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나다움, 예술이 되는 '시선'

<컬럼> My 라이프,"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검토 완료

임효준(sunecho)등록 2024.09.17 13:47

문화비축기지 내 달 조형물 ⓒ 임효준


우린, 바라보는 시선만큼 세상을 알게 되는 인간이다. 원시 인간부터 시작된 가장 큰 축복 하나,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공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지는 의미부여 속에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70년대 지어진 한 건물을 알게 되면서 간절한 바람이 생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문화비축기지》

상암 월드컵축구경기장 옆에 복합문화공원이 있다. 처음 이름은 '마포석유비축기지'로 시대적 상황 속에 만들어진 곳이었다.

70년대 1차, 2차 석유파동과 90-91년 걸프 전쟁 등 절박한 시대적 상황 속에 '석유'를 비축했던, 꼭 필요했지만 알려지면 안 되는 1급 보안시설로 산업시대 지하에 묻혔던 탱크 조형물이었다.

꼭 필요에 의해 1973년 만들어졌던 곳이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경기장이 만들어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을 위협하는 곳이라며 2000년 폐쇄된다. 그러고도 13년 간 버려진 땅으로 완전히 묻혀 지고 잊혀졌다.

이것을 지난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도시재생사업으로 2017년 10월 14일 재탄생된 《문화비축기지》 개원기념식을 가지면서 다시 역사적 사명이 재입력된다.

석유에서 문화로, T1 탱크부터 T6 탱크까지, 70년대부터 50년 넘도록 모진 풍파를 버티고 이겨낸 스토리에서 가슴 뜨거워진다.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시대적 요구 속에 국가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땅 속에 15M 박혀 있던 석유 탱크들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나'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예술이 그러했던가.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 어떠한 예술작품 하나가 나올까.

이런 역동적인 생명력을 가진 문화비축기지인데 그 영문 표지판에는 《Oil Tank Culture Park》로 박혀있다.

한글이름에는 석유가 빠져있지만 여전히 영문에는 Oil이 남아 있다. 붕어빵에 붕어가 형태를 위해 남아있듯이. 어쩌면 영어이름이 앞서고 우리가 '문화비축기지'라고 억지로 부르는 것은 아닐까.

시선의 본질은 붕어빵의 '단팥' 같은 존재가 문화비축기지라는 공간에는 빠져있다는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시와 공연, 각종 행사와 영화상영 등 꾸준히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시민이 많다. 얼마 전 '2024 코리아 벌룬아트 페스티벌' 제2회 한중 풍선아트에는 극히 일부의 풍선 종사자들만의 참여로 끝나버렸다. 시민의 참여와 초대, 시민의 시선을 담지 않는 각종 문화 전시 공연들이 있다. 심지어 탱크예술제가 2022년도부터 매년 각 탱크의 용도에 맞게 예술전시 기획행사가 전개되지만 아는 시민이 많지 않고 오는 10월에 전개될 탱크예술제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먼저 홍보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혹시 오일이 비워진 탱크에 물리적으로 문화를 마구 집어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 이후 문화 분야 예산이 남아 둘았던 지난날 때문에 각종 문화행사 명목으로 예산을 털어버리는 행사가 전국에서도 많아지고 있다. 이미 많은 곳의 문화행사들은 주최측의 생색내기, 한해 농사로 여기고 자기들끼리 탕진하는 경우도 많다. 대신 사진과 홍보책자로 화려하게 꾸며 기록으로 남겨놓는다.

혼동의 시대에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진정성이 문화비축기지에서 찾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지켜내고 싶었던 것은 무얼까.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처음부터 채우고 싶었던 것이 어디로 간 것일까. 혹여 정치적 성향이 다른 시장의 탄생으로 서울시민의 '시선'까지 왜곡되고 묻혀버려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의 발전사에서 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시대적 성장단계를 말해왔던 우리가 지금은 삐긋거리며 혼란기에 빠져있다. '한강의 기적'이라며 압축 성장을 거쳐 왔던 화려한 지난날을 뒤로하고 2024년의 지금은 그동안 참아왔던 인간존엄과 인권이(공동의 목표를 위해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억눌렸던 것들이) 희생했던 개인의 각성된 힘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개인의 미투에서 이제는 각종 학폭과 밀양폭행사건 등등 올해는 프랑스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배드민턴과 지난 축구협회 등 스포츠 비리 등에서도 시선은 본질을 향한다.

"결국 진정성의 힘이다."

문화예술과 스포츠의 공통점은 감동을 받는 데 있고 이는 간절한 노력, 피와 땀을 받쳐 이뤄내는 인간의 숭고한 삶이며 가짜를 부정하고 진짜를 찾으려는, 다시 강조되는 진정성이 깃들여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동안 힘을 발휘했던 것은 법 없이도 살아가는 시민들이 인간 지성의 힘을 믿고 따라지만 지금은 극단적인 대립으로 시민마저 편이 나뉘며 민주주의가 지켜져 왔던 소수와 다양성의 힘이 다수의 '세력'과 '자본', 그리고 '기득권'의 횡포로 반영되지 않고 그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권력의 싸움에 외면받기 때문이다.

최근 독립과 관련된 한국사와 이념 논쟁에서의 진영 간의 극한 대립은 물론이고 심각한 양극화에 따른 일자리 문제와 이상기후 및 고물가와 코인사태 전세대란 등등 여러 사회문제가 대두되면서 개인의 삶이 수십 년간 위태로워졌다. (2022년도 하루 자살 사망수가 35.4명이었다. 23년 출산율은 0.7명이다.)

이런 갈등과 대립, 분노의 사회에서 문화, 특히 예술적 감성은 우리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숭고한 가치이며 지난날 어려운 시대 때마다 이겨냈던 인간의 '공감'을 통한 공동체회복과 복원의 힘이다. 문화비축기지가 산업화의 상징물이었던 탱크의 흔적들을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문화예술의 태생지로 변화된 사명을 갖는 것은 놀라운 승화된 힘이며 이 힘이 우리사회에 새로운 문제해결의 솔루션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산업화 시대의 '석유'를 소중히 하면서도 지금의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 및 생태계 복원 등도 함께 추구하면서 결국 인간의 삶을 '나'에서 '너'와 '우리'로 확장된 공동체의 공공의 가치를 발현해 나가는데 있고 그 목표는 더 나은 국가와 사회로 나아가는 미래의 핵심이 있다.

'영원하려면 예술이 되라'라는 말이 있다.

지난날 문화비축기지가 겪고 버티고 이겨낸 존재이유와 그 방향성이 시대적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진짜 시민'과 '예술'을 담아내야 한다.

문화비축기지의 구성원들의 사명감과 태도에서 진정성을 담고 문화예술의 힘으로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한 거대한 행보에 앞장서야한다. 그리고 진짜시민을 찾아나서야 한다. 가짜시민은 행정에 동원된 기득권을 인정받는 사람들로 예산을 털어버리는 또 다른 기득권이기에 순수하게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일반 시민들의 진정성을 끌어내야한다. 나아가 이들로 중심이 된 시민협의체가 문화비축기지의 하나의 탱크가 되어 예술문화의 진정성을 전하는 문화 창출의 한 요소가 되어야한다.

<화엄경>에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라는 글이 있는 데 "하나의 작은 티끌에 온 세상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작은 티끌에도 온갖 사연과 다양한 이야기가 있듯 지금의 문화비축기지의 존재를 한 시민의 '시선'에 머물게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지금 나의 진짜 삶이다.

결국 "탱크 is 아트컬쳐, with 시민"으로 완성되어져야 한다.

폭염의 지난여름, 우리를 응원했던 Day6 밴드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라는 노랫말처럼 건물 이름에서 의미를 찾고 행동하는 시민의 '시선'을 살피는 오늘 하루, Day1이야말로 진정한 '타인의 나다움'을 역설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유통신문과 제보팀장 매체에 함께 송고합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