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전후로 달라진 학교 분위기>

한도액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이유, 주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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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bacaswon)등록 2024.08.28 11:30
'제공자인 학부모에게도 과태료 통보 조치'. 다른 글자보다 크기가 큰 파란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혹시나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던 이도 그 마음을 접게 하는 효과가 분명한 문구다.

이 문구는 학기 초나 학부모 상담 기간이 다가오면 학교에서 전달되는 가정통신문에 등장하는 문구다. '불법찬조금 예방 가정통신문'이라는 제목의 이 공문에는 비품 구입이나 교직원 선물, 회식비, 학생 간식 제공 등을 위한 모금을 삼가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학부모 상담 기간, 스승의 날, 명절, 운동부 대회 참가 전후 시기에 감사 또는 격려의 표시로 교사나 관계자 등에게 금품은 물론 상품권도 전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 지 이미 8년인데도, 아직 이러한 공문이 전달된다. 혹시나 발생하게 될 부정 청탁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학교 측의 노력일 것이다.

지난 8월 27일부터 청탁금지법의 식사비 한도가 기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물가 인상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일반 사회인들과 마찬가지로 공직사회 안에서도 '맨손, 맨입'은 서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과한 선물을 방지하고 예를 갖추는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 상한액을 지정했다고 하니, 법의 취지에 맞게 부정 청탁을 위함이 아닌 순수한 마음의 표현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식사비 한도액이 상향된 것에 외식업계에서는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으나, 오히려 청탁 문화를 더욱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있다고 한다. 한도액은 과함을 막기 위한 제도이지만, 역으로 적어도 그만큼은 해야 하는 거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포함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학교 안의 학부모로서 나는 한도액 따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선물은 없어도 교사와의 친밀함은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다. "늘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에도 이제는 서로가 웃으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아는 한, 교사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고민하는 학부모는 없다. 오히려 가능하면 학교에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지 말자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교사에게 얼굴도장이라도 찍어야 아이가 대접받는다는 인식이 희미해진 것이다. 교사와 아이의 관계를 응원하면서도 일명 '치맛바람' 일으키며 개입하지 말자는 성숙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이런 건전한 문화가 형성되는 데에 김영란법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김영란법 시행 전과 후의 문화가 급격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2013년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만 해도 '교사를 위한 선물 준비'는 기본이라는 분위기였다. 큰 결과물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내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포함되기도 했고, 수고하는 교사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스승의 날을 맞아 그리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화장품 세트를 구입했고, 정성 담은 손편지와 함께 담임교사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받을 때는 별 반응이 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하교 후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녀가 꽤 흡족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 센스있는 선물을 준비하셨냐'는 상냥하기 그지없는 인사를 받았다. 그러면서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아이에 대한 칭찬도 들을 수 있었다.

특별히 그 교사가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도 선물을 받을 때 기분이 좋듯이 교사 역시 사람인지라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자그마한 선물 하나로 아이를 예쁘게 보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선물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학교가 재밌다던 아이의 1학기가 그렇게 무난히 지나갔다.

그런데 2학기가 되어 문제가 발생했다. 때는 추석 명절 이후였고, 아이에게 문제가 많으니, 상담을 받으러 오라는 교사의 연락을 받았다.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부모의 심장을 덜컹하게 하는 말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찾아간 나에게 교사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상당히 잘 그린 다른 아이의 그림과 비교하면서였다.

"이것 좀 보세요. 모든 사람이 다 졸라맨이에요. 팔다리를 이렇게 선으로 표현하는 거, 이건 여섯 살 수준의 그림이에요. 다른 아이가 그린 것 좀 보세요. 1학년이면 이 정도는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나는 교사의 말을 듣고 정말로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아이에게 팔다리를 두께감 있게 그리라고 지적하기 시작했고, 종이가 부족할 만큼 그림을 그려대던 아이는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충분히 걱정하며 아이에게 나름 그리기 지도를 했는데, 교사에게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아이가 쓴 일기장을 내밀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썼던 글을 지웠다가 위에 다시 고쳐 쓴 흔적이 보였다. 지우개로 지웠지만 다 지우지 못해 식별된 글은 '오늘 선생님께 혼이 났다.'라는 문장이었다. 그 흔적 위에 새롭게 쓰인 문장은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셨다.'였다.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에게 교사는 말했다.

"교직 생활 20년 만에 이런 학생은 처음이에요. 잘하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혼났다고 느끼다니, 어머니 아이에게 관심 좀 가지셔야겠어요."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교사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일기는 아이의 솔직한 표현이지 않은가. 그 솔직한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고쳐 쓰게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혼이 나며 일기를 고쳐 써야 했던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차오르는 분노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문자를 통해 교사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했다. 교사가 전화를 걸어왔으나 수신 거부를 누르고,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니 그만하라는 남편의 만류에도 나의 문자 발송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으나 할 수 없었던 교사에게서 결국 답장이 왔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께 못 할 말씀을 드린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 일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큰 상처가 되었다. 소름이 돋았던 것은 한 해가 끝나갈 무렵, 같은 반 학부모에게서 전해 들은 말 때문이었다. "명절에 선물 안 했지? 그거, 촌지 가져오라는 말이었을 거야. 1년 동안 돌아가면서 전화 안 받은 엄마들이 없다니까."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의 회사로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왔단다. 귀찮은 나머지 학교에 찾아가 봉투를 내밀고 왔더니 그제야 연락이 없었다는 말에 정말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었다. 돈을 밝히던 그 교사는 다음 해에 어느 학부모와 크게 부딪히고 나서 명예 퇴직을 했다. 성실하고 존경받을 만한 수많은 교사에게 불명예스럽게 먹칠을 한 이가 명예 퇴직이라니. 아이러니에 웃음이 났다.

그 뒤로 김영란법이 시행되기까지 교사 선물에 대한 인식은 과도기를 맞았다. 상담하러 갈 때, 무엇을 들고 갔느냐가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화제였고, 어떤 교사는 가져간 선물을 돌려보냈다더라, 누구는 학교가 아닌 집으로 선물을 보냈다더라 등 관련 소식들이 넘쳐났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 드디어 김영란법이 시행되었고, 가장 발 벗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학교 측이었다.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플래카드가 학교 여기저기에 붙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어떻게 맨손으로?'라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이제는 서로가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부모는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졌고, 교사 역시 부담스러운 선물을 처치하는 곤란을 겪지 않게 되었다.

청탁 금지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이만큼 성장했다. 모두가 깨끗하다고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인식은 널리 퍼졌다는 말이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수수 논란에 대한 충격과 분노는 국민의 의식이 성장한 만큼 비례한 것일 테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행위와 그에 따른 무혐의 판결들은 국민의 마음에 적잖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김영란법을 바라보는 온도의 차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건지 씁쓸한 마음마저 든다.

받는 것이 당연했고, 주지 않은 아이의 부모가 미웠던 그 교사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부정한 청탁은 하지 말자는 법의 취지를 이제는 이해하고 있을지, 그렇지 않으면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수수가 문제없다고 생각할지 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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