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과 하니, 그리고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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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johnny8818)등록 2024.10.16 09:24
10월 13일,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승한이 라이즈 복귀 발표 이틀 만에 팀 탈퇴를 선언한다.
그는 2023년 11월, 데뷔 전 사생활 및 태도 논란으로 무기한 활동 중지를 통해 1년 가까이 소속팀 라이즈를 떠나있었다. 그리고 올해 10월 11일, 전격 복귀를 선언하며 자숙을 마치는 듯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승한의 복귀에 항의하며 소셜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에 그의 과거 행적을 비난하며 라이즈의 6인 체제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팬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SM 엔터테인먼트 본사 앞에 1,000여 개가 넘는 근조화환을 보내며 소속사와 승한을 비난하는 행동을 취했다. 이는 복귀 선언 이틀 만에 승한이 팀을 탈퇴하는 결정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승한은 탈퇴를 알리는 자필 편지에서 "제가 팀에서 나가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승한의 탈퇴를 고대하던 팬들은 "우리들의 힘으로 이뤄낸 결과"라며 여성 연대, 소비자 연대로서 자신들의 단체행동을 자축했다.

10월 15일,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지난 9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하이브의 다른 자회사 소속 연예인과 매니저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민희진 간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던 가운데 나온 하니의 주장은 삽시간 만에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아이돌의 노동권 보장 문제로 이어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뉴진스 하니를 참고인으로, 어도어 김주영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이 사안에 대한 질의를 이어갔다. 쟁점은 '근로기준법상 특수고용 노동자인 아이돌의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였다. 앞서 2010년, 관할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연예인을 노동자가 아니라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예외 대상자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하니는 국정감사장에서 "아티스트와 연습생의 계약은 다를 수 있지만, 다를 수 없는 건 저희는 다 인간이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10월 14일, 지난 2019년 세상을 떠난 전 f(x)의 멤버 설리(본명 최진리)의 5주기였다. 그는 제 생각과 주장을 가감 없이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설리는 연예계 활동을 하며 손꼽히게 많은 악플과 비난을 받은 아이돌 중 한 명이었다. 설리의 유작인 '진리에게'에서 그는 대중들이 연예인을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보는 것 같다며 아이돌에게도 노동권과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본인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들을 자책하고 통제하는 것이 스스로가 상황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아이돌로서의 삶이 대단히 괴롭다고 말했다.

불과 3일 만에 한 사람의 탈퇴, 한 사람의 기일, 한 사람의 출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인격적인 존중을 받지 못했다. 승한, 하니, 설리는 공인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가혹한 상황을 마주했고 대중들은 이를 소비하기에 바빴다. 물론 공인의 삶을 선택한 건 아이돌 본인이니 대중들의 시선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산 사람에게 근조화환을 보내 비난하고,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사람을 면전에서 무시하는 것도 그들이 선택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임지지 못할 말들로 사적제재를 가하는 대중들에게 그 책임이 있고, 소속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상품으로서 팔기 급급한 연예기획사들에 그 책임이 있다.

승한의 탈퇴로 사람들이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자각해야만 한다. 하니의 출석으로 아이돌이 노동권을 보장받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그리고 진리의 죽음으로 더는 빛나는 사람들을 잃을 수 없다는 교훈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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