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뭐하고 지냈니'의 대답

오마이뉴스에 다시 던지는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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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아(dreammoon_)등록 2024.09.29 10:31
대학생 때, 나의 꿈은 기자였다. 당시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몇몇 매체에 기고를 하며 나름대로 짭짤한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 덕에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언론사에 입성할 수 있었다. 내가 기자가 된 2014년은 한 배를 탄 304명의 사람이 사망한 끔찍한 사고가 있었던 해였다. 언론의 민낯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하루에 잠을 두세 시간 밖에 잘 수 없음도 괴로움을 더하는 데에 한몫을 했다. 그래서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언론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당연히 전자를 택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자신은 있었으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공무원이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일을 하기에 모험심이 너무 강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원 학비에 있었다. 부모님께서 학비를 대주시지 않을 게 뻔했다. 나는 생각했다.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가 '서울시립대'가 생각났다. 정확히 학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라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교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서울시립대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울시립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수록 더 진학하고 싶어졌다. 교수진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신데다가 그분들의 저서도 좋았다. 그래서 입학 시험 때에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여기 서울시립대 말고도 다른 대학원도 원서를 넣었어요. 하지만 저를 합격시켜 주신다면 서울시립대를 다니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패기 넘치는 말이었다. 그 점을 높이 사신 것일까. 나는 그토록 진학하고 싶었던 서울시립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게 된다.
석사 때의 기억은 '행복' 그 자체였다. 본가를 나와 대학원 근처 반지하방에서 혼자 살았는데, 참 가난했고 참 기뻤다. 기쁘게 살았다. 식당 일이든, 과외든 닥치는 대로 일했고 미친 듯이 공부했다. '교수지원장학'이라는 명목으로 등록금을 전혀 내지 않아도 되었던 서울시립대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후에 시인으로 등단한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 박사는 서울대 가려고 그렇게 공부하니?" 솔직히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죽을 힘을 다해 공부했다. 지도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책은 다 읽으려고 노력했다. 매일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산에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해냈다는 쾌감이 있다. 그렇게 매일을 문학과 논문이라는 산을 오르내렸다. 석사 학위 논문을 1년에 거쳐 썼고, 2018년 2월에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좀 특이하다. 2018년도 4월에 나는 발병했다. 대학 병원에 한 달도 넘게 입원했다. 거기서 인연을 맺은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석사인 것을 알고 말했다. "언니, 그러면 언니는 박사도 할 수 있는 것 아냐?" 다음은 나의 말. "아니, 내가 무슨 박사를 해." 다음은 그녀의 말. "아닌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말에 나는 충격에 가까운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픈 와중에도 공부를 했다. 화이트보드를 방에 들였다. 그 위에 문학사를 정리했다. 외웠다. 그렇게 박사 입학 시험에 통과했다.
박사 과정 때에는 석사 과정 때만큼의 노력은 하지 못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쩌면 이것도 다 핑계일까. 아무튼 2년 전에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내 자신이 부족한 부분도, 성장할 부분도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내게 사랑이었고, 사랑이고, 사랑일 것이다. 나는 문학을 읽고, 글을 쓰면서 꾸준한 행복을 느낀다. 나의 이 행복을 타인들과 공유하고 싶다. 누군가가 이 글을 왜 쓰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여러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대답 중 하나는 대학생 때와 같이, 그럼에도 그때와는 조금은 달리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하고 싶다. 이제는 언론인으로서가 아닌 문학가로서의 나의 글을 오마이뉴스 측이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제 이야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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