요. 그런데 인형극이 내면을 비추고 치유하는 과정을 표현하자니 스스로가 드러나야 하더라고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이런 이야기가 필요할 거잖아요. 그런 독자가 시련을 겪은 자신을 도리어 원망하면서 첩첩이 마음을 닫고 있다면 제가 먼저 드러내 보여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드러나는 것에 대한 공포'와 '드러나지 않으면 삭제되는 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항상 대립해요. 꼭 어떤 특이한 체험에만 국한하지 않고요. 책뿐만 아니라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글을 쓸 때도 검열해요. '이런 걸 써도 되나?' 싶어서요. 다른 사람이 나의 자의식을 들여다보는 게 조금 꺼림직하다가도 이러지 않으면 내 존재의 흔적이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아요. 사람들과 맺어지지 못하고 무화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씩은 내 생각을 흘리고 그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과 잡담하는 과정에 의미를 둬요.

함께 했을 때 행복한 만큼 이별하며 느끼는 슬픔이 크잖아요. 고양이, 혹은 인간도요.
극심한 자기 혐오에 지칠 때 나를 재건하기 위해 글을 썼어요.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됐던 계기가 이별이었던 것 같아요. 숱한 이별을 겪다 보면 지치고 거덜 나고, 완전 바닥 나서 너덜너덜해지잖아요. 그러다 보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도 없어지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20대 때는 글을 잘 안 썼어요. 그냥 삶 자체를 열심히 사려고 했었죠. 주변에 사람이, 관계가 많았죠. 연애도 많이 했었고 6년을 매일 함께 보낸 친구도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전의 나와 다 결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살아온 게 다 가짜 같았어요. 이전의 삶을 지속하기 싫더라고요. 그때 과거의 기록,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버렸어요.
일명 '잠수'를 탔던 건데, 어떤 사건 하나가 살아온 모든 나날을 흔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앞으로 내가 얼마나 살지 생각했어요. 내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는데 이만큼 더 지나면 노인이 되는 거잖아요. 죽음에 점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와닿았던 거 같아요. 내가 사라진 세상에 나를 대신할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어요.

기록되어 온 자신과 현존하는 내가 같지 않을 때 위화감을 느끼죠. 세상의 중심에서 떨어져 버린 듯한 느낌이요.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경쟁을 배우잖아요. 최고가 되어야 하고 나를 뚜렷이 세워야 하고요. 거의 세뇌될 정도로요. 그러니 어떤 순간에 내가 주인공이 아니면 불안해지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걸 넘어서 나 자신이 무화되는 거예요. 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에고만 강조하잖아요. 그건 고통이죠.
나를 내세워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건 좋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평화로워지고 싶어요.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어우러짐이 있다면 세상과 소통하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잘못된 문화로 인해 개개인이 내몰려요. 잘못된 게 환경의 영향일 수도 있는데 계속 스스로를 탓하며 아파한단 말이에요. 타자를 적으로 간주하면서 동시에 내가 너무 하찮은 사람이 돼요. 결국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해요. 이런 부분에서 비애를 느껴요.

노트 사진 인터뷰 도중 래연 작가는 노트 한 권을 보여줬다. 인사동에서 샀다는 투박한 노트에 적힌 빼곡한 메모 중 일부는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에 그대로 실렸다.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지 묻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있었던 일 자체를 적지는 않는다. 메모장에 단어로만 적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한별

이런 작가님의 생각이 랭보의 시와 맞닿아 있다고 여겨요. 랭보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열여섯 살, 수학여행 전날이었어요. 책을 한 권 챙겨가려고 서점에 가서 구경하다가 랭보의 시를 하나 읽고는 펑펑 울었어요. 첫 구절 때문이었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삶이란 모든 가슴이 열리고 온갖 술들이 흘러내리는 하나의 축제였다." 랭보의 시가 청소년기, 사춘기에 열리는 새로운 감각에 맞닿았던 거예요.
랭보의 시는 그 자체가 굉장히 감각적이라서 그럴까, 무의식을 자극해요. 이해받는 느낌이 들죠. 남들에게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누군가 '깊이 느껴도 돼. 왜냐하면 나도 그랬거든'이라고 얘기해주는 그런 느낌을 받아요. 그때 16년 동안 살면서 다 끊어져 있던 무언가를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삶이라는 건 연결과 흐름을 통해 서로 통합이 되는 하나의 장이잖아요.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물이나 현상들하고도 단절과 결렬이 많아지는 게 하나의 성장 과정이었더라고요. 그래서 랭보의 그 구절을 봤을 때 잃어버린 생명력을 느꼈어요. '맞아, 삶이란 이런 건데, 왜 지금 이러지 않지?' 하는 의문과 슬픔도요.

글쓰기가 의문과 슬픔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나요? 작가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요?
어렵네요. 지금은 '이 세상에 내보내기엔 연약하고 초라한, 미소한 나의 부분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세상에 본인을 끼워 맞춰요. 그런 과정에서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본성이 있죠. 차마 길들일 수 없고 끼워 맞춰지지 않는 영역이요.
부정적으로 치부되어 다스려져야 하는 것들은 정제되고 다듬어질 것을 요구받죠. 세상에 존재할 구석이 없어요. 그런 것들이 숨 쉴 수 있는 둥지를 지어줘야 해요. 제겐 그 방법이 글쓰기에요. 글쓰기는 주목받지 않고 잘려 나가는 모든 여백을 사랑할 수 있게끔 격을 부여해 주는 것,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주죠. 그걸 통해서 나를 살릴 수 있어요.
지금 세상은 너무 공리주의적으로 돌아가면서 어떤 이익과 실용이 없으면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요. 저는 그렇지 않아요. 내 안에 영원히 길들지 않아서 우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글쓰기의 시작이었어요.
프랑스의 '포'라는 지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어요. 10개월의 시간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액자식 구성의 소설을 썼거든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떠날 때 선생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시적인' 아이라고요. 같은 언어를 가르쳐도 쓰는 어휘가 다르다고, 작문이 좋다고 해주셨죠. 거기서 부풀어 올랐나 봐요. 책을 쓰겠다고 얘기하니 넌 분명 그렇게 될 거라고 대답을 해주셨어요. 도시를 떠나는 비행기에서부터 막 써 내려갔어요. 비행기에서 쓴 글은 에필로그가 됐죠.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에는 '만국 공통의 행복 언어'를 고민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때 행복 언어를 찾았는지 물었다. 래연 작가가 찾은 행복 언어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관계 형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언어'다. 대사가 없는 인형극을 봐도 인형의 감정, 오브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걸 느낀다. 인간은 세계의 유일한 주인이 아니다. 인형극에서 인형은 일상적 용도 외의 차원에 존재한다.

인터뷰 말미 래연 작가는 두 개의 명함을 내밀었다. "책을 낼 때마다 명함을 만들어요."라는 말과 함께였다. 다음 책은 같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이 바뀌면서도 계속 카페의 성질을 유지한 한 장소에서 일 년 동안 써 내려간 글을 엮는다. 공간과의 만남에서 나오는 상념을 행복하게 기록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길들일 수도, 자리하지도 않는 내면의 아이를 달래면서 숨을 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리는 예술인형축제가 열린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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