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시민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 기념관에서 광복회, 56개 독립유공단체 주최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유성호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광복회는 이종찬의 취임 이후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모든 공식 문서에 1919년을 원년으로 삼는 표기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1919년은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해다. 광복회의 방식을 따르면 이종찬이 광복회장으로 취임한 2023년의 경우 연호상 '대한민국 105년'이 된다.
이러한 연호 표기법은 과거 군주제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나 쓰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도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광복회는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어떤 연호법을 쓰든 실질적 영향력이 없으며 그 상징성을 주목해야 한다.
이종찬 회장이 취임 이후 채택한 광복회의 연호 표기법은 1919년을 기준으로 했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이는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준으로 건국절로 삼자는 뉴라이트 세력의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하고 있다. 주요 독립운동가와 후손으로 구성된 광복회는 이미 공식적으로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에 반대한다는 점을 천명한바 있다.
이종찬은 광복회장 당선 후 취임사를 통해 국가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 확립이 광복회의 1차적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하는 바는 헌법 전문의 내용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민주화 직후 제정된 헌법에서 당시 좌파든 우파든 대한민국의 기원을 임시정부로 본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건국절 운운은 과거 우파의 역사 인식보다 퇴행한 것이다.
임시정부 법통 관련 내용은 전국민적 민주항쟁으로 신군부 정권이 한발 물러나면서 제정된 1987년 헌법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임시정부가 '법통'이라는 점은 당시 민주당이 주장했지만, 민정당도 임시정부 정신 계승을 헌법 초안에 담고 있었다. 결국 협상 끝에 '법통'이란 구절이 포함됐다. 당시 증언을 살펴보면 민정당의 원내대표였던 이종찬이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비록 신군부 인사였지만 이종찬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절차와 제도의 집합체가 아니다.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국가정체성은 한 사회의 가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국민들의 연대감, 소속감, 그리고 사회적 결속을 형성한다. 만약 국가정체성이 근본적으로 위협받는다면, 결국 민주주의 체제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정체성을 보호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것과 직결될 수 있다. '신종 밀정'들의 주요 역사, 교육, 인문학 기관 장악은 바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는 다양한 의견과 이념을 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사회적 통합과 공통된 가치가 필요하다. 국가정체성은 이러한 통합의 기초가 되며, 이를 공격하는 행위는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방치된다면, 이는 사회의 근본적인 분열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 이념이 국가정체성을 전복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 엄청난 국가적·사회적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국가정체성은 단순한 문화적 혹은 민족적 개념이 아니다. 한 국가가 기반하고 있는 법적, 정치적 원리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헌법적 가치, 법치주의, 인간 존엄성 등이 국가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포함될 수 있다. 1987년 헌법은 여야의 합의로 제정되었다. 국민의 항쟁 앞에 물러난 신군부 지배세력과 민주화를 열망하며 온갖 피땀눈물을 흘려온 민주화세력이 함께 국가정체성의 주요 내용으로 포함한 것이 바로 4.19와 함께 임시정부 정신 계승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부정하는 시도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를 위협하는 것이 된다.
헌법에 임시정부 관련 내용을 명기한 것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과거 군부독재정권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 아닌 명분으로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도 빨갱이로 몰아갔다. 온갖 불법도 빨갱이 소탕이라는 명분이 붙으면 다 정당화됐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도 결국 거슬러 가면 빨갱이 타령이다. 백선엽의 친일 행적과 반공 공적은 대표적인 예다. 민주화로 인해 가까스로 반공 이외에 과연 대한민국의 제대로 된 국가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시대적 물음에 현행 헌법은 여야 합의로 임시정부와 4.19로 화답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야만의 시절을 그렇게 간신히 벗어났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반공에 더해 친일로 규정하려고 한다. 오늘날 현 정권의 도가 넘는 교육, 역사, 인문학 분야로의 신종 밀정 투입에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비판을 하는 것을 넘어, 공직 임명 금지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순간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심각히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밀정'들의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훼손에 전국민적 전민족적 대응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한양여대 ESG연구소 부소장. 북한학 박사. 전 한국NGO학회 이사, 남북학술교류위원. 좌표22 대표. 전 통일교육원 공공부문 통일교육 전문강사. 2009년 피스멘토링커뮤니티 DMZ를 창립한 이후 통일교육의 버전업에 매진해왔다. '통일교육 에센스', '남도 북도 모르는 북한법 이야기', 'Life & Law', '우리가 불러온 노스코리언송즈 :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통일 노래 시리즈 I' 등 다수의 저서를 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사교사인 아내와 함께 왕릉을 답사 중인데, 노스코리아 지역 왕릉 답사길을 찾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