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디딘 희망

[활동가의 책장] 지구 끝의 온실

검토 완료

참여사회(achampspd)등록 2024.10.04 16:46

《지구 끝의 온실》 ⓒ 자이언트북스


나는 대규모 재난이나 인류 멸망의 상황을 그린 아포칼립스Apocalypse물을 자주 본다. 절망스럽고 허무한 취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포칼립스물 중에서도 결국 희망을 찾는 해피엔딩을 선호한다.

취향은 개인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서다. 나는 희망을 좋아한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절망을 디뎌야 한다. 절망을 말하지 않는 희망은 공허하고, 희망으로 향하지 않는 절망은 무용하다. 희망을 서술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지구 끝의 온실》이 그리는 미래는 멸망이 마땅한 세상이다. 인간들은 업보처럼 재난을 돌려받았지만 여전히 반성은 없다. 권력자들은 그들만의 피난처를 만들어 살아남았고,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게 정당하게 보이는 세상이다.

재난, 재난보다 위험한 인간들, 무너지고 마는 피난처. 멸망이 마땅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희망을 되찾아 낸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쉽게 용서하고 화해하게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혹은 영웅이나 대인배처럼 누군가 인류 모두의 실수를 끌어안고 대신 희생해주지도 않는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는 끔찍하고 도저히 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절망을 떨쳐내고 극복하지 않는다. 또 절망스러운 세계에만 몰두해서 서술하지도 않는다. 절망을 디딘 희망, '그 마음'을 끈질기게 서술해 낸다. 나는 이게 희망을 서술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절망에 매몰되어 냉소하지 않기, 희망에 경도되어 기만하지 않기. 지난한 길이지만 《지구 끝의 온실》을 통해 가능성을 얻어보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 권동원 미디어홍보팀 활동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10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