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를 등에 업은 산업 성장은 자연이라는 배경을 뒤흔들었다. 울산의 한 정유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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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인류세의 도래가 우리의 물질적 삶과 경제 제도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더 이상 자연이라는 고정된 배경을 뒤로 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연은 경제활동을 위한 에너지와 원료를 끝없이 제공해주는 '마르지 않는 원료창고'이자 경제활동의 결과 폐기되는 쓰레기와 폐열을 언제까지나 받아줄 '무한한 폐기물 창고'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인류세의 도래로 이런 기대는 오류로 판명 났다. 화석연료를 등에 업은 거대한 산업 성장은 자연이라는 배경을 뒤흔들었고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뒤섞이기 시작했다. 인간 경제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해 주던 자연이라는 배경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된 결과,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바뀌었고 생물다양성 수준은 급격히 떨어졌으며, 해양 산성화와 토양 오염 등이 심각해졌다.
이렇게 자연이라는 배경이 변하자마자 그 위에서 작동했던 농업은 예기치 못한 기후변동에 흔들리게 되었고 도시는 기후재난에 취약하게 되는 등 경제활동도 강력한 변화를 요구받게 되었다.
인류세 시대의 경제활동은 이제 무한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구 생태계의 수용능력 범위'라는 절대적 제약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을 시장경제에 투입되는 생산요소들의 집합소 정도로 저평가하던 과거의 관행을 버리고, 인류가 살아갈 터전이며 기반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지구는 물질적 생산을 위한 원료창고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 인류의 물질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존립을 위한 근본 전제로 지구와 자연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 전문가들은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성장의 한계> 공저자 데니스 메도즈는 시대에 따라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성장과 자연에 대한 태도를 바꿔왔는지 다음과 같이 풍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지구 생태계의 한계는 없다.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무시했다. 그러더니 1980년대에는 "한계는 있지만 아주 멀리 있다.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1990년대가 되자 "한계가 어쩌면 가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시장과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 마침내 21세기에 들어서자, 기후와 생태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성장을 더해야 한다고 자신들의 관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제 모두 인류세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과거 경제 관행도 인류세의 변화한 여건에 맞춰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기후를 위하는 길이자 우리의 삶과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