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국내 필리핀인 "서울시 가사도우미 사업, 필리핀 사람에게도 좋은 기회...중요한 건 급여 · 근무 환경"

혜화 필리핀 마켓에서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대한 필리핀 시민의 생각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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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chang.jung)등록 2024.10.12 17:07

지난 6일 열린 '혜화 필리핀 마켓'에서 다양한 종류의 필리핀 음식과 과자가 판매되고 있다. ⓒ 정창


이슬비 내리는 10월 6일 일요일. 혜화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인도 변에 '혜화 필리핀 마켓'이 열렸다. 10여 개의 포장마차로 구성된 이 시장은 필리핀 현지의 음식, 과자, 과일, 생활용품 등 다채로운 상품을 판매한다. 시장 입구부터 타갈로그어와 영어로 대화 나누는 활기찬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흐린 날씨에도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온 손님들로 시장은 북적였다.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하 시범사업)' 아래 100명의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지난 8월 국내 입국한 뒤 필리핀 가사도우미에 대한 소셜미디어와 언론 그리고 정치권의 관심이 높다. 특히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 국내 이용자의 이용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9월 15일 2명의 가사도우미가 시설을 무단으로 이탈하며 이들의 주거 및 근무 환경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탈한 2명의 가사도우미는 이달 4일 부산에서 검거되어 강제퇴거를 앞두고 있다.

시범사업에 대한 국내 경제 및 정책전문가의 주장은 언론에 수차례 보도되었지만, 정작 필리핀인의 생각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필리핀의 생활을 모두 이해하는 국내 거주 필리핀인이 서울시의 시범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국내 내 최대 필리핀 마켓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지난 6일 '혜화 필리핀 마켓'에서 필리핀 현지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상인들 ⓒ 정창


시장 상인들의 추천으로 만난 조셀린(58)은 밝은 표정과 함께 본인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했다. 그는 "(시범사업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필리핀은 취업이 어렵고 한국보다 급여가 낮아서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가사도우미가 많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차등 지급 논쟁에 대해서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지급할 급여는 한국정부가 결정할 부분"이라며 "만족스러운 급여를 받는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서 도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셀린은 국내 입국한 100명의 필리핀 가사도우미 중 일부가 이탈했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주변 친구나 친척이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제안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급여 외로 필리핀 사람들이 직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으로 '자유롭고 존중받는 근무 환경'을 꼽았다. 이어서 그는 필리핀인을 향한 차별은 "언제나 존재한다"며 상사의 차별탓에 직장을 그만 둔 지인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었다.

시장 안쪽에서 물건을 팔고 있던 게리(38)와 피터(35)도 시범사업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더 많은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한국에 와서 일할 수 있으니 좋은 사업인 것 같다"라고 말한 피터는 약 210만원(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시)의 최저임금 월급에 대해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최저임금 차등 지급에 대해서 "노동 수준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게리는 "210만원의 급여가 나쁘지 않지만, (다른 선택지와 비교하면) 최고 수준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9월 급여가 추석 연휴를 고려했을 대 평균 180만원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6일 열린 '혜화 필리핀 마켓'에서 상인과 대화 중인 필리핀 시민들 ⓒ 정창


공장에서 일하면서 프리랜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로이드(30)는 "(시범사업으로) 더욱 많은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한국에 올 수 있으니 좋게 생각한다"라며, 210만원 수준의 급여라면 "필리핀에 있는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이 차등적용되면 210만원 보다 낮은 급여가 지급될 수도 있다는 말에 그는 "(너무 낮지만 않다면) 210만원 아래도 괜찮을 것"이라며 "공장에서 더 높은 급여를 받는 건 초과근무 수당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혜화 필리핀 마켓에서 만난 한국 거주 필리핀인들이 시범사업에 긍정적이었던 이유는 필리핀 보다 높은 급여뿐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한국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도 호의적이었다. 많은 필리핀인이 한국에 오는 이유로 피터는 "아름다운 문화"를 꼽았고, 한국에서 8년간 거주한 로이드는 "여행하기 좋은 멋진 명소가 많고 원하는 건 뭐든지 살 수 있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반면, 필리핀인이 한국에서 경험하는 차별도 언급했다. 로이드는 "언어의 장벽탓에 한국사람들이 필리핀 사람들을 싫어(hate)하는 것 같다"며 씁쓸함을 표혔고, 게리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직장 내 따돌림(bully)을 경험한 적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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