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은 아동학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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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복(songyb)등록 2024.08.28 11:06
우리가 어려서부터 위인전을 읽고 또 그것을 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왜 그렇게 훌륭하게 되었는지 위인전 읽고 배워서 우리도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자!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바꾸어 말하면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일단 거두절미하고 이러한 생각 자체가 차별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생각의 배경은 근대적 발상에서 비롯된다. 서양의 관점에서,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는 훌륭한 선진국이 있고 뒤떨어진 후진국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선진국에 사는 일등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이등 혹은 삼등이나 사등 인간이 존재한다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 훌륭하다. 인간 각 개인의 삶이 하나의 우주라고 하지 않던가.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돈이 많건 적 건에 상관없이,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거나, 혹은 유명한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각자의 가치가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위인전은 이런 근본적 인간 가치를 부정한다. 대통령이 아니라 말단 공무원 생활을 평생 한 아빠는 실패한 인생이 된다. 위인전에 등장하는 스티브 잡스와 비교해 보면 겨우 입에 풀칠하는 치킨집 사장님은 루져가 아닐 수 없다. 그분이 아무리 독거노인들을 위한 급식 봉사와 기부를 해도 그건 그냥 착하지만 찌질한 사장님의 미담에 불과하다. 위인전에 실리기는 힘들다. 위대한 인물의 발뒤꿈치 이야기 정도나 되려나…. 그래도 그나마 이건 조금 낳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한 옆집 맹구 할머니는 더더욱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된다. 위인전의 관점에서 보면 평생 뭐 하나 그럴듯한 것을 이룬 게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읽은 위인전은 평범한 사람을 은근히 돌려 까고 있다.
물론 모든 위인전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훌륭하고 멋진 것도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적인 강요로 위인전을 읽어본 나도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멋지다고 느낀다. 본받을 것도 많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주옥같은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나 맹구 할머니는 왜 아닌가? 그분도 멋질 수 있다. 식민지적인 관점이 아닌 인간적 관점으로 보면 아름다울 수 있다. 아니 아름답다. 누가 그분의 자서전을 써주거나 혹은 애절한 삶을 영화로 만들어주면 어떨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디 세상에 가만히 들여다보면 애절하고 기구하지 않은 삶이 있으랴.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우주를 발견해서 보여준다면, 그 삶 자체에 우리 모두 감동할 대목이 있다.
그런데 위인전이 우리에게 해롭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더 심각한 데 있다. 위인전을 읽다 보면 나도 그들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항전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이다. 현실적으로 위인전 읽고 최고의 위인이 될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알고 가꾸어 그렇게 고유성을 잘 지켜 나갈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구의 모델을 따라가거나 흉내 내봐야 별 볼 일 없는 짝퉁에 불과하다. 비슷하게 되는 것도 힘들지만 그렇게 해봐야 항상 넘버투 이상 되기 어렵다. 결국 루져가 된 우리에게 위인전 읽기의 결과로 남는 것은 마음의 상처뿐이다. 평생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트라우마 말이다.
물론 위인전을 읽고 내가 가는 길을 만드는 기초를 닦거나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도 있다. 모든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위인전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위인전의 핵심은 위대한 사람과 위대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가치 판단에서 시작한다. 그런 상대적인 인간 가치 평가에 따른 줄 세우기를 비판하는 것이고 그 결과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니 논지를 흐리지 말자. 본질을 보자.
그래서 말한다. 위인전 좀 그만 읽자. 더욱이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더 이상 권하지 말자. 감히 필자는 아이들에게 위인전 읽히는 것을 아동학대라고 말하고 싶다. 너도 크게 자라서 저 사람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력이기도, 나아가 위협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위인전을 읽으며 그렇게 되는 우리를 상정하고 선망하지만 결국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을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위인이 되지 못하는 건 온전히 너의 나태함과 무능함의 결과라고 비난한다. 그렇게 결국은 마음의 상처가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큰 강박으로 남는다. 내가 가진 상처의 근원조차 모르고 어리둥절한 사람들이 다시 위인전을 찍어내고 권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 주변에는 위인전을 읽고서도 위대한 사람이 못된 절대 다수의 찌질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혹은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조차 또 위인전을 읽으며 더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이 세상은 온통 전쟁터가 된다. 개인의 피 터지는 경쟁과 국가 간의 전쟁이 이런 근본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과연 논리의 비약이기만 할까?
나는 그런 위인이 안 돼도 좋다고 스스로 믿고, 가르치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아도 너의 부모님은 맹구 할머니는 그리고 너는 이미 훌륭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위인전 좀 그만 일자! 대통령, 워런 버핏, 이재용 회장만 위대한게 아니다. 그러니 이제 아이들에게 잔인한 위인전 읽히기는 그만하자. 그건 아동학대다. 서방 제국주의가 만들어 놓은 쌍팔년 시대의 아동학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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